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쓰이고 싶은 이기심으로 낭독 봉사를 시작하다

프롤로그.

by 아템포윤 a tempo yoon

나는 이기심으로 낭독 봉사를 시작했다.

2024년 8월 낭독 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2024년.

아니. 사실은 더 오래전부터 나는 깊은 동굴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불행했고 불안했고 온갖 자기 비하로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쌓였던 마음의 짐들이 2023년에는 격렬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꾹꾹 억눌러왔던 케케묵은 감정들은 몸의 염증과 다양한 트러블의 형태로 온몸을 뚫고 나왔다.

이 끝과 저 끝의 병원들을 이리저리 헤매느라 바빴던 그 해.

그다음 해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또는 설마 했던 일들이 눈앞에 닥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오랜 불면증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그때는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2024년 6월.

처음으로 병원에서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너무 길어지며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지경에 이르렀던 터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주의 사항을 알려주셨다.

'이 약이 잠을 자고 일상을 회복하는 데는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오히려 호르몬에 영향을 주어서 수면 패턴이 이상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반 알로 시작하고 복용 기간도 짧게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안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에 시달리는 중에

설상가상으로 회사까지 그만두자 무기력함과 내 존재의 필요 없음이 살갗을 파고들듯 가까이 사무쳤다.

무능함과 대면하고 한껏 낮아진 나의 시장 가치와 마주해 보는 아픔에 갇혀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잠이 들지 못하는 밤이면 약통을 꺼냈다 넣었다 다시 꺼냈다 넣었다.

그날은 퐁당퐁당 오지 않았고 일주일을 내리, 이주일을 내리 찾아왔다.

그래도 나는 그 약을 먹지 않았다.



약에 도움을 받아서라도 잠을 좀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왠지 약에 의존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 아직 쓰러져서 입원할 정도는 아니니까 조금 더 버텨보자.' 생각했다.

내 의지를 가지고 불면의 고통을 이겨내 보겠다 마음먹어서였을까.

이 무기력에서 그만 탈출해야겠다는 결심이 묵직하게 올라왔다.



처음 떠오른 것은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이었다.

가끔 가던 수영장에 늘 붙어 있는 현수막에서 보았던 글자.

체육 전공자도 아니고 소방대원이나 해경이 될 것도 아니었으니

크게 쓸모 있는 자격증은 아니었다.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구조할 수 있으리라는 멋진 쓸모 때문이었는지

무기력엔 몸을 바삐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서였는지

어찌 됐든 인명구조요원에 대해 알아보았다.

교육은 대개 2주에서 4주, 하루에 보통 7~8시간씩 진행되는 것 같았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응급처치나 CPR도 배울 수 있고 구조를 위한 영법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체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도 못 자고 큰 스트레스로 몸이 심하게 축나 있는 상태였으므로.

내 몸 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많은 체력을 요하는 그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생각난 것이 '낭독 봉사'였다.

낭독 봉사를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이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를 본 게 계기였다.

'아 이런 것이 있구나'

평일 낮에 교육이 진행되고 의무적으로 봉사로 채워야 하는 시간이 꽤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근 시간과 겹쳤기 때문에 당시에는 도전하지 못했다.



마음 한편에 '언젠가 낭독 봉사를 해봐야지' 생각 한 줄을 남겨둔 채로.



일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함의 상태였던 내게 그 단어가 떠올랐다.

불쑥.

내가 지나온 시간에 큰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때였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부정되는 기분에 빠져있었다.

그 괴로움 속에서 아마도 '낭독 봉사'는 내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음을 확인해 줄 것만 같았다.

내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쓸모.



도대체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것인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채로 배는 왜 고프고 잠을 못 자는 건 왜 괴로운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허용해주지 못하던 시간.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나도 어딘가에는, 누군가에는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고.



봉사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타인을 위하는 고귀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마치 세상의 끝에 걸터 서 있는 듯한 절망감에서 나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봉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