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씨에게

(비상계엄 사태를 보며)

by Noboundary

지난 12월 3일 퇴근 후 별생각 없이 TV를 틀었다가 우연히 당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그 후 벌어진 일들을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실감 없던 당혹감은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는 장면에서 두려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날 밤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달려와 경찰 및 군병력과 대치하며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할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으므로 그 순간 바로 여의도로 갔다면 그 시민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의원들이 모여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시키려면 누군가는 밖에서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보좌관들이나 국회 직원들만으로는 역부족일 거 같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TV 앞 소파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늦은 시각, 이동수단, 다음날의 출근 등 여러 현실적인 이유를 댈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두려움'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다행히 군인들이 소극적으로 움직였고 국회 요구로 몇 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되어 인명피해나 체포된 사람은 없었지만, 당시만 해도 현장에서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저와 달리 주저 없이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뉴스를 보고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온 분도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시민들을 모두 특정 정당 지지자나 반국가세력 부역자들로 폄하하고 싶겠지만, 그들이야말로 당신이 그토록 자주 입에 올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같은 '행동하는 시민'이 있어 우리 사회가 군사독재의 어둠을 지나 지금의 헌정질서를 수립하고 민주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친위 쿠데타'는 어설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날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이 없었다면, 모두가 저처럼 그저 집 안에서 방송만 보고 있었다면, 그래서 경찰들과 군인들이 현장에서 아무런 시민사회의 압박을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의 쿠데타는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신속히 국회로 모여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시킨 190명의 국회의원들, 그 의원들이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이동을 돕고 군인들과 대치하며 싸워준 보좌관들과 국회 직원들,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중개하고 기록한 기자들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당신이 선포한 비상계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제1항은 그 자체로 명백히 헌법에 반합니다. 당신은 이번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행정부(대통령)와 국회(야당)의 극한 대립으로 인한 정상적 국정운영의 불가능'에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계엄발동 요건인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대통령의 행정부가 국회를 물리력이나 특별한 조치로 강제 제압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 권한을 보장하는 것이 헌법의 기본원리입니다. 두 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헌법 제77조는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도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서만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대상에서 '국회'는 제외한 것입니다. 그리고 국회가 계엄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비상계엄 선포 및 일련의 조치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고 자유민주질서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형사범죄로서 '내란죄'를 구성할 가능성 역시 높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날 밤 벌인 일과 그 뒤 언론기사로 알려진 "경고성" 운운하는 태도는 당신이 한국 사회와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대통령'이라 칭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민주공화국'인 내 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하고 반헌법적인 인물입니다. 당신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습니다. 제 부모와 선배 세대들이 피와 눈물로 일궈낸 소중한 가치들을 더 이상 짓밟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우습게 여긴 국민들이 머지않아 당신을 고꾸라트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