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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Sep 30. 2020

당신은 '홈트'를 믿습니까?

코로나 시대, 1인 리포트


'홈트'란 무엇인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홈트로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주 극소수의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뿐이라고, 나처럼 평범하고 게으른 사람과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으니까.


운동이란 자고로 '비용'을 지불하고, 단호한 '선생님'과 함께 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는 것! 매일 데굴거리며 쉬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내 방 안에서, 아무리 매트를 펼쳐놓고 파닥거려봐야 화면 속 유투버의 몸이 될 리가 없을 테니까.


운동능력과 근육량이 동시에 바닥에 가까운 사람으로 여태껏 살아왔지만, 그런 것 치고는 나름 꾸준히 이런저런 운동들을 시도했었다. 몇 년간 요가와 필라테스를 했고, 강렬한 의지가 불타는 순간에는 꼭 10회씩 피티를 끊었으며, 줌바나 발레처럼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도 하고, 날이 좋을 때면 산에 다녀왔으니까. 체력과 실력과는 상관없이,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풍경이 아름다운 길을, 흥미로운 도시의 골목을 걷는 거라면, 두세 시간쯤은 거뜬할 만큼(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전적이 있다)!


게다가 의사와 약사의 말을 잘 듣는 나는(일종의 자기애랄까, 스스로의 건강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식후 30분 적혀있으면 꼭 지키는 스타일, 3일 뒤에 오라면 그날 예약하고 가는 착한 사람), 특히 일대일로 하는 운동은 효과가 확실했다. 버티라면 버티고, 세 번 더 하라면 세 번 더 하고, 한번 정한 날짜와 시간은 변경하거나 빠지는 일도 거의 없었으니까.


그러니 돈도 안 들고 감독하는 사람도 없는 홈트란 내게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 화면 속의 유튜버가 10회씩 3세트 하라고 발랄하게 외쳐도, 화면 밖의 나는 5회 정도 다리를 움직이고 나서 물 한 모금 마시면 1세트가 끝나버리고, 매트 위에 서서 물 잔을 든 채로 2세트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게 되는 상황이 데자뷔처럼 반복되곤 했다.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동작을 멈춰도, 아무도 와서 자세를 고쳐주거나 움직이라고 말하지 않으니, 폭신한 매트 위에 누워서 유투버의 구령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창밖의 파란 하늘 위 하얀 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을 평화롭게 구경하고 있기 일쑤였다.


아아, 홈트란 구독자에게 오늘도 15분짜리 영상 하나를 따라 했다(실제로는 5분 따라 하고 10분 시청)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거구나. 이건 영상을 찍는 유투버만 운동이 되는 것이로구나, 하며. 이건 이제 재미없으니 다른 사람 걸 좀 찾아볼까, 라며 엄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과거의 언젠가의 익숙한 내 모습들.



이런 나를, 석 달간 서너 번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홈트'를 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코로나 19! 그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였다.


2020년 1월 말, 아틀리에는 2년간 지냈던 연남동을 떠나 을지로에 새롭게 자리했다. 작년 말에는 이사를 준비하며 새해부터는 클라이밍을 배워보겠노라고 아틀리에와 멀지 않은 곳의 실내 클라이밍장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기대에 부풀어 진짜 '미래'가 시작되는 것 같은 묘한 설렘을 주는 2020을 맞이했더니, 이삿짐을 다 풀기도 전에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순식간에 전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나'라는 개인의 일상도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다. 우리나라는 발 빠른 대처와 체계적인 대응, 그리고 다수의 시민들의 노력으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만 하면, 신천지니 클럽이니 집회니 하면서 뒤통수를 맞고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사와 함께 계획했던 많은 일들은 그렇게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금방 지나가겠지, 하며 2월이 지나가고 이 상황이 계속되면 어쩌지,라고 걱정하며 3월과 4월을 보냈다. 어쩔 수 없잖아, 라며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5월과 6월을 견디고, 이제 좀 숨통이 트이는구나 싶어서 기운을 냈던 7월 후엔 모든 것이 일시정지되는 8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날들을 하루하루 살아가며, 대책을 세우자니 개인에게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는 상황에 당장 매일같이 광역버스를 한 시간씩 타고 출근하는 상황부터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는 버스 안에서 누군가 기침이라도 하기 시작하면 관자놀이가 지끈거렸고, 안 보이는 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마스크를 벗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혀왔다.


