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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Oct 05. 2023

제 남편은 희귀난치병 환자입니다

크론병을 아시나요?


7년 전, 원인불명의 복통과 설사를 겪던 신랑은 크론병을 진단받았다. 안타까운 건 크론병을 진단 받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험난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낯설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쳐있을 크론병. 윤종신이 투병 중인 병으로 알려진 크론병은 한 드라마에서 부정적인 느낌으로 읽히면서 뜻하지 않은 이미지를 얻기도 한 병이다. 사실 희귀병이나 난치병의 경우 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이 알고 관심을 갖는 만큼 인력과 지원이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표했고 드라마 측에서도 해명했지만 조금이라도 부정적 인식을 만든 건 역시나 아쉬운 일이다.



자칫 남의 일로만 치부될 수 있는 크론병은 사실 환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의 병이다. 소화기관에 발생하는 질환이다보니 특히 국내에서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 의견이 많았다. 크론병은 희귀난치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만큼 아예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차선은 걸리더라도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인데. 사실 희귀병이니 난치병이니 하는 말들은 왠지 모호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찾아봤다.



※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른 희귀질환 지정 기준에는 유병인구 수와 기술 수준, 치료 가능성, 사회경제적 비용 등이 포함된다. 세부 검토기준은 아래와 같다.

- 유병인구 2만명 이하인 질환
- 특이적/독립적으로 진단이 가능한 질환
- 중증도가 높고 완치가 어려운 질환
- 진단 및 치료 등에 대한 본인부담이 높은 질환
- 원발성 질환(2차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질환이라는 뜻)

[출처: 네이버 지식인 국민신문고 답변]



위 내용에 따르면 단순히 유병인구가 적은 것만이 희귀병이 아니다. 진단이 어렵고 치료를 위한 기술이나 인력, 시설이 부족해도 희귀병이 될 수 있다는 뜻. 또한 중증도가 높고 완치가 어려운 질환도 희귀병에 포함되는 것을 보면 난치병도 희귀병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진단이나 치료가 어렵다는 건 환자가 진단까지 겪을 어려움이 매우 크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아마 그래서 내 신랑도 험난한 과정을 거친 것일터. 신랑에게는 지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금 겪는 일, 혹은 앞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일일 수 있으니 브런치를 통해 공유해보고자 한다. 물론 신랑의 허락은 받았다.










먼저, 크론병이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에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 대장과 소장이 연결되는 부위인 회맹부에 질환이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며 그 다음으로 대장, 회장 말단부, 소장 등에서 흔히 발생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냥 염증 질환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조금은 애매모호해보이는 정의. 하지만 역시 괜히 희귀병, 난치병이라는 말이 붙는 게 아니듯 진단이 쉽지만은 않은 질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장염 증상과 유사한데다가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질환이다보니 다른 질환과의 감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론병은 충수염(흔히 맹장염으로 알려진 질환의 정식 명칭. 본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맹장으로 부르겠습니다)으로 오진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사실 오진과 관련된 사건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실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5년 전 오진으로 인해 한 의사가 법정 구속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뉴스에 나올 정도의 큰 사건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개인의 삶에서 오진은 마냥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만큼의 시간을 더 고통받고 더 많은 돈과 에너지가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겪었을까?


신랑은 어릴 때부터 배가 종종 아파서 병원에 갈 때가 있었지만 진통제를 먹으면 낫는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군대를 갔다오며 아토피라는 면역질환이 생겼고,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가 이전보다 자주 심하게 아팠다고 한다. 간혹 통증이 심할 때는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아팠고, 진경제(경련 완화제) 등을 맞아야 안정이 될 정도였다고.



