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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7. 2023

아프기 전에 지정해두세요, 성년후견인

영화 <퍼펙트 케어>으로 상상해보는 질병 후의 나의 신변

당장 내가 아프면 내 신변은 누가 돌보지?

내가 갑자기 몸을 전혀 못 쓰게 되거나 뇌를 다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인지적 문제가 생겼다면 내 생활의 전반적인 결정은 누가 내려야 할까요? 누가 은행 업무를 대신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나의 거주 문제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당연히 ‘가족’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배우자도, 자식도 없는 혹은 자식이 멀리 떨어져 사는 노인이라면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고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알아두면 좋은 제도가 ‘성년후견인’입니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민원센터에는 이 제도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질병 · 장애 · 노령 등의 사유로 인해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이 존엄한 인격체로서 주체적으로 후견제도를 이용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개정 민법은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폐지하고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성년후견제도는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의 존중’을 기본이념으로 하여 후견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였고 재산 관련 분야뿐만 아니라 치료, 요양 등 신상에 관한 분야에도 폭넓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정신적 제약이 없는 사람이라도 미래를 대비하여 성년후견제도(임의후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생존해 있고 서로 믿을만한 신뢰 관계가 있는 노인에게는 이 제도는 필요없을까요? 내 가족이 아프면 당연히 내가 대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대부분의 은행 업무, 특히 출금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찾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위임장을 작성하면 가족이 대신해서 업무를 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그 범위가 한정적입니다. 따라서 가족 중 스스로 행정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분이 계시다면 가족을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하는 절차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노인의 입장에서, 내가 현재는 건강하더라도 질병에 걸릴 때를 대비해서 가족이나 주변 믿을만한 인물을 후견인으로 미리 지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를 ‘임의후견인’이라고 합니다.      


가족의 상황도 여의치 않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는 독거노인 환자의 경우 법원이나 지자체에서 상황을 판단하여 해당 노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공공후견인’이라고 합니다. 즉, 노인과 친분은 없더라도 사회복지와 법적 업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인물을 해당 노인의 후견인으로 지정, 재산과 신변을 관리합니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후견인 범죄

영화 <퍼펙트 케어>는 이러한 후견인 제도를 악용하는 인물에 관한 스릴러 작품입니다. 주인공 말라(로자먼드 파이크 분)는 전문 후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일하는 방식은 좀 이상합니다. 노인을 진료하는 의사에게 환자를 소개받습니다. 돈이 많고 혼자 사는 노인 환자 말이죠. 노인의 질병이 심각하지 않아도 의사가 수수료를 받고 조작해서 써 준 진단서로 긴급환자인 양 꾸며 이들이 혼자 거주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판사 앞에서 자신은 어려운 노인에게 돌봄의 의무를 다하는 천사같은 후견인처럼 가장하지만 뒤로는 병증이 심하지도 않은 노인을 요양원에 입소시키고 해당 노인의 재산을 갈취하는 악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이해가 안 되지만 미국의 후견인 제도를 이해하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미국에는 직업적으로 후견인 업무를 하는 ‘전문 후견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영화에서처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들의 법정 후견인으로 일하고 노인의 재산 중 일부에서 자신이 수수료를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실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후견인 범죄가 일어나고 있고 <퍼펙트 케어>를 연출한 J 블레이크슨 감독도 인터뷰에서 이런 사례를 뉴스로 접하고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내용만 놓고 보면 임의후견인이나 성년후견인을 지정하고 싶어도 그들이 재산을 마음대로 갈취하지는 않을지 걱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족이 아닌 타인이 후견인을 맡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공공후견인 또한 노인의 신변 관리를 하게 되었을 때 지자체 기관으로부터 피후견인 한 명당 15~20만원의 정해진 금액을 받을 뿐입니다. 그리고 민법에는 후견인이 될 수 없는 결격사유가 정해져 있습니다. 즉, 미성년자, 파산선소를 받은자, 형을 선고받은자 법원에서 해임된 대리인, 피후견인을 상대로 소송하는 사람 등은 그 누구의 후견인도 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범죄는 일어날 수 있겠지만요.  

    

영화를 보고 성년후견인 제도에 대한 불신이 더 높아질 수도 있겠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떠올려 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질병 후의 우리 자신의 삶입니다. 언젠가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질병에 대해서 상상해보고, 성년후견인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자립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누구를 믿고 일을 처리하게 할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질병이 없더라도 미리 자식이나 배우자 등을 임의후견인으로 정해서 만에 하나 있을 일에 대비해 놓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내가 죽으면...’이라는 가정을 많이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길어질 수 있는 질병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지 누구든 한 번쯤은 머릿 속에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 TCO㈜더콘텐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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