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한국인.

왜 까미노에는 한국인이 많다고 느껴질까?

by yule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기본적으로 유럽 끝자락인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수많은 길을 총칭하는 말이다. 가장 유명한 길은 생장피에드포르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프랑스길이지만, 이 길 말고도 이베리아 반도 북쪽 해안가를 따라 걷는 북쪽길, 리스본부터 포르투갈을 관통하는 포르투갈길, 가장 오래된 길이라고 여겨지는 프리미티보 등 50가지가 넘는 다양한 길이 있다. 프랑스길만 해도 프랑스 내륙에 있는 르 퓌앙블레에서 시작해서 오는 사람도 있다.


지난 8년간 전체 순례자 수와 프랑스길, 포르투갈길 선택 비율

나처럼 중간에 돌아온 사람은 제외하고 2024년 한 해 동안 100킬로미터 이상 걷거나 200킬로미터 이상 자전거를 타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여 순례길 인증서를 받은 순례자는 49.9만여 명에 달한다. 물론 이 중 절반 가까이는 가장 유명한 프랑스길을 걷는다. 순례길 인증서를 발급하는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매일 순례자 통계를 업데이트하는데 이에 따르면 2024년에는 47.4%의 순례자가 프랑스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만 해도 54.6%의 순례자가 프랑스길을 까미노로 선택한 데에 비하면 많이 하락한 숫자이며, 이는 포르투갈길의 인기가 급상승한 데에 기인한다. 2019년 대비 2024년 순례자가 15.1만 명(43.5%) 증가했는데, 프랑스길 순례자는 4.6만 명(24.5%) 증가한 반면, 포르투갈길(과 포르투갈 해안길)의 순례자는 7.6만 명(79.8%)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인만의 까미노 특징이 있을까?


2024년 순례자 국적

까미노는 주로 스페인을 걷게 되므로 당연히 스페인 국적 순례자가 가장 많다. 그리고 아마도 이들은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걷기보다는 우리가 올레길 걷듯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걷고 완주증을 받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다음이 미국, 이탈리아 순이다. 2024년 기준 한국 순례자는 7,910명으로 10번째(1.58%)를 차지하니 겉으로 보면 순례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은 스페인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14시간을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상위 10개국 중에 가장 멀리 위치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 중 다음으로 순례자가 많은 대만, (아마 높은 비율로 홍콩일 가능성이 높은) 중국, 일본을 모두 합쳐도 한국인 순례자 숫자보다 적다.


한국인의 까미노에 대한 높은 관심은 물론 '스페인 숙박', '같이 걸을까'과 같은 미디어 노출 효과의 영향 때문도 있긴 했겠지만 스페인 숙박이 방영되기 5년 전인 2014년에도 한국은 순례자 순위 중 10위였다. 또한 해당 미디어 노출 효과는 서서히 하락하면서 전체 까미노 순례자는 증가한 데 반해 2019년(8,213명, 2.36%)과 비교할 때 2024년 한국인 순례자 수는 도리어 감소했다.


2024년 한국 포함 주요 국가 순례자의 프랑스길, 포르투갈길 비율

그리고 한국인은 유난히 프랑스길을 선호한다. 실제로 주요 10개국 중 한국만큼 프랑스길 비율이 높은 나라는 없었으며 하다못해 프랑스(60.2%)보다도 높다. 물론 이는 2023년(82.7%)보다는 낮아진 수치다.


2024년 기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한 순례자 국적 및 프랑스길 순례자 중 생장피에드포르 출발 비율

