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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Sep 22. 2023

남편을 보고 느낀 주부가 직업인 이유

최고의 주부 내남편


나는 우리집의 가장이다.


사실 가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가장의 뜻은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사람 혹은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 명사라고 한다] 대체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작은 범위의 내 가족은 신랑과 나 둘뿐이고, 경제적인 수입은 내가 전담하고 있으니까.



집안일은 남녀가 함께 하는 것이 조금은 당연해졌다해도 여전히 주변을 둘러보면 가정주부는 대부분 여성들이다. 결혼 후 인간관계가 좁아진 탓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인들마다 우리 부부를 신기해하는 것을 보면 더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신랑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참 많은 편인데. 아무래도 일하는 여성들이 더 많기 때문일까 혹은 가정주부의 어려움에 대해 모르는 탓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언니, 저 언니집에 자리 하나 없어요? 저 입양해주세요.

-OO님(신랑 이름) 부러워요. 저랑 바꾸면 안 돼요? 저희 직장으로 이직하세요!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업으로서의 가정주부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완전히 NO다. 누구보다 돈버는 일을 좋아하고 집안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랑처럼 즐겁게 집안일을 하고 또 잘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 어쩌다보니 100%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집안일하는 신랑의 모든 모습을 집에서 볼 수 있는데, 정말 감탄스러울 때가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일이라곤 없고 생각보다 힘써야 할 일도 너무 많아서, 대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시나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



자취만 10년을 했기에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살 때의 집안일과 한 가정의 살림을 꾸려가는 주부로서의 집안일은 크게 다르더라. 다른 점은 정말이지 차고 넘쳐서 열거할 수 없을 정도지만. 자취를 하거나 돌봄을 받으며 보는 집안일과 직접 할 때의 집안일의 괴리감이 크다 보니, 주부가 직업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더 어렵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아쉬운 점은 주부라는 업의 특성상 옆에서 가족원이 지켜봐주기 어렵고(누군가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학업을 할 테니), 또 보상의 주체가 외부로 기운다는 점이다.



나는 약 1년 간 집안일하는 주부로 사는 신랑을 지켜보며 느꼈던, 주부가 직업인 이유에 대해 서술해보고자 한다. 신랑이 하는 일들이 좀더 인정받았으면 좋겠는 마음이랄까 :)





집안일, 그러니까 주부의 직무를 규정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아는 만큼만 세상을 본다. 나는 이 명제가 집안일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살림을 해왔지만, 내가 해온 집안일은 다양하지 않았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기에 오히려 가정주부[전업주부]가 하는 일은 잘 알지 못했다. 가끔 가정주부로 사시는 이모댁에 가면 우리집과 조금 다른 점들이 있기는 했지만 크게 느끼지 못했고, 엄마가 집에 있는 친구들에게 딱히 부러움을 느끼지도 않았던 것 같다. 특별한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성향 차이였달까. 동생은 엄마가 집에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스무 살부터 자취를 해온 내게 집안일은 지극히 간단했다. 내가 해온 살림은 오직 필요에만 맞춰져 있었다. 청소도, 요리도, 빨래도 오직 필요에만 집중하니 데코를 하거나 정기적인 루틴도 없었다. 더러우면 치우고 필요하면 빨고 배고프면 후다닥 해먹는 것. 그게 나의 살림이었다.



반면, 신랑은 무려 청소 카트를 구비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먼지털이개가 소품이 아니라 실제 쓰인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매주 베갯잇과 이불 빨래를 하는 사람이 실존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날이 좋으면 빨래가 하고 싶고, 날이 흐리면 빨래 일정 고민을, 외부 일정이 있으면 메뉴 선정을, 집에서는 아침 먹고 점심 고민, 또 점심을 먹으면 바로 저녁 고민. 요리도 늘 당근과 감자를 둥글게 깎아내고 파슬리로 데코레이션도 잊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그를 보며 느낀 집안일의 위대함은 청소, 요리, 빨래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인테리어도 해당된다. 오직 효율과 필요에 의해 꾸며진 나의 자취방들은 꾸밈이라곤 전혀 없었다. 가끔 잘 꾸미는 친구들 자취방에 놀러가면 감탄하곤 했지만 그때뿐이었고 별 생각도 없었다.



