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년 여성, 이제 ‘나’로 살 때도 됐잖아요

중년을 바라보며, 남은 인생에 대한 굳은 다짐

by 조유리

몇 년 전 출간되어 100만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아직까지도 서점의 베스트셀러 선반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이 책의 인기가 오히려 많은 이들이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시대의 슬픔을 대변하는 것 같아 문득, 서글퍼진다.


대한민국 여성, ‘나’로 살 수 있을까

어릴 때 다행히도, ‘여자가 무슨’이라는 고정관념이 작용하지 않는 흔치 않은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라도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마저 피하지는 못했을 거다. 남과 똑같이 배우고 남과 똑같은 사회적 기준에 맞춘 고만고만한 성공을 꿈꾼 이들. 직장생활을 하며 잠깐의 자유를 맛보나 했는데 결혼 후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니 이제 노령의 부모를 살펴야 할 때다. 조금 더 지나면 언젠가 손자를 돌봐야 할 때도 오겠지. 과연 내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내 자유의지로 결정하며 내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삶’을 살아볼 날이 한 번이라도 올지 의문스럽다.


이것은 바로 대한민국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 같다. 어릴 때부터 틀에 갇힌 성역할을 부여받고 그에 부응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심지어 결혼 후에는 ‘돌봄’이라는 주제가 여성을 지겹게 따라다닌다.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는 삶이 지나 남을 위해 사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노년기가 되면 종종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죽을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그전에, 사는 동안 진정 ‘나 자신’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할 일이다. 나이 중년에 접어들었다면 그래도 한 번은 ‘나로 살기’를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문제를 시작해야 할까?


‘나’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얼까

나로 사는 삶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렵다. 버젓한 직업이 있다면 나로 사는 걸까?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지 않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전업주부라면 나로 사는 걸까? 결혼하지 않아 돌봐야 할 가족이 없다면 나로 사는 걸까? 과연 무엇이 나로 사는 걸까?


우리는 정말 많은 상황에서 심리학자 융이 말한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를 얼굴에 쓰고 살아간다. 직장 분위기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나, 집안에서는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맞는 감정 가면을 쓰는 나. 미혼자의 경우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 앞에서,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묻는 가족 앞에서 TPO에 맞는 페르소나가 잘도 튀어나온다. 최근에는 SNS도 이런 흐름에 가세한다.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받기 위해 타인의 게시물에 부지런히 ‘좋아요’를 누르는 내 손가락에서도 페르소나가 발휘된다. 물론 이는 사회적인 동물로서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삶에서 그 가면을 벗어던질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는 돌아볼 필요는 있다. 남에게 보여주는 나를 생각하느라 나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꺼내서 보여주고 있는지,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 미안하지는 않은지 말이다.


흔히 직장에 오래 다닌 사람은 은퇴 직후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통지서를 받은 느낌이다. 일을 해 온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일이 없는 상태에 대한 공허함이 크고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무력감이 온몸을 뒤덮는다. 이런 은퇴자는 ‘나 자신’을 잃은 걸까? 일로 대변되어 온 자신감과 효능감을 잃었으니 그의 우울은 큰 문제가 되는 걸까?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은 일일 뿐, 일은 내가 아니다. 진정한 ‘나 자신’이란 ‘내 감정’이다. 일이 있든 없든 매 순간 느껴지는 솔직한 내 감정이야말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러니 은퇴자가 맞이하는 우울한 감정도 진짜 나 자신이다. 우울과 무기력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세히 들여다보고 인정하고 보듬어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그 인정은 사회의 도구로서 받았던 소모성 칭찬이 아닌,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진정한 이해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왔구나’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지금 기분이 침체하고 있구나’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라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일개 사회인이 아닌 자신의 존재 자체를 감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와 만나는 순간이다.




나로 살기 위한 소소한 습관

나로 살기 위해 첫 번째 할 일은 수시로 내 감정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직업, 상황, 경제 여건 등에 전혀 상관없이 나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들여다보고 또 자신이 또 다른 내가 되어 그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 그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나로 살기 위해 수시로 자신에게 던질 질문 리스트

- 나는 누구인가? : OO의 엄마, 회사 직함으로 대변되는 내가 아니라 그저 오로지 자신으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고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한다.

-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나? : 나의 정확한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시도하고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인정해준다.

-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존중하고 있나? : 친구나 가족, 심지어 반려동물이 자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나 자신의 삶을 살기는 어렵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수시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이해하고, 인정해준다.

나로 살기 위한 생각의 전환

- 감정을 상기한다 :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일기를 쓸 때, 일어난 사실보다 그 당시의 내 감정을 상기하려 노력한다. ‘내 마음’을 찾는 연습을 하면 ‘나 자신’을 찾게 된다.

- ‘내가 없으면 누가 하나’라는 생각을 없앤다. :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할 수 있는 일을 부담스럽게 맡고 있지는 않은지,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자신을 혹사하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 인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한다 : 실제로 40대만 돼도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진다. 한 번도 ‘나’로 살아보지 못한 채 생을 끝낼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상상의 힘을 빌어,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을 갖는다.

-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비교도 어리석지만 타인의 모습을 기준으로 두고 그와는 필사적으로 다른 내 모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온전히 ‘나’이지 못했던 과거의 내 모습만이 변화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나’로 살기 위한 소소한 습관

- 나를 살리는 10분 명상 : 집중하는 명상이 힘들다면 ‘멍하게 있기’도 좋다. 뇌를 쉬게 하고 세상과 주변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시간은 창의성에도 도움이 된다.

- 하루 한 번 땀나는 운동 : 우울감을 떨치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마음이 편해서 운동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 내가 먹고 싶은 음식 혼자 먹기 : 나이가 들수록 맛있는 음식을 보며 생각나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런 소중한 한 끼를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하고 귀한 손님처럼 나를 대접하자.

- 몸을 편하게 한다 : 드레스에도 스니커즈를 신는 시대, 격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몸이 편한 대로 아이템을 착용하는 습관을 들인다.

- 하루 한 가지 새로운 일 한다 : 안 해본 일, 절대 사지 않을 것 같던 물건을 사는 것은 새로운 내 취향, 나도 모르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 휴식의 가치를 인정한다 : 일상은 끊임없는 소소한 도전들로 채워진다. 성취감도 주지만 피로와 좌절감도 주는 이런 도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참고 도서 : <당신이 옳다>(해냄출판사), <김미경의 인생 미답>(한국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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