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 갤러리, 2024. 12. 26. – 2025. 2. 8.
김병호 작가의 개인전 《탐닉의 정원》이 아라리오 갤러리의 2024년 마지막과 2025년의 시작을 장식하며 개최되었다. 본 전시에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천착해 온 금속 매체의 물성과 이를 통해 구현되는 유기적 형태 사이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부터 꽃의 수술을 연상케 하는 ‘곤봉 모양’의 유기적 추상 형식을 탐구해 왔으며, 이러한 형태는 차갑고 단단한 금속이라는 재료와의 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형성한다. 작가가 시도한 물질적 이질성의 병치는 자연과 인공, 유기체와 무기물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내재된 모순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185개의 곤봉 모양 금속 조각이 촘촘히 엮인 대형 설치 작품 <수평정원>(2018)은 이와 같운 작가의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자연의 유기적인 형태를 기계적인 정밀성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단순히 자연과 기술의 대립 구도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기술 문명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자연'이라는 개념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탐닉의 정원》이라는 전시 제목은 작가의 의도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정원’이라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의지가 투영된 인공적 자연의 구현체로서, 자연을 길들이고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랜 욕망을 내포한다. 태초의 에덴에서부터 시작된 정원의 역사는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이상향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병호의 ‘정원’은 자연에 대한 낭만적 동경과 동시에 그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얽혀 있는 공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탐닉’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인위적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멈추지 않는 갈망을 암시한다. 작가가 금속이라는 차갑고 단단한 물질로 빚어낸 ‘정원’, 차가운 금속의 물성 안에서 생명력을 잃고 뻣뻣하게 굳어버린 유기적 형태는 얼어붙은 욕망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현대인의 내면에 자리한 양가적인 감정, 즉 기술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이성과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향수라는 감성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렇듯 김병호의 작품은 기계적 정밀성과 유기적 형태의 조화를 통해 현대인의 모순된 욕망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김병호는 깎아내리거나 붙여 나가는 전통적인 조각 방식 대신 정교한 설계 도면과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을 활용한다. 그는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바탕으로 건물을 짓듯, 수많은 금속 모듈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복잡한 구조체를 만들어낸다.* <57개의 수직 정원>(2024), <아홉 번의 관찰>(2024)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개별 모듈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형태를 지니면서도 전체 구조의 일부로 기능한다.
* 김병호는 200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 2002년부터 예술공학을 연구했으며, 2004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 영상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중 예술 공학을 연구한 그의 학문적 배경이 작업 방식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다른 한편, 그의 작품을 특징짓는 핵심적인 요소는 매끄러운 금속 표면이 만들어내는 ‘자기 증식적 반사’ 효과다. 흔히 금속 표면의 반사를 활용한 조각을 떠올리면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카푸어의 반사가 관람객의 '현존(presence)'을 일깨우는 철학적 사유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면, 김병호의 반사는 이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미학적 전략을 취한다. 그의 작품에서 반사는 단순히 외부 이미지를 투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넘어,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고 작품의 형태를 더욱 '촘촘하게' 완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마치 다이아몬드의 수많은 면들이 빛을 다각도로 반사하며 광채를 뿜어내듯, 개별 금속 요소들은 주변의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기 증식적 반사를 통해 형태의 밀도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며 형태의 완결성을 더욱 강조한다. 빛의 반사를 통해 시각적 풍요로움과 다층적인 의미를 선사하며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김병호의 작품 세계가 앞으로 더욱 폭넓은 공감을 얻으며 확장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