신랑이 혼자 살던 빌라



똑같은 직장인이었지만 신랑의 자취방은 달랐다. 나의 집은 자취방 그 자체였다면, 신랑의 집은 자취방이라기보다는 진짜 가정집이었다. 거실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고 특별히 손님이 없더라도 잔잔한 음악이 흐르며, 침실에는 무채색 톤의 커튼을 달고 드레스룸에는 꽃무늬 커튼을 달아 기분마저 달라지게 만드는 공간. 좋아하는 사진들을 출력해 액자에 끼워두고 각종 조명으로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곳에 있으면 정말 편-안했다.



인테리어란 그저 집의 형태에 맞춰 가구를 배치하는 것뿐이었던 나의 인식도 많이 변화했다. 집은 디자인을 통해 예뻐지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하는 사람의 동선에 맞춰 가구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드라마틱하게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실감했다. 또 두 사람의 삶에 필요한 공간 디자인은 시간을 들여 맞춰가야하니, 하나하나 신경쓰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는 것도 배웠다. 잘 디자인 된 공간은 사는 이에게 더 큰 자유를 부여하고 또 더 다양한 살림을 가능케 한다. 어쩌면 가구를 움직이고 배치하는 것 또한 주부의 권한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요리, 청소, 빨래, 인테리어, 이런 식으로의 나열이 아니라 뻗어나가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집안일의 세계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또 요리면 요리, 청소면 청소, 어느 것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서도 할 일들은 무궁무진하게 달라진다. 이렇듯 집안일의 범위는 감히 내가 한계지을 수 없는 것 같다.





남편의 집안일을 통해 주부가 직업인 이유 짐작해보기


주부가 직업인 이유를 표현해보고자 했으나 쉽지 않아서, 대신 신랑이 하는 집안일을 풀어서 써보려고 한다. 나의 배우자는 정말 뛰어난 살림꾼이자 능력있는 주부라서 조금은 자랑 섞어 당당하게 써본다. 아직 1년차라 초보 주부의 면모는 있을 수 있겠지만, 동년배 혹은 같은 연차 중에는 단연 한 손에 꼽힐 거라고 자부한다.


신랑의 집안일에는 매일매일 해야 하는 루틴이 있고, 때때로 갑작스러운 이벤트들도 발생한다. 미리 계획해서 일정을 짜는 편이고, 또 업무간 우선순위를 설정하기도 한다. 때때로 적절한 휴식과 장기 휴가를 필요로 하고 누구보다 일하지 않는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신랑은 아침에 일어나면 돌돌이로 잠자리 정리를 하고 집안 곳곳의 커튼과 블라인드를 연다. 지난 밤부터 아침까지 쌓인 먼지들과 머리카락을 온 방을 돌며 훔쳐내고, 쌓인 빨래양과 날씨를 비교하며 그날 빨래를 할지 가늠한다. 필요하면 바로 빨래를 돌려놓고 아침 식사 준비가 시작된다. 주로 전날 만든 빵과 사과나 토마토 등의 과일, 그리고 직접 내린 커피.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를 하고 진짜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기도 돌리고 바닥을 닦고 보수할 것들은 바로 보수도 한다. 그 사이 빨래가 다 되면 빨래를 널고 잠시 휴식. 이마저도 일주일에 한 번은 베란다 물청소와 이불/베갯잇 빨래도 해야 해서 쉴 틈이 없다. 잠깐의 휴식 동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점심을 먹고 또 치우고 커피를 한 번 더 내리면 오후 4시쯤. 커피를 마시며 저녁거리를 고민하던 그는 일하다 지친 나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간다.



장을 보고 돌아와 잠시 쉬고 저녁 준비를 하고 저녁을 먹고 후식까지 먹고 나면 깜깜한 밤이 된다.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이 없다면 시간을 가늠해서 반죽을 시작하고, 식빵은 발효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4시간은 잡고 시작을 한다. 혼자 살 때는 카레와 햇반, 토마토만 먹고 살던 신랑은 둘이 되면서 요리하는 시간이 10배는 늘었다. 가족원 전체를 커버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건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도 주부도 모두 동일한 것 같다. 오히려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인이 더 나은 것일지도.



