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계절의 엔딩

두 해의 맑은 가을 하늘, 서른 세번의 일출을 되돌아보며

by yule

372일 동안의 산티아고 순례길, 카미노 프랑세스 779km 걷기를 완료했다. 이 길을 걸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사실 종교적인 신념이 있었다거나, 큰 고민을 해결할 시간이 필요했다거나, 힘듦을 더 큰 힘듦으로 덮기 위했다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온 게 아니라 단순히 휴가를 보내기 위해 시작한 가벼운 생각의 여정이었다. 그래서 작년의 경우에는 순례길 브이로그나 블로그는 그다지 보지 않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따위로 출발했다. 올해도 그러했지만, 작년에도 힘들다며 버스를 타거나 ‘점프’를 하거나, 동키 서비스로 짐을 보내지도 않고 속세의 미련을 다 짊어지고 길을 걸었지만, 오히려 그 길을 통해 순례길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보다 큰 미련을 얻었다.


그래서 반만 끝내고 레온에서 돌아간 이후의 근 1년은, 가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내기 위한 1년이라고 할 만큼 퇴근하면 관련 미디어를 찾아보고, 회사에서도 부서 이동 직후부터 “추석 전후로는 휴가를 쓰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랬기에 모두들 “휴가를 왜 그렇게 힘들게 보내려고 하냐”며 이 여정을 이해하지 못하긴 했지만, 휴가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큰 논쟁 없이 작년과 마찬가지로 25일 연속으로 휴가를 내고 사직이나 이직 없이 순례길을 걸을 수 있었다.


다시 온 카미노는, 작년에 그러했듯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놀라운 풍경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시작 전에 예상했던 대로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의 의지를 시험했고, 작년 가을을 떠올리게 했으며, 그 속에서 아주 조금 달라진 모습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특히 5mm 작은 신발을 신은 덕에 까맣게 변한 발톱은 초반 일주일 동안 돌산, 특히 급격한 오르막과 내리막 돌길에서 돌부리에 채일 때마다 찌릿한 통증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날씨는 천운이 따랐는지 비오지 않는 10월의 갈리시아, 안개만 낄 뿐 파랗게 맑은 하늘의 카미노를 걸을 수 있었다.


310km를 남기고 시작한 시즌 2는 사리아를 지나 마지막 100km부터는 ‘이제 진짜 이 길이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작 별 생각이 없고, 잠깐 멍하니 있다가 순례자 사무실에서 증명서를 받느라 바빴다. 오히려 다음 날 보타푸메이로를 볼 때 울컥했고, 내가 직접 걸어왔다면 느낌이 다를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버스 투어로 찾은 묵시아 등대를 보며 ‘이제 진짜 끝났구나’라고 느꼈다. 그런 걸 보면, 올해 순례길 증서는 779km를 끝냈고 다리로는 310km를 끝냈지만, 나는 1년 동안 순례길을 마무리할 준비를 해 왔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는 이번 카미노에서 0km를 끝내는 마냥. 그래서 이제 나는 ‘지나간 여름’을 더 이상 ‘안타까워’ 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20일간의 시즌 1, 13일간의 시즌 2로 첫 번째 카미노 프랑세스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어젯밤 대성당과 헤어지면서, 다시 대성당을 보게 될 때는 지금처럼 별생각 없이 오기보다는 무언가 의미를 담아서 오면 좋겠다고 다짐했으니, 카미노를 다시 걸을지, 걷는다면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지만, 다시 오게 된다면 좀 더 의미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작년만 해도 이 길의 아시아인은 한국인이 제일 많았는데 1년 만에, 특히 사리아부터는 대만 사람들이 엄청 많이 늘어서 깜짝 놀랐다. 그동안 대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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