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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쟁의기술 Feb 24. 2021

예민한 게 뭐 어때서?

예민함은 재능입니다.

사람들은 '예민하다'는 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보통 '감정이 예민해서 피곤한 사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소심한 사람', '지나치게 말이나 행동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 등을 '예민하다'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민함은 기질적인 문제가 아닌 기질적 장점에 가깝다.

‘예민하다'의 첫 번째 사전적 정의는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이다. 그리고 영어 표현인 'Sensitive'의 첫 번째 사전적 정의 또한 '남의 기분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것이다.


예민하다 (銳敏하다)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3.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
Sensitive

1. aware of and able to understand other people and their feelings
  - 남의 기분을 잘 헤아리고 이해하는
2. able to understand art, music, and literature and to express yourself through them
  - 예술, 음악, 문학을 이해하고 이것들을 통해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3. easily offended or upset
  - 쉽게 화를 내는

- 옥스퍼드 사전 (Oxford learner's dictionary)



"너는 너무 예민해"


어릴 적 엄마에게 자주 푸념을 듣곤 했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더 예민해 보이긴 했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니 그렇구나 했다.

20대에 잠깐 만났던 남자 친구 중 한 명도 그랬다. 불만이 있어도 별로 표현을 안 했었는데 어떤 점을 보고 그렇게 말하나 싶어 의아했다. '나 안 예민한데?' 응수해놓고 꽤나 고심하기도 했다.



예민한 게 문제야?


일본의 뇌과학 교수 다카다 아키카즈 또한 본인의 예민한 성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매번 느낄 수는 없지만 알 필요도 없는 상대의 감정이나 의도를 남들보다 쉽게 알아채기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오고, 감정에 과부하를 느끼곤 했다. 상대와 다른 공간에 있는데 그의 속마음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 다카다 아키카즈


때문에 보통 혼자인 것이 편하다. 조용히 책을 보거나 산책을 하며 생각에 빠지는 것이 좋다.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혼자 있을 때 나의 예민한 감각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이게 내성적인 성격 탓인 줄 알았다. '좀 더 활발해져 봐', 외향성을 추앙하는 문화권의 내성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그래서 외향적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향과 예민한 기질은 상관관계가 높을 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그 두 성향을 모두 가진 사람일 뿐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내향성과 예민한 성격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가끔은, 예민해서 힘들다


예민해서 가끔은 힘들다. 알고 싶지 않은 상대방의 불순한 의도를 곧잘 포착해내는 능력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굳이 알 필요 없는 누군가의 기분이 나에게 전이되는 것 또한 감정소비가 심한 일이다. 예민한 성향 덕분인지 친구나 동료의 상담을 자주 요청받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에 그대로 몰입되어 나 또한 기분이 영 안 좋아지기도 한다. 누군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상황이나 사람을 조종하려는 의도를 포착하면 쓸데없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울그락 불그락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활동 에너지가 자주 그리고 빨리 방전된다.


번아웃도 자주 겪는다. 복잡한 상황에 휩싸이거나 많은 요구사항들을 한꺼번에 대응해야 해야 할 때면 모든 걸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우산 없이 내리는 장대비를 온몸으로 견뎌내는 느낌이랄까.



나는 내가 예민해서 좋다


그래도 나는 내가 예민해서 좋다. 예민함은 재능이기 때문이다. 예민함 덕분에 나는 사람들의 기분이나 의도를 더 빨리 캐치한다. 사회생활을 할 때 상사나 클라이언트의 상황을 빨리 캐치해서 적절하게 대응하는데 매우 요긴하다. 그래서 예민함을 잘 활용하면 '센스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또한 지극히 풍부한 감성과 공감 능력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은 '(HSP) Highly Sensitive Person'란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녀에 따르면 인구의 약 20%는 타인보다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HSP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그녀의 저서는 많은 HSP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알고 있는가. 위대한 창의력, 통찰력, 열정을 보여준 많은 이들이 매우 민감했다는 사실을."

예민함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에게 선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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