아주 심하게 아팠던 어느 날, 신랑은 또 응급실에 가야만 했다. 그 병원에서 맹장으로 의심받은 신랑은 곧바로 수술을 하게 된다. 요즘 맹장은 복강경으로 최소절개를 한다고 하는데, 신랑이 간 병원은 왜인지 개복 수술을 선택했다. 배를 열어보니 염증은 짐작했던 충수가 아닌 소장에 가까운 부위에 있었고, 해당 병원에서는 그 부분을 추가로 절제했다. 크론병을 의심했는지 다른 질환을 의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후에도 대장내시경을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을 더 했고, 이후 신랑에게 큰 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미 극심한 통증을 오랜 기간 겪은데다가 수술, 반복적인 대장내시경 후에도 통증이 지속되자 지친 신랑. 그는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명의가 있다는 곳을 찾았다고 했다. 큰 병원으로 옮긴 후에도 대장내시경은 또 해야 했고, 복부에 부분 마취를 하고 절개해 염증을 뽑아내는 시술도 받았다. 약 한 달 간의 입원을 거치며 혈액 검사와 약물 투여 및 경과 관찰을 반복하던 신랑은 결국 크론병을 진단받았다. 몇 달 간의 입원, 수술, 그리고 3번의 대장내시경을 거친 신랑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의 수술은 없었지만, 희귀난치병을 진단받고 기약없이 약을 먹으며 검사를 해야하는 미래도 떠안게 되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신랑은 지난 일이라며 굳이 들어서 좋을 게 없다고 했지만, 잔존한 직업병 탓인지 나는 자꾸만 과정을 복기해보게 되더라. 만약 이 상황이라면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비슷한 다른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지난 일이지만 행복회로를 돌려보자면...



응급실에 몇 차례 갔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의사한테 꼬치꼬치 물어본다. 정확한 답변을 받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원하신다면 추가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 정도는 받았을 것. 어떤 검사를 받으면 되는지 확인하고 혹시 진료 의뢰서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물론 이건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이후 큰 병원을 예약해서 진료/검사를 받고 최소한의 내시경과 시술/수술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다.



쓰고보니 가족 중에 병원에서 일하는 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위의 과정 중 최소 하나 이상은 틀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어서 이렇게라도 적어본다. 내가 알지 못했던 몇 년이나 지난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신랑의 배에 길게 남은 흉터를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은 적는 것이라도 하는 것뿐이니까. 이 글을 본 단 한 분이라도 같은 일을 겪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지금은 이래요


물론 신랑의 배를 보고 속상한 것과 병의 치료 과정은 아주 별개다. 만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머뭇머뭇 앓고 있는 병과 먹는 약을 말했다. 간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의료기록 상으로는 본 적 있는 질환이었지만 병원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무슨 약을 먹는지, 현 상태는 어떤지 등등을 살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하는 면역억제제를 무려 7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있다는 그. 진료도 빠진 적 없는 어쨌든 성실한 환자. 앞으로를 함께할 사람으로서 건강을 챙긴다는 점은 아주 괜찮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혼할 결심으로 만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7년 간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다고 해서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더라. 그래서 연애 초부터 그의 진료를 따라다녔다. 직장을 다닐 때는 신랑(당시 남자친구)의 진료일마다 휴가를 냈고, 지금은 아예 풀재택으로 일하고 있어서 미리 일해두거나 야근하는 편.



막상 진료에 함께 들어가보니 신랑이 진료에 임하는 자세는 조금 아쉬웠다. 뭐랄까, 너무 소극적인 학생이었달까. 의사의 잘 지냈냐는 질문은 정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질문이고, 3개월에 한 번뿐인 진료 시간은 정말 귀한 시간인데. 신랑은 '네, 잘 지냈습니다. 그냥 조금 아팠어요. 회사 스트레스 정도? 네, 네네...'로 아주 짧고 (의사 입장에서) 정보가 부족했다. 처음에는 가만히 지켜보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참지 못하고 대신 답변해버렸다.



O월 O일에 저녁으로 낚지볶음이랑 콩나물을 좀 먹었는데 배가 아프다고 해서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진통제 있던 걸로 처음에 두 알 먹고도 계속 아파서 한 번 더 먹었다고 했어요. 맞지? 그 외에도 O월 O일, O월 O일에도 아파했는데 그때는 특별하게 다른 거나 섬유질을 먹지 않았는데도 아프다고 하더라구요. 진통제는 한 알씩만 먹었는데 추가로 더 먹지는 않고 괜찮아졌어요. 또...



