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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by 파이걸


일요일 저녁인데 남편이 집에 있다. 저녁밥을 집에서 가족 모두 모여 저녁 7시쯤 먹었다.

군인인 아들은 두 달 만에 휴가를 얻어 집에 왔고 주말부부로 지내는 남편은 회사교육으로 며칠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가족 모두 모여 모처럼 집밥을 함께 하는 시간이니 엄마인 내 맘과 몸은 분주해진다. 평일엔 늦은 퇴근으로 둘째 딸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도 드물다 보니 오랜만에 주방에서 정성스러운 밥을 짓기 시작한다. 아궁이에 가마솥밥이라도 할 수 있는 기세이지만 나에겐 가스불과 에어프라이 등 날 도울 장비가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반찬 만들기 돌입이다. 두부를 좋아라 하는 남편을 위해 봄동과 냉이 그리고 냉동실에 보관해 둔 꽃게까지 꺼내 된장국을 끓인다. 보글보글 된장 냄새가 주방을 감쌀 때 옆 가스불에 큰 웍을 올려놓고 고딩딸이 좋아하는 소시지야채볶음, 소야를 하기 시작한다. 파프리카 싫어하는 딸을 위해 당근과 버섯을 듬뿍 넣었다. 딸이 소야를 하나 시식하더니

“엄마, 학교에선 10원짜리 소시지맛이라면 이 소시지는 1000원짜리 맛이야. 소시지가 너무 맛있는데.”

“당연하지, 엄마가 너 주려고 통통하고 맛있는 걸로 샀지.”

소시를 볶으며 여자인 것이 엄마인 것이 마흔이 다 되어 감사한 일처럼 다가온다.. 내 배에서 아홉 달을 품고 낳은 두 아이가 내 품에 왔을 때 호르몬 때문인지 대우주의 질서 때문인지 나는 모성애 주사를 맞은 것처럼 아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다. 요리는 할 줄도 모르던 24살 여자는 이제 아이들을 위해 뭐든 만들 줄 알게 되었다. 모르면 유튜브와 네이버가 도와준다.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현재 나를 만들어준 건 지금의 두 아이이니 여자로 태어난 게 새삼 만족스럽다.

후라이팬을 후다닥 빨리 씻고 남편이 좋아하는 순대볶음을 한다. 양배추를 많이 썰고 양념과 볶다가 순대도 넣어 볶는다. 그 위에 참기름 깻잎, 깨소금을 솔솔 뿌리면 완성. 완전 밥도둑이지만 오늘의 메인요리는 아니다. 이쁜 그릇을 찾아 꺼내 담아둔다.

오늘은 메인 요리는 우리 가족 모두 좋아하는 샤부샤부이다. 다양한 야채와 맑은 육수를 끓여 얇은 소고기를 넣고 익혀 먹으면 담백한 소고기 육수맛과 야채가 한가득이라 입도 즐겁고 몸에도 좋다. 마침 집에 일본여행 후 사온 과일이 들어간 간장소스가 있어서 함께 먹었는데 달달한 간장베이스 맛이 꽤 괜찮았다. 왠지 생선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냉동실에 있던 고등어를 꺼내 고갈비 소스를 두르고 전분가루를 뿌려 에어프라이기에 구웠다. 촉촉 바삭한 고등어구이도 간단히 완성이다.


상을 차리니 그럴싸하다. 가족모두 저녁을 먹고 딸은 거실로 아들은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상을 치워야 하지만 음식 만든다고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상을 치우지는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들 제대가 다섯 달이 안 남았다. 아들은 제대 후 바로 복학을 하는데 자취할 계획이다. 고2인 딸도 시험준비로 바쁘다. 주말부부인 남편은 회사일이 있을 땐 주말에도 집에 오지 못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돌밥이라고 해서 돌아서면 밥 해야 해서 힘들다고 두털되었는데 이젠 가족 네 명이 함께 다 모이기도 어렵다니. 다시 힘을 내서 상을 치우며 생각이 깊어진다. 아이들이 다 떠나버리기 전에 더 자주 집밥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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