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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Mar 14. 2023

멋있는 사람의 원피스

”언니, 나중에 저도 언니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보다 일곱, 여덟 살쯤 어릴까?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20대의 친구가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내게 이야기했다. 처음 만난 날, 몇 시간 함께 했을 뿐인데 이런 칭찬이라니.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던 순간.


여름이 저물어가던 선선한 밤, 야경이 아름다웠던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찾아갔던 날. 정확한 날짜나 장소, 그렇게 이야기해 준 친구의 얼굴은 희미하지만 한 가지, 그날 입고 있었던 와인색 원피스는 또렷하게 떠오른다. 우아한 목선이 아름다웠던 원피스. 한눈에 반해서 샀던 그 옷을 처음 입고 나갔던 날, 낯선 이에게 들었던 칭찬. 그 후로 오랫동안, 옷장 안에 걸려만 있었던 그 원피스를 정리하려고 마음먹는 순간마다 떠오르던 장면.


#코닥레티나 #캔트미어



첫눈에 마음에 들어서 샀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손이 가질 않아 모셔만 둔 채로 몇 년이 흘러버렸다. 흔치 않은 디자인의 우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원피스는 입고 있으면 생각보다 편하지 않았고, 특이한 탓에 가지고 있는 다른 옷들과 잘 어우러지지 못했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자꾸만 미련을 갖게 했던 것은, 기억 속 그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가끔, 누군가 그런 말을 한다. '참 멋있으세요. 멋지게 사시네요. 닮고 싶어요. 부러워요.' 진심을 담은 인사일 때는 당연히, 그저 인사치레라 해도, 마음이 들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달콤한 말은 순간적으로 중력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힘이 있다.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인정을 바라며 살지 않겠다 마음먹은 지 오래지만, 인간의 본능에 새겨진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모든 것이 너무 많은 삶이 버거워서, 더하기는 멈추고 덜어내기 시작한 지 두 달째. 정리할 옷들은 얼추 비워냈고, 헐값에라도 판매할 수 있는 것들은 더디게 비워가고 있다. 어서 홀가분해지고 싶으면서도, 팔릴 만한 옷과 신발들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는 스며들어있는 기억과 얽혀있는 감정들.


드디어 비우겠다고 마음을 먹은 날. 여전히 깨끗한 원피스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함께 한 시간 동안 나에게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 원피스가 아닌 다른 옷을 입었더라도 같은 말을 해주었을지 모른다.


단지 이 옷을 입었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그럴싸해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더는 입지 않는 옷을 모시고 사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매번 걸려있는 옷을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멋있기는커녕 답답하기만 할 텐데.


멋있는 사람. 그건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 느껴야 하는 것. '아아, 나 좀 멋있네.' 하면서 뿌듯해하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혼자 떠올려야 제맛일 테지.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자마자 팔려버린 원피스를 비우며 생각한다.


원피스 없이 걸려있는 빈 옷걸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흔들린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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