거의 간호기록처럼 적어서 읊었던 것 같다. 중환자실, 정신과 병동 등에서 일하며 체감한 기록의 중요성은 필요한 순간이 되자 자연스럽게 다시 체화됐다. 무엇이 중요한 포인트인지를 조금이나마 알기에 미리 기록해두기도 했고, 또 마침 신랑이 다니게 된 병원이 내가 일했던 병원이라는 행운도 있었다(기록하는 방식이 병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아마 교수님 입장에서는 갑작스레 깐깐한 보호자가 추가된 셈이기도 했겠지만, 적어도 환자를 위하는 마음만은 같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병원을 다니고 신랑을 관찰하다보니, 크론병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 반응도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매일같이 붙어 있으면서 본 신랑이 아픈 날은 특히나 스트레스가 심한 때이기도 했다. 정신과 간호사로도 일했었기에 내심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병원도 생각했지만, 슬쩍 권해보니 자신은 괜찮은 것 같다고 해서 한 번 더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던 차, 크론병 교수님이 먼저 제안을 주셨다. 매번 병원에 올 때마다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신랑을 유심히 보셨던 것 같다. 크론병 환자들이 스트레스 클리닉도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조심스레 제안해주셨다. 안그래도 바랐던 나는 적극 찬성했고, 신랑도 교수님이 말씀하시니 그럼 한 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소화기내과, 정신건강의학과를 함께 다니게 되었고 정말 부지런히 일상에서의 치료에 힘썼다. 크론병에 대해서는 배가 아픈 상황이 생기면 정확한 증상과 먹은 것들 그리고 어떻게 처치했는지를 기록했고, 못 먹던 음식들도 하나하나 소량씩 먹어보기도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민감도와 불안도가 높은 것 같다고 하셨기에, 내가 배워 온 모든 상담과 행동치료를 함께 적용해보려고 노력했다.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떠한지 옛날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어땠는지 등등 수많은 대화를 했고,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기 위한 여러 도전들도 함께 했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결국 신랑은 직장을 퇴사했고 지금은 행복한 주부로 살고 있다.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고 나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신랑의 치료만이 아닌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적극적으로 치료하면서 오히려 일상에서의 행복을 한껏 누리며 살던 우리는, 한 달 전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에서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염증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귀한 결과를 받았다. 아직 관해기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성급하지만 그래도 관해기에 한 걸음 나아간 것이 아닐까 싶은 기분 좋은 결과. 우리는 아직 치료 중이지만 또 아픔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났다.










사실 간호사로 일했다해도 크론병은 낯선 병에 가까웠다. Crohn's disease라는 한 줄로 쓰인 과거력은 자주 보았지만, 당장 숨을 쉬기 어렵거나 심장이 기능하지 못하는 급박한 증상에 의해 과거력으로만 와닿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크론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 들어본 것 같은데? 하다가 영어로 듣고서야 이해했던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신랑의 옆에서 경과를 지켜보며 체감하는 크론병의 힘듦은 고작 한줄에만 담기기에는 너무나 컸다. 크론병만이 아닌 희귀난치병, 만성질환 등 각종 병마와 싸우는 분들에게는 모두 표현되지 않는 벅찬 힘듦과 아픔이 있을 터. 블로그에 몇 번 적었던 크론병 글을 수많은 페이지를 넘겨 찾아주시는 걸 보면서 든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가끔 댓글로 질문을 주시는 분들에게는 의료 지식보다는 간호사로서의 병원 이용에 대한 도움만 드릴 수 있었는데, 나의 작은 조언을 귀하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더욱 감사하기도 했다.



신랑은 여전히 희귀난치병 환자이지만 정말 많이 건강해졌고, 앞으로는 더더욱 건강해질 예정이다. 신랑이 좋아진 건 먼저 성실한 환자였기 때문이고, 또 와이프인 내가 의료 정보를 대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좀더 수월했기 때문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간호사였고 또 지금은 오직 신랑만을 위한 간호사로 살지만,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만 기록해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순히 크론병만이 아닌 병원을 잘 이용하는 방법, 일상에서 내가 가진 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 등 간호사로서 일했기 때문에 드릴 수 있는 정보들. 당장 건강하기에 와닿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정말 신비해서. 먼훗날 혹은 주변 누구라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더 빠른 치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이 매거진은 관해기로 한 걸음 나아간 크론병 환자의 기록을 담음과 동시에, 간호사로 일했고 면허를 가진 자로서 많은 분들이 더 잘 치료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껏 적어볼 예정입니다. 부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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