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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Aug 17. 2022

지극히 사적인 뉴욕 이야기

01 - 뉴욕에서의 대학 생활 / 나의 은사님 죠앤

선을 그을 때에는 지나온 길 보다 지나갈 길을 바라보는 게 직선을 그을 때 더 유용하단다.
자꾸 지나 온 길에만 연연하게 되면 곧지 못하고 비뚤 한 선을 긋게 되거든.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단다.
디자인 수업 중 철학적인 딴 길로 새는 것 같겠지만,
우리의 삶과 디자인은 정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뉴욕에서의 대학 생활 첫날, 첫 아침 수업 실내건축 수채화 랜더링 시간 때 들은 죠앤(Joan) 교수님의 이 말씀은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이너가 된 지금도 항상 나 자신에게 되새기는 말들 중 하나이다. 이 교수님의 수업은 다른 실내 건축 수업들 (도면 수업, 디자인 스튜디오, 컴퓨터 관련 수업 등)보다는 좀 더 미술에 가까운 수업으로 기억한다. 컴퓨터나 삼각자가 아닌 연필, 수채화 등의 도구로 진행되었으니 수업 분위기도 발표와 과제 비평 위주의 미술 수업 같았던 걸로 기억한다. 학생들이 가구 디자인과 실내 랜더링 한 것을 교실 뒤 벽에 붙여놓으면 학생들은 전부 다 뒤로 가서 교수님께서 하나하나 잘 한 점과 더 보충해야 할 점등을 토론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참 운이 좋게도 교수님과 친하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제자였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막 실내 건축이나 디자인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던 단계여서 그것들에 대한 이해도가 그리 깊지는 않았다. 그저 '눈에 보기에 훌륭한,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아주 피상적이고 미숙한 마음 가짐으로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욕심만큼은 커서 항상 수업 후에도 교수님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께서는 항상 나에게 A-를 주시면서, 잘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서 다음 과제 때 발전한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셨다.


    "랜더링은 실내 건축가가 고객에게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야. 고객과 맡은 프로젝트의 성격과 필요에 따라 컴퓨터로 유려하고 사진 같은 랜더링을 할 수 도 있고, 손으로 좀 더 포근하고 따뜻한 랜더링을 할 수 도 있지. 하지만 어떤 랜더링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설명하든 시각적인 이야기꾼으로 효율적으로 본질을 예리하게 파악해서 설명해야 돼. 보기에만 예쁜 예술을 만드는 게 아니야.", "대리석 바닥이나 대리석 테이블을 표현하려면 이 부분에서는 붓을 쓰지 않고, 오래되어 낡은 칫솔을 물이 적은 물감에 묻혀서 엄지손톱으로 튕기듯이 물감을 흩뿌리면 돼. 수채화라고 해서 굳이 붓만 쓰라는 법은 없지. 어떤 질감을 표현하던지 방식은 네 판단에 따라서 해도 돼." 라던지, "그림자의 색깔은 굳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보색 둘을 섞었을 때 생기는 중립적인 색으로 그림자를 표현하면 더 자연스럽지"라고 꼼꼼하게 조언을 해 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지막 과제 때 기어코 A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굳이 성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뭔가 그 전보다 발전했다는 증표 같아서 성취감을 느꼈다. 1학년 졸업 후, 2학년이 되기 전 방학 때 교수님께서 이제 자신의 수업을 듣지 않으니 학기 중에는 디자인이나 랜더링에 대한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오피스 시간에 맞추어서 질문을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번 방학 때 교수님께서 외주 일을 하시는 데 옆에서 조수로써 잠깐 배우는 것은 어떤지 제안도 해 주셨다. 그렇게 때때로 방학 때마다 교수님 댁에 가서 실내 건축 및 가구 랜더링 조수도 하고, 교수님네 고양이 두 마리랑도 놀았다.


    졸업을 한 뒤, 지금도 나는 교수님과 종종 만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44년생인 교수님은 우리 할머니 연배이신데도 뉴욕의 그 험한 길들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신다. 노호(NoHo)에 있는 교수님 댁에서 학교인 첼시(Chelsea)까지 차로 20분 정도의 거리인데도 종종 자전거로 출퇴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동차와 도로에 대한 겁이 많은 나로서는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죠앤 교수님 댁에서 고양이 플로이드와

       교수님 댁에서 각국에서  대학 동기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문득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타지에서 마음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 , 진담 반으로 교수님은 항상 자신을 나의 '뉴욕 엄마'라고 하신다.  곳에서  이방인인 나에게  말은 정말로 따뜻하고 감사한 말이다. 후에  설명될 테지만, 교수님은 나에게 뉴욕 엄마, 그리고 디자인과 삶의 멘토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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