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이걸 Mar 24. 2024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배우자를 사랑하는가?

요조 산문 <만지고 싶은 기분>의 한 책터를 읽으며

책은 읽을수록 더 좋은 책이 계속 곁으로 모인다. 책을 통해서 요즘은 살맛이 나게 하는 에세이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채워준다. 그중 요조의 산문 <만지고 싶은 기분>을 읽는 데 최근 우리 부부 사이에 있었던 일이 그대로 투영되기라도 하듯 있었다. “~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옹호함”이라는 챕터에는 우리가 쓰는 말 중 ‘~인 것 같아요.’, ‘~인 듯해요.’처럼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말이 거슬릴 수 있지만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을 시로 대신해 주었다.


<침대에서의 대화>


                                     영국의 시인 필립 라킨


침대에서의 대화는 가장 편안해야 하지

거기 함께 눕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일

두 사람이 정직하다는 것의 한 상징


그러나 시간은 점점 더 말없이 흐른다

바깥에서의 바람에 불완전한 불안이

하늘 여기저기에 구름을 짓고 흩트리고


캄캄한 마을은 지평선 위에 아무렇게나 쌓인다

그중 어느 것도 우리를 보살피지 않지


그 무엇도 이유를 보여주지 않아

고립으로부터의 이 독특한 거리에서는


왜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지를 말이야

진실한 동신에 다정한 말을 혹은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다정하지 않은 것도 아닌 그런 말을



가장 마지막 행에 나오는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는 최근 내내 내 마음을 괴롭힌 말이다.

진실하지만 진실하지도 않은 것,


 신영철 평론가는 마지막 두 행에 주목해서 진실한 말과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 말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  다정한 말과 다정하지 않은 것도 아닌 말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


남편과 나는 이제 다정하지 않은 것도 아닌 말과 행동으로 부부라는 사이로 사는 게 아닐까?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안다고 믿고 사는 건 아닐까? 이 이중부정을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슬아슬한 사이를 건너고 있다.


이 이일의 시작은 시댁에 들렀을 때 어머니께서 남편과 함께 간 점집 이야기로 때문이었다. 어머님은 점집에 갔다가 남편 회사일을 물어보셨고 “성철이는 금기운이 필요하니 철이 가까이 있는 회사에 다녀야 해. 그 회사는 절대 나오면 안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온 이후부터 며느리인 나를 만나면 항시 하는 말씀 중 하나이다. 그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는 우리는 주말부부이고 며느리가 아들을 데리고 자기 곁과 멀리 떨어진 경기도로 데리고 갈까 봐 걱정이 되시는 것이다. 우리 내외는 결혼 이후 시댁 근처에 살았고 15년의 시댁살이 후 나는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로 이사를 와 버렸다. 남편은 부모님 근처에 몇 년을 살다 어머님의 설득에 본가에 들어가 살고 있다. 어머님은 자녀 2남 1녀 모두 어머님 집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어머님의 아들 사랑이 크시다 보니 손주들도 총 6명인데 5명이 남자이고 나만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어 겨우 딸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시댁 방문 후 또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어머님의 다섯 손자 중 지금 세명이 군 복무 중인데 세명 모두 포항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것이다. 울 집 아들은 해군으로 지원했다가 목포로 자대 배치 희망을 하였는데 떨어져서 포항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도련님 네 아들 둘은 포항에 살고 있으니 포항 자대 배치가 잘되지 않는데 둘째 조카는 해병대로 갔다가 포항으로 배치된 것이다. 어머님이 자식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건 시집온 다음날부터 느껴왔지만 그 기운이 너무 강해 손주들까지 모두 포항으로 모이게 하는 건 아닌지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머님 이야기를 믿고 그 점집에 작년에 혼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에겐 이야기하지 않아 전혀 모르던 일을 듣다 보니 남편의 속을 도통 알지 못하는 걸로 속상했던 마음이 폭발하고 말았다.


남편의 말로는 자신은 솔직하지만 말을 안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 말을 안 하니 도통 뭘 하는지 뭘 생각하는지 알지는 못하지.’

그럼 나는 어떤가? 평일 하지 못한 일상사를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풀어내며 웃기도 하고 고민을 토해내기도 했는데 평생 이렇게 살아온 나는 뭐란 말인가?

‘당신은 나한테 말 못 하고는 못 살걸.’ 대화의 마지막 말이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나는 3일 동안 남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 집으로 온 남편도 못 본척했다.

남편도 그러거나 말거나 하며 다른 방에 가서 자고 그다음 날 이야기하자며 그만하자고 한다.

남편은 자신이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니 이해해 달라고 한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 그의 말과 행동들. 모르고 사는 게 더 평안한 부부관계일까?

우린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 부부살이를 하고 있다.


“예컨대 누군가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배우자를 사랑하는가.’

당신은 정직함과 정확함이라는 미덕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이런 이중부정의 형식으로밖에는 답할 수가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죠.’ 이 이중부정을 긍정으로 이해해도 되느냐고 재차 물어보면 당신은

‘뭐, 그런 셈이죠.’라고 대꾸하고 말겠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어떤 거짓이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어서 마음이 스산해질지도 모릅니다.” _ 요조 산문 <만지고 싶은 기분> p.47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 우리 부부는 주말 밤 한 침대에 누워 가장 평안한 대화를 나눠야 할 시간에 우린 입을 닫았다.  

작가의 이전글 군소와 어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