매일같이 마스크를 챙겨 쓰고, 자주 손을 씻고, 손소독제를 틈틈이 문지르면서, 이 상황도 언젠가는 끝날 거라고 믿으면서도, 달라져버린 일상은 알게 모르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새로운 공간과 콘텐츠,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만나면서 얻는 자극들이 중요했던 이전의 일상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으니 가라앉는 마음을 토닥여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멍하니 지나가는 시간을 우울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이럴 때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어요'같은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깃든다'같은 말을 떠올리는 고리타분함을 발휘한다(그게 바로 나).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우선 몸을 움직여보자, 고전적인 처방을 스스로에게 내리고 현관에 운동화를 꺼내놓았다.


처음엔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를 걸어보고 아파트 뒤에 자리한 동산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마다 옷을 챙겨 입고 마스크를 쓴 채 걷자니 번거롭고 귀찮았다. 가라앉은 마음은 마스크를 쓰는 순간 더 무거워졌으니까. 게다가 장마가 다가오고 있던 때라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매일 일정량의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홈트가 답이었다.


편하게 생각하자, 느긋하게 생각하자, 열심히 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일부러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유투버를 고르고 그중에서도 10분 정도 되는 짧은 영상을 선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하던 대로 침대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방바닥을 깨끗이 닦은 뒤 매트를 펼쳤다. 잠옷을 입은 채로 어떤 준비도 필요하지 않아서인지 머뭇거리거나 귀찮은 마음도 생길 틈이 없었다. 발랄한 유투버의 목소리에 맞춰서 30초 단위로 진행되는 동작을 몇 가지 따라 하고 나면 십 분은 금세 지나갔다. 머릿속을 비운채,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니 충분히 땀이 났다. 크게 기대하는 것도, 딱히 정해놓은 규칙도 없으니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져서 운동을 한다,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매일 나의 상태에 따라서 기분이 좋으면 같은 영상을 한번 더 반복하거나 또 다른 10분짜리 영상을 따라 했다.


그렇게 홈트를 한 날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루틴에 익숙해졌고, 동그라미를 치기 위해서 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일이 늦게 끝나 자정이 다되어서야 퇴근 한 날이나 어쩐지 몸이 무겁게 느껴지던 하루, 서너 번 정도는 하지 않고 건너뛴 날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가벼운 기분으로 매트 위에 섰다. 그렇게 7월부터 90일 가까이 홈트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엔 파란 동그라미로, 그다음은 핑크, 요즘은 초록색 색연필로 달력 위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90일! 그것은 나에겐 기적과도 같은 숫자였다. 물론 90일간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던지 놀랄 만큼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영상 속의 유투버처럼 완벽한 몸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라앉았던 마음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고, 새로운 일상에 받아들이는 것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2킬로그램 정도 몸무게가 줄어들었고 안색이 더 깨끗해졌다. 붓기가 사라졌다. 가장 기분 좋은 것은 90일을 이어오고 나니 900일도 할 수 있겠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


알고 보니 주변의 몇몇 이들도 나처럼 홈트에 매진하고 있었다. 종목도, 선택한 유투버도 다양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들도 시도해보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술도 안 마시고(못 마시고), 일찍 집에 가고(혹은 재택근무로 집에 오래 머물고), 타인을 마주할 땐 마스크를 꼭 챙겨 쓰고, 홈트를 한다. 다들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것이다. 끝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때까지 건강하게 버티기 위해서.




내년, 혹은 내후년? 운이 좋다면 올해 말? 그게 언제가 되던지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마스크 없이 외출할 수 있는 그날이 오면, 클라이밍을 배우러 가야겠다. 2월에 이사를 기념하며 가려고 했던 을지로 만선 호프에 아틀리에 식구들과 가서 노가리를 안주삼아 생맥주잔을 부딪혀야지. 친구들과 계획했다가 취소한 여행, 모임, 다 적어놨으니 빠짐없이 하고 말 테다. 그 해에는 12월의 휴가를 특별히 2주에서 한 달로 늘려서 떠나야겠다.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마다 인사로 가벼운 포옹을 하고 헤어질 땐 악수를 해야지.


그때까지, 가능하다면 매일, 즐겁게 홈트를 할 생각이다. 자랑거리도 못되지만(스스로는 매우 뿌듯), 오늘 아침에도 20분간 슬로우버피를 해냈다! 땀으로 젖은 잠옷을 입고 반짝반짝한 민낯으로 초록색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10월부터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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