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사랑4_소울푸드
오랜만에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이다. 남편이 티브이를 켰는데 군소가 나온다. <안 싸우면 다행이야> 티브이 채널을 고정하고 보기 시작했다. 어느 무인도 같은 섬에서 중장년 연예인들이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리얼 야생 프로그램이었다. 이연복 셰프와 레이먼 킴 셰프, 정호영 셰프가 게스트로 나온 듯했다. 셰프들은 섬에서 잡은 자연산 전복과 군소로 간장조림 요리를 한다. 이연복 셰프는 자연산 굴을 넣은 만두를 만들어 만둣국을 한다. 또 레이먼킴은 해물을 넣은 파에야를 만든다. 섬생활에서 이런 요리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맛있는 최고 고급 해물 요리들이 등장했다.
그중에서 바다와 섬 그리고 군소가 나오는 이 모든 영상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어머니는 제주도 옆 작은 섬 추자도 분이시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섬에서 나고 자라서 육지 사람들처럼 과자 한번 제대로 드신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배가 고프면 바닷가로 가서 따 먹을 게 없나 찾아다니는 것이다. 추자도 섬의 바닷가에는 어떤 먹을 것들이 있었을까?
일흔이 넘은 어머니는 아직도 군소를 찾으신다.
난 아직까지도 잘 먹지 못하는 군소는 어두운 색을 가진 바다에 사는 연체동물이다. 연체동물이지만 딱딱한 껍질이 없어 바다의 달팽이라고도 불린다. 약간은 징그럽게 생긴 군소를 어머니는 연세가 드실수록 더 자주 찾으신다.
어느 날 대구에 사시는 어머니가 포항에 사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 배서방, 지금이 군소철이야. 더 더워지면 군소 맛이 없으니까 군소를 많이 사둬야겠어. 포항 죽도시장 가서 식당에서 왔다면서 키로로 군소를 주문해서 대구집으로 보내주면 안 될까? 내가 10만 원 보내줄게. ” 어머니는 어른들에게 잘하는 배서방이 이뻐 보였는지 아니면 군소를 먹게 되어 기분이 좋으셨는지 20만 원을 보내주셨다고 한다.
섬에서 자란 어머니에게 바다와 섬 그리고 군소는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 아닐까. 마음에 배가 고플 때 그리워지는 것들 말이다. 정호영 셰프도 군소 손질을 하며 징그럽다고 했다. 다양한 식자재를 다루는 셰프조차도 징그럽다는데 어머니는 어째서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찾으시는 걸까? 어머니는 삶은 군소를 얇게 채치듯 자르신다. 그리고 채친 무랑 함께 초장에 초무침을 해서 드시기도 하시고 그냥 잘라서 바로 드시기도 한다. 군소의 그 맛에 좀 살 것 같은지 기력이 생기고 밥 맛이 살아난다고 한다. 군소에게 이런 힘이 있다니. 마음의 치료제가 따로 없다.
마흔이 되니 나에게도 마음의 치료제 같은 음식이 그리워진다. 소울 푸드인 떡볶이와 대구 찜닭이다. 마음이 허할 때면 이상하게 찾게 된다. 아니 기쁠 때도 슬플 때 모두 그립다. 세월이 흘러 구하기가 힘들어지거나 가게들을 찾기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까지 생긴다.
나를 위한 소울 푸드 레시피 하나는 마음 한편에 잘 저장해 두면 어떨까 한다. 파는 가게마저 사라지더라도 마음의 치료제가 필요한 날 꺼내 먹을 수 있게 말이다. 그 맛에 오늘 하루 누워만 있고 싶을 만큼 기력이 없다가도 입맛이 살아나 또 한 번 잘살아보자 다짐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마흔의 나이에 찾아온 삶의 에너지는 열정이 끓어오르다가도 주춤하길 반복한다. 그래서 나에겐 비싼 레스토랑 음식보다 마음의 소울푸드가 더 중요하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든든한 에너지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