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냈던 세금, 코로나의 구원자

매출 0원의 역설

by 김희욱

평온했던 코펜하겐의 ‘그린 존’과 마스크 논란


새로 오픈한 매장과 시장의 호떡 푸드트레일러가 비로소 안착하며 매출이 안정 가도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2020년 초,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공포에 휩싸였지만 덴마크는 역설적으로 평온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마스크가 이미 ‘생존템’으로 자리 잡았으나, 덴마크 보건당국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착용을 권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픈 사람만 마스크를 쓰면 된다는 주의였습니다. 의료비가 무료인 덴마크의 의료시스템과 넉넉한 방역 환경 덕분에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는 “한국보다 여기가 더 안전할지 모른다”는 안도 섞인 대화가 오갔습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락다운'과 함께 멈춰버린 도시


코로나 확산 소식으로 도배가 된 미디어는 연일 전 세계의 붕괴를 중계하고 있었습니다. 덴마크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020년 3월 11일, 첫 번째 락다운 발표와 함께 평온했던 코펜하겐의 시계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습니다. 락다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간 호떡 트레일러 시장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가득했습니다. 활기 넘치던 시장 점주들은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문만 되풀이했습니다.


비교적 손님이 적은 추운 겨울을 묵묵히 견뎌내고, 이제 막 4월의 봄맞이와 함께 몰려올 손님들을 맞이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 문이 강제적으로 닫힌다는 사실 앞에, 점주들은 미리 대량으로 사둔 식재료부터 당장의 임대료, 그리고 꽉 짜인 직원들의 스케줄까지 모든 것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장 운영 관계자로부터 어떤 공식 지침이 내려오기도 전이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점주들은 하나둘 모여 "우리끼리라도 먼저 의견을 모아보자"며 불안한 목소리를 나눴습니다. 저 역시 시장 매니저와 식당 건물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막막한 대답뿐이었고, 직원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COVID19 락다운 프레스 발표

정교한 ‘코로나 패키지’와 매출 0원의 방정식


막막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덴마크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아주 차갑고도 정교한 대안들을 발표했습니다.


덴마크 정부가 내놓은 '코로나 보상 패키지(Hjælpepakker)'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고정비 보상: 영업 중단으로 수입이 끊겨도 매달 나가는 임대료, 리스료, 공과금 등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것.

인건비 보상: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국가가 직원의 월급 상당 부분을 보조해 주는 것.

이 파격적인 정책의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기업의 도산을 막고 고용을 유지해,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다음 날 바로 경제의 엔진을 돌리겠다는 덴마크식 실용주의였죠. 하지만 이 구원의 밧줄에는 경영자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정교한 수학적 함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영업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국가의 지원 폭이 완전히 달라지는 설계였습니다.


1단계: 영업 방식 제한 (창문은 열어두되 홀은 닫아라)


가장 먼저 내려진 지침은 명확했습니다. 모든 식당 내 취식(Dine-in)은 전면 금지하되, 테이크아웃(Take-away)과 배달은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었죠. 이때까지만 해도 저를 포함한 상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래, 창문이라도 열어 장사를 이어가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하지만 진짜 고심은 그다음 발표된 ‘지원금의 조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단계: 고정비 지원의 딜레마 (100% 보상 vs 모험)


Case A (완전 폐쇄): 정부 명령에 따라 문을 완전히 닫고 매출이 ‘0원’이 된다면, 국가는 임대료 등 모든 고정비의 100%를 책임졌습니다.

Case B (영업 유지): 하지만 테이크아웃을 선택해 단 1 크로네라도 매출이 발생하면 ‘영업 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경우 매출 감소 폭에 따라 고정비의 25~80%만 차등 지원받게 됩니다.


3단계: 인건비 지원의 절묘함

유급 휴직: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집으로 보내 쉬게 하면, 국가가 급여의 75~90%를 보전해 줍니다.

현장 근무: 반면, 테이크아웃을 위해 영업장에 나오는 직원의 인건비 100%는 회사가 부담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경영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을 해고할 것인가, 아니면 회사가 일정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고용을 유지할 것인가.


냉정하게 수치만 따진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락다운 시기에 인원 감축이 가장 쉬운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 팀은 고민 끝에 전 직원의 고용 유지를 결정했습니다.


​여기에는 절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함께 일하던 한국인 직원들은 덴마크의 실업보험(A-kasse)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만약 회사가 직원들을 해고한다면, 그들은 당장의 생계는 물론 비자 유지조차 불투명해져 덴마크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회사가 분담해야 할 인건비와 부대 비용이 있었지만, 저희는 소속된 모든 직원에 대해 보상 신청을 진행했습니다.


왜 덴마크 정부는 100%가 아닌 75~90%라는 숫자를 선택했을까요? 여기에는 철저한 국가 경영 전략이 숨어 있었습니다.

재교육 비용 절감: 해고된 직원이 나중에 실업급여(A-kasse)를 받으며 방황하다 다시 취직하는 것보다, '고용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 경제 재개 시 훨씬 효율적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소비 절벽 방지: 국민의 소득을 90% 수준으로 유지시켜 소비 엔진을 꺼뜨리지 않았고, 이는 덴마크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V자 반등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보상 패키지 설명 자료

두 번의 선택: 유대관계와 전략적 휴식


첫 번째 선택은 '유대관계'였습니다. 보상 정책이 완벽히 이해되기 전, 저희가 가장 먼저 내린 결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들과의 유대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문을 닫고 가만히 앉아 지원금만 기다리기보다, 비록 창문을 사이에 두더라도 손님들과 계속 마음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치킨과 김치찌개 등 테이크아웃 메뉴를 새로 개발했고, 좁은 창문 너머로 조심스레 음식을 건넸습니다. 적막한 홀에 주문 알람이 울릴 때마다 주방에서는 "주문이다!" 하는 환호가 터졌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 음식을 잊지 않고 찾아준 손님들에 대한 감사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컸고, 그 유대감이 락다운 시간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두 번째 선택은 '과감한 휴식'이었습니다. 정책의 흐름을 파악한 후, 저희는 무리한 질주 대신 시스템을 믿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100% 보상을 활용해 문을 닫고 팀 전체가 '전략적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이는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생계를 책임져준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단이었습니다. 덕분에 워킹홀리데이 직원들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무사히 체류하며 다음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KOPAN 윈도우 스루

정직의 대가와 ‘검은 돈’의 부메랑


​이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뜻밖의 ‘시장 정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평소 세금을 줄이려 매출을 누락하거나 현금 장사만 했던 가게들에게 코로나 보상금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보상금을 받으려면 국세청(SKAT) 데이터로 매출 감소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평소 세금을 아끼려 매출을 축소 신고했던 회사들은 축소한 만큼 매출하락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시기를 거치며 덴마크 사회에는 아주 강력한 교훈이 새겨졌습니다. “평소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것이 위기 때 국가로부터 100% 보호받는 가장 확실한 보험료”라는 사실입니다.


세금, 신뢰가 만드는 가장 단단한 ‘지붕’


이 과정을 통과하며 저는 세금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동안 성실히 납부해 온 세금은 사라진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코로나와 같은 재난 앞에서 회사와 직원들을 지켜준 가장 확실한 ‘사회적 보험’이자 구원자였습니다. 물가와 세금이 높기로 유명한 나라지만, 그 이면에는 위기 시 국가가 나를 보호할 것이라는 강력한 시스템적 신뢰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이 나의 생존을 돕는 선순환을 목격하며, 덴마크식 행복의 진짜 뿌리는 '상호 신뢰'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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