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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3. 2023

혼자 사는 부모가 다치면 일어나는 일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를 통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말하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혼자 있다 넘어진 말임 씨, 어쩌나!

지방에서 혼자 거주하던 할머니 말임 씨가 오래된 주택 옥상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굴러 넘어집니다. 그리고 팔이 부러지죠. 병원으로 실려간 말임 씨.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해친다고 말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릅니다. 잠시 섬망–질환이나 약물로 인해 인지기능이 저하되어 심한 과다행동과 생생한 환각 등이 일어나는 증상-을 겪은 것이죠. 수술 후 퇴원한 말임 씨의 집에는 서울에 사는 아들 종욱(김영민 분)이 고용한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 분)이 찾아오고 거실에는 CCTV가 설치됩니다. 말임 씨는 ‘뭐 하러 돈을 내고 사람을 부르느냐’, ‘혼자 살 수 있다’고 고집을 피워 아들과 갈등을 겪다가도 살뜰하게 자신을 챙기는 듯한 미선에게 서서히 마음을 줍니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를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놀라웠습니다. 저도 친정엄마가 뇌질환으로 쓰러진 뒤 겪기도 했던, 실제 일상에서는 흔하게 일어나지만 그렇기에 영화 소재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작품성 있게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나이 들어가는 부모가 갑작스레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이후라면 그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관계를 설정해 두고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혼돈의 갈등을 생생하게 풀어냈습니다. 또한 그 안에 노인요양과 관련된 실제 제도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어 아마도 감독이 그와 같은 경험을 겪은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말임 씨를 돌보는 요양보호사 미선의 모습은 다분히 다중적입니다. 멀리 사는 자식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믿음을 주기도 하지만 말임 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등, 슬쩍슬쩍 나쁜 짓도 합니다. 와중에 기억력이 깜빡깜빡하고 자주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말임 씨의 태도에 아들 종욱은 미선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그녀를 불신하기도 어려운 난처한 상황에 처합니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동시에 자신 또한 오랜 지병을 앓는 친엄마가 있는 자식이기도 한 미선을 관객들조차 선인으로 여겨야 할지, 악인으로 규정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에 빠지죠. 하지만 그런 미선이야 말로 이 세상 어딘가 꼭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입니다.     


아들 종욱의 상황도 ‘저거 내 이야기 아닌가?’ 싶습니다. 자가 아파트에 살지만 아직 대출금을 갚기는 요원한데 그래도 착한 아내 유진(김혜나 분)과 합의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하며 어머니의 요양보호사 월급 150만 원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적금도 깨고 점점 형편이 빠듯해지자 유진은 요양보호사 비용은 시어머니가 직접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아파트 구입 시 말임 씨가 보태준 돈을 생각하며 이내 마음을 접습니다.      





부모 부양은 자식의 책임일까

나이 든 부모와 결혼한 자녀가 대가족을 이뤄 함께 살거나 여러 자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번갈아 돌보며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는 자식 수도 적고 그마저도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사는 게 대부분인, 그래서 부모 부양의 책임이 자식에게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노인 부양의 의무는 아직도 자식에게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노인복지법상에서는 ‘부양의무자’를 ‘배우자(사실혼 포함)와 직계비속 및 그 배우자(사실혼 포함)’라고 명시했는데 이는 배우자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등에 한정됩니다. 물론, 성인 자녀가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살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막상 부모가 법적인 부양을 받아야 하는 상태, 즉 병원에 입원하거나 요양기관에 입소한 노인 환자의 공식 보호자가 되거나 요양보험 등 국가의 지원금을 신청해야 할 때 또 노인이 사망해서 장례를 치러야 할 때는 반드시 이렇게 부양의무자에 해당되는 가족들이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자식보다 가까이에서 지내던 이웃이나 친구가 있더라도 이런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것이죠. 그래서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이런 일을 처리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와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자식이 자신의 생계에 급급해 시간을 낼 수 없거나 자식이 아예 없는 노인은 실질적으로 법적 부양의무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회적으로는 부모 부양이 자식의 몫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반드시 자식들이 일을 처리하게 되어 있는 이런 상황이 노인 돌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처럼 일을 악용하는 요양보호사도 있을 수 있기에 중요한 보호자 노릇은 배우자나 자식에게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는 있습니다. 결국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률, 법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상황 때문에 노인 부양은 아직도 가족들의 오랜 갈등의 단초로 남아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 보육에 대해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처럼 노인 부양도 사회적으로 더욱 세분화되고 견고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입니다.      


노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제도가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입니다. 65세 이상 노인이나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병이 있는 사람이 일정한 인정 절차를 거쳐서 급여자가 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나라에 국민건강보험료를 내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65세 이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노인장기요양보험 가입자가 됩니다. 이들이 노인성 질병을 앓아서 말임 씨처럼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는 ‘재가급여’나 특정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시설급여’를 받게 될 때 일정 금액을 나라에서 지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에서도 요양보호사의 월급을 주는 것이 부담되기 시작한 종욱의 내외가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단, 이는 인정절차를 거쳐 1~5 등급 중 되도록 높은 등급을 받아야 높은 금액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병세가 심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높은 요양등급을 받기를 바라며 어머니가 조금은 아픈 척해주기를 바랐던 종욱의 마음과 달리 보험공단 직원(이정은 분) 앞에서 ‘나는 아직 쌩쌩합니다!’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나는 말임 씨의 모습은 안타까운 웃음을 자아내지만 실제 많은 노인들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라는 금전적인 지원책은 공급자 중심의 표준화된 지원이라는 점, 노인 개개인을 서사가 있는 인격으로 보고 증상에 따라 개별 맞춤 돌봄을 하는 선진국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 의료와는 분리된 돌봄에 한정된 서비스라는 점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실제 자신의 병환을 제대로 ‘증명’ 해내지 못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점도 보편적 복지와는 거리가 먼, 불평등한 복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노인 돌봄이 절실하지만 그 비용을 충당하기엔 어려운 이들에게는 그마저도 단비와 같은 정책일 수 있으니 마냥 비판만 하기도 어렵습니다. 


영화는 낙상이나 치매 문제, 요양기관을 알아보는 과정, 순진함을 이용해 제품을 판매하려는 사람들, 자식과 노인의 세대 갈등 등 노인을 둘러싼 일상적이고도 다양한 문제를 담아 부모 돌봄과 나이 듦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합니다. 게다가 원로배우 김영옥 씨를 비롯, 김영민, 이정은, 정성일 씨와 같은 잘 알려진 배우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가 보는 맛을 더합니다. 우리 집을 들여다본 것은 아닌지, 내 이웃에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로 현실을 잘 반영한 영화 <말임 씨를 부탁해>를 통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 문제를 고찰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 씨네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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