내일 할 일, 주말에 할 일도 끊임없이 점검하는 사람이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한다. 예를 들면, 세탁기가 멈춘다거나 밥통이 고장난다거나 하는 일들. 실제로 얼마 전 두 가지가 한 번에 발생해서 신랑의 속을 썩였다. 나는 수리기사가 올 때까지는 햇반 사먹고 빨래는 모아서 주말에 빨래방을 가자고 했지만, 그는 돈을 쓰는 것도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영 불편해했다. 직접적인 금전적 수입이 없어서일까, 어쩔 수 없이 소비에 더 부담을 가지게 되는 게 주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밥통을 들고 같이 집근처 밥통 대리점에 갔고, 3년도 안 된 밥통을 새로 사야할 것처럼 종용하기에 바로 나와버렸다. 다음날 지하철까지 타고 다른 대리점을 찾아가 다행히 빠르게 수리할 수 있었다. 세탁기는 3일 이상 작동되지 않아야 해결 가능하다기에, 빨래판까지 사서 손빨래를 한 신랑. 그만큼 신랑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지쳐갔고 힘들어했다. 결국 한 번 더 수리기사 연락을 통해 방문 검사를 받았지만, 테스트 불가로 한동안은 더 써야하는 상태다.



이틀 간 밥통 여행한 그의 뒷모습



그 와중에 신랑은 빵도 만들고 커리도 만들고 난도 만들었다. 청소 루틴은 매일 빼놓지 않고 반복되고 주말에 분리수거와 음쓰 버리기도 자신의 일이라 여긴다. 무엇보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지금의 삶을 행복해하고 정말 편하다고 말하는 신랑. 나야말로 컴퓨터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일할 수 있는 삶이 너무나 만족스러운데, 신랑도 그렇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를 보며 더더욱 느낀다. 나는 정말 주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걸. 매일 같은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내게는 감탄스럽고, 요리와 청소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신기하다. 신랑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을 힘들어하지만, 오히려 내게는 그게 더 쉽고 흥미로운 과제라 상호보완도 된다. 갑자기 밥통을 들고 나가야 하거나 수리기사 대응 같은 것들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되려 요리가 재량껏 하기 어려운 종목이라 나는 답답하다고 해야 할까.





주부는 직업이 맞다


신랑을 만나고 같이 살면서 집안일도 회사일과 다름없는 '일'이라는 것을, 또 주부는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주부의 일을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고, 상사가 아닌 가족원들만이 느낄 수 있다보니,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이 직업에 대한 적성을 가르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직업들은 외적/내적 보상을 받는다. 일을 잘하면 칭찬을 받거나 승진 혹은 보너스를 받고, 개인으로서의 충족감과 성취로 인한 자존감 향상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건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집에서 혼자 일하는 주부는 그게 좀 어렵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긍정비교를 할 수도 있겠지만 왜인지 스스로 더 부족함만 느끼는 것 같달까. 그래서 외적 보상의 힘이 더욱 중요해지다보니 가족원에게 권력 아닌 권력이 부여되는 느낌.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주부라는 직업에는 칭찬과 인정이라는 외적 보상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 일상에 익숙해진 가족원들이 보상을(칭찬할) 적게 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일이 적성에 맞고 흥미가 있지 않다면 그만큼 유지하기 힘든 직업이라는 것.








우리는 명확하게 서로의 일을 구분해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전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맡은 나는 재무 상황을 시시때때로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자산을 키워나갈지를 계획한다.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정말 쉼없이 돈벌이를 고민하고 실행하며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편. 하루 12시간이 넘도록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내게, 신랑은 정말 집안일을 하나도 시키지 않는다. 요리, 청소, 빨래는 물론이고 내가 흘린 내 머리카락도 치우지 말라고 할 정도.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심각하게 이거도 저거도 하지 말라고 하니, 일부러 내 손발을 꽁꽁 묶어 자기 없이는 못 살게 하려고 이러나 싶기도 하다ㅎ



나는 신랑이 집안일을 해줘서 고맙고 또 잘해줘서 좋은데, 신랑은 가끔 아쉽다는 말을 한다. 무엇이 아쉬운지 들어보면, 고의로 무얼 잘못했다기보다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대부분이다. 저번에 이걸 먹고 맛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맛있다는 말을 안 해줘서, 저번에는 여기가 깨끗해서 좋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봐주지 않아서 등등. 직접 얘기하기는 어려운지 꼭 친구들과 모였을 때 이야기하는 통에 난감할 때가 많았는데,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느낀다.



그에게는 내가 해주는 말과 인정이 주부로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외적 보상이구나.



주부는 직업이다. 분명히 그렇다.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대우는 오직 가족만이 해줄 수 있다. 어쩌면 신랑을 가정주부로 둔 내 책임이 막중한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더 잘 먹고 칭찬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본 매거진에서는 주부인 남편을 보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을 기록합니다. 남편이 주부가 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글에 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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