게다가 한국인은 프랑스길 중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는 순례자가 매우 많은데,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는 순례자 수만 따지면 한국인이 미국인 다음으로 2위이며, 프랑스나 스페인보다도 높다. 2024년 기준 한국인 프랑스길 순례자의 65.8%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했다. 전체 프랑스길 순례자 중 13.8%만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한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수치이다. 이에 반해 한국 프랑스길 순례자의 사리아 출발 비율은 23.0%로 전체(63.9%)나 스페인(80.1%) 순례자의 해당 비율과 비교할 때 매우 낮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를 한다는 의미는 1달 이상의 시간을 까미노 위에서 보낸다는 의미이다. 물론 유럽에 사는 사람들 중에도 퇴사를 하거나 갭이어를 가지고 한 번에 1달 이상의 시간 동안 까미노를 완주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시간이 날 때 구간별로 걷고 이를 이어서 하나를 완성하겠다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 특히 휴가를 장기로 내기 힘든 한국인이라면 1-2주 정도의 휴가 기간에 다른 휴양지나 관광지를 제쳐두고 제 발로 제 짐을 들고 걸어야 하는 까미노의 일부 구간만을 걷겠다고 오는 경우는 드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만난 젊은 한국 사람들 대부분도 퇴사든 휴학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쉼을 선택하고 5주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까미노에 온 사람들이었고 까미노 앞뒤로 유럽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편이었다. 그렇다면 한 번에 걷는 비율만 추산한다면 위의 순례자 국가 비율보다 동아시아 순례자 비율이 높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왜 까미노에 한국인이 많은가'는 까미노에서 다른 나라 순례자로부터 종종 들었던 질문이었다. 물론 대만 순례자로부터 '한국에서는 취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 까미노를 걷는다'라고 들었는데 사실이냐 따위의 질문도 있었다. (아마 이건 '그냥 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죠.' 정도가 와전된 게 아닐까 한다.) 일단 같은 지점에서 같은 날 출발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게 되면, 사람의 이동 속도와 거리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어제 봤던 사람을 오늘 길에서 마주치고 바르에서 쉬면서 만나고 알베르게에서 체크인하며 만나며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보면서 이동하게 된다. 아마 생장피에드포르에서부터 한 달여간 800킬로미터를 걷는 사람들에게 있어 한국 사람은 일단 출발할 때부터 많았고, 계속 보게 되니 '저 먼 나라 사람이 여기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따로 왔어도 같이 다니는 특성까지 있으니 다른 나라 순례자들에게는 더 규모있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중장년 한국인 순례자들은 한국에서부터 여행사를 통해 와서 대규모로 다니는 경우도 꽤 있다. (이들이 대형 숙소를 대부분 예약해서 개별 순례자들이 묵기가 힘들다는 의견은 까미노 카페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하소연 중 하나이다.) 제일 중요한 건 정말 한국인은 자신의 인생 소망을 이뤄보기로 결심하면 아무리 고생길이 훤하더라도 제대로 하고야 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다만, 까미노는 길을 걸으면서 외부환경과 소통하고 나 자신과 내면으로 소통하고 다양한 사람과 소통하는 경험 그 자체이므로 비록 한국 순례자들이 무리 지어 다니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나라나 다른 문화권에서 온 순례자들과 소통하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외국어로 소통하는 건 매우 힘들고 귀찮은 일이다.


'왜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같이 특별한 이유 없이 다녀온 사람도 까미노에 가서 한국인 순례자가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실제로 한국인이 까미노에 오게 된 동기는 다른 나라 순례자와 꽤 다르다.

2024년 한국 및 전체 순례자 연령별 순례 동기

많은 한국인은 종교 순례길과 다른 의미의 길로써 까미노를 걷는다. 실제로 2024년 한국인 순례자 중 37.9%가 종교적 이유로, 35.3%가 종교적이지 않은 이유로 까미노에 걷는다고 응답했다. 이는 전체 순례자의 47.4%가 종교적 이유로, 19.3%가 종교적이지 않은 이유로 왔다고 답한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위의 비율은 비종교적 동기로 인한 까미노 순례 비율은 나이가 어릴수록 증가하여 한국인 18-45세의 39.9%는 순례길에 오게 된 동기에 종교적인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보기에 운동삼아 해보기 괜찮아 보인다거나,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거나, 정신/육체적으로 힘들어서 도피가 필요하다거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거나,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싶다거나, 나 자신과 오래 대화하다 보면 뭔가가 나오겠지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거나... 이러한 다양한 이유가 비종교적인 동기에 포함될 것이다.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굳이 찾아보자면 한국은 가톨릭 신자의 수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고, 이제 경제적으로 발전하여 순례길에서 1달 이상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만들 수 있어서 까미노에 대한 사회 내 노출 빈도도 높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경제적 상태가 되었다. 실제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까미노에 다녀온 사람이 쓴 여행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거기에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종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까미노를 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한국인 순례자들은 서울에서 1만 킬로미터 떨어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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