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매장을 채운 땀방울, KOPAN이라는 이름의 첫 식당
길거리를 떠돌던 1년을 지나, 시장(Torvehallerne)이라는 고정된 터전을 잡은 지도 어느덧 1년이 흘렀습니다. 감사하게도 4명의 파트타임 직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내어줄 만큼 규모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낸 것은 덴마크의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기온이 떨어지자 손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야외 트레일러를 지나쳐 따뜻한 시장 실내로 향했습니다. 시장에 요청하여 트레일러 주변에 화로를 설치해 온기를 더해보았으나 칼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코펜하겐에서 푸드트럭을 비롯해 시장에 입점해 있는 다른 야외 상점들이 왜 10월이면 문을 닫고 이듬해 3월에나 나타나는지, 그 냉혹한 생리를 몸소 깨닫는 나날이었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고용안전망'
제게는 그들처럼 '겨울잠'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습니다. 시장 운영 방침상 3월부터 12월까지는 의무적으로 영업해야 했고, 유동인구가 현저히 낮은 1~2월조차 자리를 비우려면 임대료의 50%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하는 냉혹한 규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게 더 절박한 문제는 '고용안전망'이었습니다.
복지 국가인 덴마크 시민들에게는 비수기라도 실업을 버티게 해주는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하지만,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온 직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영업을 쉬는 것은 그들에게 유일한 생계 수단이 끊기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낯선 타국 땅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할 누군가에게 이 일자리가 사회적 안전망의 역할이라도 조금이나마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작은 안전망을 위해서라도, 눈치 보며 남의 주방을 빌려 쓰지 않아도 되는 ‘우리만의 공간’이 절실했습니다.
겨울을 대비한 공간이 간절해지던 무렵, 시장 주변 상가를 샅샅이 훑어보던 제 눈에 운명 같은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시장에서 불과 50m 떨어진 한 건물의 유리창에 ‘임대(lokaler udlejes)’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소셜카페로 운영되던 약 25평의 공실은 최적의 대안이었지만, 월 230만 원 상당의 임대료가 큰 벽이었습니다. 이 고정비를 감당하려면 단순히 재료 준비용 주방을 넘어 반드시 ‘식당’으로서 수익을 내야만 했습니다. 2년간 호떡만 팔아온 제게 식당 창업은 계획에도 없던 도전이었으나, 노점의 한계로 보여주지 못했던 다양한 한식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두려움을 눌렀습니다. 저는 광고를 보자마자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협상 과정에서 임차인 보호가 강력한 덴마크 법상 건물주는 3개월 치의 보증금을 요구했습니다. 당장 그만한 여력이 없던 저는 관리인을 마주하고 자전거 한 대로 시작해 시장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설명했습니다. 현재의 사정을 솔직히 밝히며 1개월 치의 보증금을 제안했고, 덕분에 보증금 감면은 물론 오픈 준비 기간의 임대료 면제라는 유연한 합의에 도달하며 기분 좋게 계약서에 사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열쇠를 손에 쥔 기쁨도 잠시,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머릿속 ‘걱정’들을 종이에 적어 ‘해결 리스트’로 바꿨습니다. 가장 큰 난제는 카페 주방을 식당용으로 개조하는 일이었습니다. 기존 시설을 신중히 철거하고, 부족한 예산에 맞춰 사용 가능한 설비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이 무모한 도전에 기꺼이 ‘코 꿰여준’ 고마운 인연들이 있었습니다. 쪼림은 트레일러에 이어 매장에서도 페인트칠을 담당하고 서울 특급호텔 주방 출신 효준 셰프는 화려한 칼 대신 톱을 들고 목수 일을 자처했고, 은숙쌤은 주방의 효율적인 기틀을 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여기에 현지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무지와 쫑화는 KOPAN만의 색깔을 입히는 공간 브랜딩을 맡아주었고, 프리랜서 이나는 감각적인 공간 설치 디자인으로 텅 빈 매장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매일 안도와 벅찬 한숨이 교차하는 공사 현장을 겪으며, 제각기 매장을 일궈낸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샘솟았습니다. 매장 오픈 준비를 하다 보니 타인의 공간에 담긴 노고를 읽어내고 우리 매장에 반영할 아이디어를 찾는 스스로의 변화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침내 그랜드 오프닝 날, SNS로 초대한 손님들과 축배를 들며 KOPAN이라는 이름의 첫 식당이 탄생했습니다. 더 이상 비바람을 걱정하며 하늘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우리만의 ‘지붕’이 생긴 것입니다. 바퀴 위를 떠돌던 호떡의 꿈은 그렇게 코펜하겐 한복판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얻은 것을 넘어, 어떤 환경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Behind Story] 카메라를 내려놓고 함께 망치를 들었던 사람들
개인적인 일기장에나 남을 줄 알았던 이 치열했던 식당 창업의 기록은, 사실 우연한 기회에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코펜하겐 시장에서 호떡을 구우며 고군분투하던 저의 일상을 지켜보던 KBS <사람과 사람들> 제작진으로부터 다큐멘터리 출연 제의를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거절할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실패와 그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때였거든요. 과거에 매스컴을 통해 제 이야기가 나간 적이 있었지만, 당시의 서사는 제 의도와 다르게 '성공'이라는 단어에만 초점이 맞춰져 소비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오해와 비난들은 작은 상처로 남아 있었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그 아픈 기억을 다시 들추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공 신화가 아니라, 낯선 땅에서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주는 당신과 당신 사람들의 진솔한 일상을 담고 싶다”는 피디님의 끈질긴 설득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덴마크에서 제가 일궈낸 것은 화려한 매출이 아니라, 함께 땀 흘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팀과의 인연은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오픈 일주일 전, 현장에 도착한 촬영팀은 말 그대로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공사 마감 기한은 다가오는데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던 저희를 보더니, 피디님과 스태프분들이 낮에는 촬영을 하고 저녁에는 카메라를 내려놓은 채 직접 망치를 들고 페인트칠을 도와주셨습니다.
화면 속 번듯한 식당 뒤에는 방송팀까지 합세해 밤새워 땀 흘린 뜨거웠던 일주일의 기억이 숨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준 그 따뜻한 연대의 순간들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