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없는 나의 자기소개 미션

낭독 봉사자 교육생들과의 첫 만남.

by 아템포윤 a tempo yoon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들과 마주 앉았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살짝 상기된 얼굴들.

어색함과 상냥함이 묻어 나오는 몸짓들.

낭독 봉사자가 되기 위해 모인 교육생 동기들이었다.



한 해의 절반을 넘기고 다시 새해를 맞이하는 듯한 엉뚱한 기분이 드는 9월이었다.

지하철 노선도에서 닳도록 보았던 익숙한 이름이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처음' 경험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복지관이 위치한 그 동네가 그랬다.



길눈이 어두워 긴장감을 안고 초행길을 나섰던 나의 감정도 그랬다.

한적하고 나무들이 가득한 초록색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긴장은 여유로움이 되었다.

왠지 이 동네와 벌써 친해진 것 같았다.

이 동네가 꽤 마음에 들었다.

편도로 2시간 정도가 걸리니 어딘가로 여행을 온듯한 느낌도 플러스.



지하철역에서 나와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약 20분을 걸었을까.

복지관 건물이 보였다.

시각장애인복지관, 뇌성마비복지관, 장애인종합복지관이 한데 모여 있었다.

나는 문자에 안내된 대로 자원봉사자실을 찾았다.



우리는 차례대로 빈 의자를 채워나갔다.

연령대가 다양했다.

'모두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이곳에 왔을까?'



시간이 되고 우리를 낭독의 세계로 이끌어주실 성우님이 오셨다.

큰 키에 여유로움과 멋짐이라는 아우라를 마음껏 뿜어내며.

그녀는 곧 우리에게 낭독의 기술뿐 아니라 숨겨진 나와 마주하게 해주는 마법사 같은 '낭독 1타 강사'가 되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나는 누구인지를 말했다.

내게는 참으로 불편했던 시간.

나는 몰랐다.

아니 이전까지는 이렇듯 절실히 그것을 경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늘 알았지만 그때처럼 그것을 원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아니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것으로부터 가장 초연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

그전에 내 전공은 무엇인지,

무슨 대학에 다니고 있는지.



언제나 나는 누구인지를 가장 쉽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명함이었다.

나의 소속을 표시해 주는 종이.

손바닥보다 작은 그 종이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말해주는 나의 라벨이었다.



이제 나는 그 라벨이 없었다.

라벨이 없는 나는 이제 누구라고 나를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자연 상태의 나와 마주하는 자유롭고 솔직한 느낌이자

발가벗은 듯 어딘가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이기도 했다.

첫 만남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내 머릿속은 바삐 돌아갔다.

'뭐라고 소개해야 하지'

'나는 누구일까'



일을 그만두었기에 이곳에 올 수 있었지만

일이 없기에 그곳에서 나를 설명하기 어려운 아이러니였다.



나에겐 정말 정해진 그 길 밖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인지,

정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명함뿐인지를 스스로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정답 또는 정상을 벗어나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잠시 일을 쉬고 있고 예전부터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에 오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원체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하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소개하는 일은 꽤 쑥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그런 나였기 때문이었는지 자존감과 자신감이 모두 하락한 상태였기 때문인지 아주 수줍게 인사를 마쳤다.

성우님께서는 힘이 이렇게 없어서 낭독을 할 수 있겠느냐며 미소 속에 걱정과 인사를 동시에 건네주셨다.



자기소개 미션은 한 번 더 쓸모에 대한 나의 강렬한 욕구를 자극했다.

나의 현재를 마주하고 실망하고 받아들이고 다시 의지를 갖는 순환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