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에서 쉼표를 찍다.

by 이관민

#43. 자그레브에서의 일상

늦은 저녁, 자그레브 기차역부터 시작된 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불빛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길게 이어진 공원의 중앙에는 아이스링크장으로 바뀌어 있었고, 옆 길에는 트램들이 수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내가 막연히 생각해온 동유럽의 분위기 중 가장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 일정을 정리해보니, 동유럽에서의 시간이 단 이틀밖에 없었다. 옆에서 같이 호스텔에 들어온 한국인 친구는 아침부터 플리트비체로 여행을 떠났지만, 나에겐 더 중요한 일들이 남아있어 이곳 자그레브에 남기로 했다.


나는 자그레브 골목에 있는 사진관에 들러 지금까지 여행한 사진들을 한 장씩 인화를 했다. 그리고 근처 카페에서, 그동안 못했던 영상 정리와 러시아에서 만난 폴리나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그러고는, 광장과 멀지 않은 곳에 노란 글씨로 Posta가 적힌 우체국으로 가서 잘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냈다. 우체국에서 나와 자그레브 중앙광장으로 가는 길은 온통 크리스마스 축제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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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변수로 가득했던 동유럽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무엇을 크게 느끼거나 한 적은 없지만, 몇 가지 알아가는 것이 있다면, 항상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 다행히 이로 인한 내 목적이 크게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이런 변수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떠한 과감한 일을 해도(도덕적으로 피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라면), 다행히(?) 세상이 뒤집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의 여행지에서 더 즐겁게 놀아도 괜찮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향력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전자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여행을 위하여, 플리트비체에서 돌아온 친구와 함께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고기와 맥주 한잔으로 동유럽에서의 밤을 보내며 동유럽에서의 일지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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