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를 꿈꿨던 그때처럼

낭독 봉사자 오디션.

by 아템포윤 a tempo yoon

낭독 봉사를 하겠다 했는데 막상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검색해 보니 정보량은 적었지만 소수의 질 높은 정보를 얻었다.



첫째, 낭독 봉사는 시각장애인복지관과 같은 특정 장소에서 가능하다는 것.

둘째, 일부 기관에서는 낭독 봉사자를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

셋째, 특정 자격이 필요하지는 않으나 경험이 있는 분을 선호한다는 것.



운 좋게도 한 기관에서 낭독 봉사자를 곧 모집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 운이 좋게도 그곳에서는 낭독 봉사자를 위한 교육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디션에서 봉사자로 뽑힌다면.



정보를 알게 된 후 약 한 달 정도 공지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하루에도 몇 번을 복지관 사이트를 들락날락.

'오디션은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경쟁률이 높아 이번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설렘과 불안이 번갈아 올라왔다.

8월 중순을 넘긴 시점에 고대하던 낭독 봉사자 모집 공고와 마주했다.



오디션은 해당 기관에서 제공하는 세 개의 지문 중에서 두 개를 선택해 녹음 파일을 내는 방식이었다.

이때 간략한 인적 사항과 지원 동기를 작성한 문서도 함께 제출했다.



지문을 읽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어떻게 하면 더 큰 소리로 명확하게 발음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고민은 오래전 나의 꿈을 소환해 주었다.



어린 시절 아나운서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다음 카페가 가장 핫한 SNS이던 시절이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모임'과 같은 이름의 카페에 가입되어 있던 시절.

카페에서 아나운서 멘트 대본을 받아 읽는 연습을 하고

신문 사설을 소리 내 읽으며 연습하던 시기.



볼펜도 물어보고

두 발은 땅을 디딘 채로 허리를 앞으로 완전히 숙여 발성 연습을 해 보던 그때의 모습이 스쳤다.

크게 소리 내고 정확하게 발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으므로 그때처럼 허리를 180도 접은 상태로 지문을 읽고 녹음하였다.

마치 그 시절 내가 꿈꾸던 아나운서가 된 마냥.



'큰 목소리, 중저음의 신뢰감 있는 목소리, 발음의 명확성'이란 키워드에만 집중하며 녹음을 마쳤다.

읽는 도중에 버벅 거리지 않았고 발음을 틀리지 않았으니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제출을 마쳤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뉴스 읽는 것도 아닌데 큰 목소리로 딱딱하게 읽는 게 중요한 게 맞나?'

내가 읽은 지문 중 하나는 소설이었다.

심지어 마음의 아픔이 있는 분이 심리 상담소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지문의 내용과 내 목소리 톤이 전혀 어울리지 않고 이 녹음 파일을 내는 목적과도 어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시각장애인 분들이 들으시기에 편안할 수 있도록,

내가 읽고 있는 글의 내용과 내 목소리의 톤이 적절하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녹음해야 했음을 직감했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는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너무 크지 않은 편안한 목소리 톤으로 발음을 정확히 꾹꾹 눌러 내기보다는 부드러운 발음으로 다시 녹음했다.



꼭 오디션에 합격하고 싶었기에 발표가 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다.

마침내 낭독 봉사자에 합격했으며 이번 주부터 교육이 시작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합격'이라는 글자가 주는 기쁨과 성취감에 한껏 즐거웠다.

이 세상에서 쓸모 있을 수 있다는 기대와 세상에 한 발 자국 나간 것 같은 기분.



당장 이틀 뒤부터 왕복 4시간 거리의 시각장애인복지관에 가야 했지만 그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나를 필요로 해주는 공간이 있음이 그저 감사했을 뿐이었다.

나와 함께하게 될 이들은 누구일까.

오랜 무기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

나는 다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