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
저마다의 의문을 품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이들에게 길은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800여 킬로미터의 여정은 걷고, 먹고, 잠드는 지극히 단순한 일상을 통해 삶의 군더더기를 걷어내게 한다. 길 위에서 순례자는 거창한 깨달음이 아닌, 시원한 콜라 한 캔의 소중함과 낯선 이의 따뜻한 인사가 주는 충만함을 배우며 깨닫는다. 인생이라는 다음 순례길을 걸어갈 힘은 바로 이 단순함 속에 있음을.
"나는 왜 여기에 와서 이 힘든 길을 걷고 있는가. 이 고됨을 견디며, 어렴풋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순례길에 오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우리는 벌어지지 않은 일, 어쩌면 결코 벌어지지 않을 일에 대해 필요 이상의 걱정을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삶의 무게가 버거워질 때면 낯선 곳에서 운명 같은 깨달음을 얻거나, 인생의 방향을 바꿀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또한 그러한 기대감을 품고 떠나는 이들의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무거운 배낭을 메고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길은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배신한다. 길은 묵묵히 이어질 뿐, 선뜻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다만, 심오한 철학적 고찰 대신, 그저 걷고, 먹고, 씻고, 잠드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반복만이 존재할 뿐이다.
현실에서의 삶이 수많은 관계와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분투의 연속이었다면, 역설적이게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떠나온 이 곳에서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의 걸음' 외에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심지어 어느 길로 가야 할지조차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길을 잃을 듯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문양이 나타나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길은 순례자가 오롯이 내면과 걷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침묵의 안내만을 내어준다.
물론 그 시작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생장피에드포르의 고즈넉한 풍경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는 순간, 속세에 두고 오지 못한 미련과 걱정은 배낭의 무게가 되어 현실로 어깨를 짓누른다. 목가적인 풍경 너머로 나타나는 험준한 피레네 산맥의 가파른 오르막은 순례자의 의지를 시험하고, 며칠간 이어지는 돌길 위에서는 ‘내가 과연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순례길은 놀랍도록 정직하다. 장장 800여 킬로미터의 프랑스길은 체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꾸준한 사람에게 마침내 완주를 허락한다. 내가 내디딘 발걸음만큼 목적지는 어김없이 가까워지고, 길가의 표지석에 새겨진 남은 거리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몸은 어느새 길의 리듬에 적응하고, 고통으로 가득했던 시야는 비로소 길가의 아름다운 자연과 광활한 풍경을 담기 시작한다.
삶이 이토록 단순해질 때, 행복은 가장 선명한 얼굴로 다가온다. 미리 숙소를 예약할 필요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가 마음에 드는 마을이 나타나면 그곳에서 하루를 묵으면 그만이다. 다음 마을에서 마실 시원한 콜라 한 캔, 저녁 식사에 곁들일 와인 한 잔을 떠올리는 소박한 기대감은 다시 배낭을 메고 몇 킬로미터를 더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 비바람 속에서 힘겨워하지만, 잠시 열린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 깊숙한 곳까지 눈부신 푸르름을 충전한다. 일찍 도착한 마을을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맛있는 핀초스 꼬치 하나, 때로는 쉼 없이 걷다 멈춘 바르에서 파는 라면 한 그릇은 우연과 사소한 선택들이 얼마나 큰 기쁨이 될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그리고 너른 벌판 위로 총총히 박힌 별과 등 뒤에서 밝아오는 보랏빛 여명을 오롯이 마주할 때, 길 위의 지친 몸은 행복의 빛으로 물든다.
무엇보다 순례길은 걷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과 마을이 함께 만드는 하나의 살아있는 공동체 문화다. 그렇기에 이 길은 혼자 시작할 수 있지만, 결코 혼자 완주하는 길이 아니다. 각자의 발걸음으로 출발했지만, 수많은 이들의 진심이 모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길 위에서 순례자는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서로 다른 이유로 떠나온 이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며 함께 성장해간다. 그래서 혼자만의 사색도 중요하지만, 길 위에서 마주치는 인연은 이 단순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이 된다.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스펀지 매트리스가 다닥다닥 붙은 순례자 숙소(알베르게)에서 잠을 청하는 낯선 경험 속에서 순례자는 밝고, 어둡고, 즐겁고, 아픈 감정을 느끼며 모두 같은 길을 걷는다는 동질감으로 연결된다. 덕분에 매일같이 마주치던 익숙한 얼굴과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끈끈한 내적 친밀감이 생기고 처음 만나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과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과 생각을 나누는 동안 나는 결코 알지 못했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혼자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를 길을 계속 걸을 힘을 얻는다.
길 위의 연대는 순례자 사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길에서 만나는 마을 주민들은 창문을 내리고 “부엔 카미노!(¡Buen Camino!)”를 외치고, 나무 막대기를 나누어주며 응원을 보내고, 누군가는 순례자를 위해 간식과 과일을 내어놓는 무인 휴식처를 운영하기도 한다. 마음의 장벽을 넘어, 처음 보는 이방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따뜻함 속에서 순례자는 매일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왼쪽 손등이 오른쪽보다 눈에 띄게 그을리고 길의 끝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왜 이 힘든 길을 걷고 있나?’라는 처음의 질문은 서서히 빛을 잃는다. 대신 ‘일상에서 나를 괴롭히던 그 수많은 고민이 정말 그토록 중요했던 것일까?’ 하는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의심과 불안의 껍질을 깨고 길 위에서의 단순한 일상을 즐기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줄어드는 거리가 아쉬워질 때쯤, 순례자는 비로소 이 길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 길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단순함 속에 숨겨진 삶의 본질과 한 걸음의 가치를 배우는 길이었음을.
어쩌면 길은 순례자가 기대했던 답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 끝내 답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대성당 앞 오브라도이로 광장에 도착했을 때, 순례자는 길 위에서 답을 찾는 대신, 다시 자신만의 새로운 '콤포스텔라'를 향해 떠날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마음에 쌓아 타인에게 온기를 전하는 법을 배운 순례자는, 이제 마음속에 새겨진 노란 화살표와 함께 인생이라는 다음 순례길에 나설 준비를 마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길을 걷는, 인생의 순례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