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와 함께한 인연, 우리의 러브 스토리 - 1편
※ 본 내용은 시리즈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전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프롤로그를 보고 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 글자를 누르면 이동합니다 :)
우리 부부는 각자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어느 것도 접점이 없었다. 그와 만나게 된 것도 우연히 합류한 스타트업에서 내가 들어가고 시작한 프로젝트 덕분이었고, 학교도 출신지역도 직장도 어느 하나 비슷한 것이 달랐다. 나중에 들어보니 신랑이 프로그램을 알고 참여하게 된 것도 직장 동료의 추천 덕분이었으니. 우리의 만남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 운명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우연한 만남이 어디 우리만 있겠느냐만은, 예전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늘 신기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만큼 우리가 잘 맞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첫 만남부터 매우 소심해보이는 인상을 주었던 신랑은 보면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함께 한 프로그램 자체가 사람을 사람으로서 알아가기에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나의 마음 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생각들을 다양한 미술 활동으로 표현하고, 이후에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이야기를 나눠야 했으니까. 어쩌면 친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이 사람 외에도 다른 참여자들이 많았고 나는 진행팀인 이상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했지만. 나도 한 명의 사람이기에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생기게 마련이었다.
그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참 편했다.
나중에 가까워지면서 느낀 점이 우리는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게 정말 많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러한 특징들이 서로와의 대화를 편하게 느끼게 했던 것 같다. 우선 나는 진행팀이었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시간 조율과 엄수가 꽤 중요한 점이었다. 평소에도 미리 조율되지 않은 만남이나 급박한 약속 혹은 사전에 고지되지 않은 시간 어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수십명의 시간을 조율하는 일을 하려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신랑은 평소 시간 엄수가 칼같은 걸 넘어서 죽어도 늦는 것은 못하는 사람이다(ㅋㅋㅋ). 결혼하고 병원 진료를 다닐 때마다 30분 전까지 도착하고 싶어하는 걸 내가 10분 전으로 바꾸는 것도 정말 어려웠으니까.
신랑이 프로그램에 늦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고, 총 8회기의 시간을 완벽하게 다 참석했다. 설령 일정이 생겨 시간을 변경한다고 해도 언제나 하루 이틀 전에는 알려왔고 변경한 시간대로 잘 나타나주었다. 완벽한 모범생 스타일인데 무례한 언행도 없고. 오히려 굉장히 예의바르고 격식을 챙기는 통에 우리가 더욱 몸둘바 몰라 했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진행 측에서 무언가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성실하게 따라주는 사람. 이 사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인간적인 호감이었다. 정말이지 괜찮은 너무 좋은 사람. 나중에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다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큰 시기였다. 병원을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내가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자꾸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운좋게 합류하기는 했으나 일하면서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현실을 자꾸 직면하게 되었다. 간호학과를 나와서 간호사만 해보았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회사와 나 서로에게 보탬이 되는 상태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 나를 알던 사람들은 내가 퇴사하고 정말 밝아보인다며 부러워했지만 실제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마음과는 달리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병원에서 겪은 일을 기반으로 에세이를 발간할 예정이었다. 병원을 퇴사하고서는 못 해본 걸 다 해보겠다며 큰소리쳤었는데. 운좋게도 자꾸만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상황들이 펼쳐졌다. 퇴사 후 글쓰기 모임을 가기 시작했었다. 매주 단편을 쓰다보니 장편이 쓰고 싶어졌고, 장편을 쓰려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오직 간호사를 했던 경험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장편의 글들을 읽어본 모임원들이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응원해주었다. 어쩌다보니 같은 모임 안에 편집자를 업으로 하는 분이 계셨고, 그분과 대화하다가 얼떨결에 크라우드 펀딩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회사는 그만두게 되었지만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많아졌기에 마음만 바빴다. 와중에 프로그램은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기에 마지막 날 마무리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동안 나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궁금해하기도 아쉬워도 했다. 그 속에는 신랑의 아쉬움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나는 출간할 책의 퇴고 겸 휴식하러 치앙마이 한달살기 갈 거라는 소식만 남기고 그와 헤어졌다.
한창 치앙마이로 떠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상세페이지며 리워드 디자인, 계속되는 책 편집에 대한 내용, 한달살기를 가기 전에 한번 보면 좋겠다는 지인들과 다녀와서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출국 이틀 전, 그에게 연락이 왔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받은 첫 연락이었다.
며칠 후면 치앙마이에 가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잘 다녀오세요!
진한 관심이라기엔 선선한 한 줄의 연락. 맞아요, 고마워요. 하며 인사했지만 답장은 더 오지 않았다. 그는 도무지 오해할 거리라고는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틀 후, 나는 치앙마이로 떠났다. 푸릇푸릇하고 따뜻한 곳,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자유로운 휴식을 즐겨야지 생각하고서.
하지만 혼자 찾은 치앙마이는 왠지 조금 추웠다. 한낮이면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는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분위기 좋다는 카페에 들어가면 세게 틀어진 에어컨 바람의 차가운 한기가 마음까지 파고들었다. 밤이면 음악과 열기가 가득한 골목 거리거리에서 밝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에 소주를 마셔본 기억을 되새기며 흥겨워보이는 펍에도 들어갔지만 뭔가 부족했다. 흘끔거리는 시선 속에서 당당히 맥주까지 다 마시고 나왔지만 아쉬웠다.
사람들로부터 숨고 싶어서 왔는데 되려 사람이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달까. 평점이 좋다는 카페도 찾아다녀보고, 끝없이 퇴고를 하고, 투어도 신청해서 다녀와보고, 투어에서 동행한 친구들과 놀기도 하면서, 치앙마이에 온 이유는 잊은 채 다시금 부지런히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열심히 놀아도 혼자 택시를 타고 커다란 집에 들어오면 왜일까, 사무치게 외로웠다.
혼자 애쓰며 놀고 있던 그즈음이었다.
치앙마이 가셨다고 했는데 잘 지내고 있어요?
라며 그에게 온 문자 한통. 온종일 나 자신의 감정에 허우적대며 웃기도 울기도 하던 나를 정신이 확 들게 하는 문장이었다.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아다니다 문득 생각나서 찾아왔다는 듯한 느낌의 연락. 과도한 관심은 싫고 또 그렇다고 무관심은 서러운데 너무 깊거나 얕은 관계는 왠지 불만스러운, 나조차도 당황스러운 상태의 나에게 보내진 딱 알맞은 문자였다.
나, 치앙마이에 와서,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별 것 아닌 안부인 것 같지만 되돌아보게 하는, 정신차리고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에게 무어라 보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무엇이 좋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두세 줄 정도로 정리해 보냈던 것 같다. 그의 답장은 언제나 그랬듯 짧으면서도 편안했고 동시에 명확했다. 안부를 묻고자 하였는데 잘 지내는 것 같다니 다행이다.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던 문자에는 이전과 달리 한 마디가 더 덧붙여졌다.
한국 돌아오시면 밥 한번 같이 먹어요.
깊이 가라앉은 내 상태와 다른 가벼운 어조 때문이었을까. 그와의 만남에 대해 특별한 기대감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잠깐이나마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일 낮이면 커피를 잔뜩 마시고 밤이면 맥주를 잔뜩 마셔서 불면에 시달리던 때였지만, 그날만큼은 평온하게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남은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을 좀더 기억에 남을 순간들로 채울 수 있었다.
▶ 저희의 이야기를 브이로그 영상으로도 조그맣게 만들고 있어요. 브런치에는 더 자세하고 솔직한 마음이 담깁니다. 글을 보시고 괜찮으셨다면 영상으로도 놀러와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