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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야바야바 Sep 22. 2016

<고스트 버스터즈> 젠더 논란의 네 가지 포인트

다소 소란스럽게 영화 읽기


 리부트 된 <고스트 버스터즈>를 둘러싼 논쟁은 과거 <국제시장>을 놓고 벌어진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2014년 한 대담에서 모 평론가의 "정신승리" 발언으로 촉발된 <국제시장>의 '정치성' 논쟁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좌우 갈등’과 결부돼 크게 확산되었다. 논쟁이 지속되자 윤제균 감독이 직접 나서 "사회 통합을 염원하고 만든 영화다. 제발 정치색을 배제하고 영화를 봐달라"고 호소했지만 도리어 논란은 가중되었다. <국제시장>은 감독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현대 영화사의 '갈등의 아이콘'이 돼버리고 말았다. (총 관객 천사백 만이라는 기록적 스코어를 찍은 데 그 '정치성 논란'이 한 몫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고스트 버스터즈>를 둘러싼 '젠더 스왑' 논쟁은 올해 초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트레일러가 한 달 간 이천 만 뷰를 넘게 기록하는 동안 유튜브의 '싫어요(dislike)' 버튼은 '좋아요(like)'에 비해 다섯 배나 많은 오십 만 건이나 눌렸다. (지금은 백만 건을 넘어 영화사 상 유튜브에서 '싫어요'가 가장 많이 눌린 영화로 기록됐다.) 논쟁은 댓글을 통해 이어졌는데, 단지 트레일러만 보고도 '후지다', '원작모독이다'라는 투의 비난 일색이지만, 결국 뉘앙스를 종합해보면 '왜 주인공을 여자로 바꿨느냐'는 젠더 스왑에 대한 반감에서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막상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왜 이 작품이 그토록 젠더 논쟁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보편 대중이 그러하다 하여 일부가 느끼는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다. 여하튼 논쟁은 벌어졌고, <국제시장>의 정치 논쟁처럼 <고스트 버스터즈> 또한 젠더라는 논점을 피해갈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은 <고스트 버스터즈>에서의 '젠더 스왑'에 대해 포인트 별로 짚어보려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영화를 분석하는 영화 매거진의 필진으로서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이 더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작품에서 감독이 전략적으로 젠더 스왑을 활용한 부분도 있다. 이를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이 <고스트 버스터즈>를 둘러싼 갈등을 명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주 등장인물 면면은 원작과 정확히 대치된다. ⓒ <고스트 버스터즈> 스틸.


   1. "주인공이 여자야!"

 '원작을 모독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핵심 주장은 네 남성이 좌충우돌 유령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 원작의 재미이고, 여성 주인공으로 바뀌면서 그 재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튜브 댓글 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런 댓글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나 있고 논리가 없으며, 주인공의 성별을 바꾼 것이 마치 신성모독이라는 투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은 원작의 배우가 리부트작에서 까메오처럼 쓰인 것에 대해서도 불만일 것이다.) 굳이 반박할 소지가 없는 주장이긴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화가 나 있다면 조금만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우선 리부트 된 <고스트버스터즈>에서는 유령을 때려잡는 네 여성과 그들을 전혀 도와주지 못하는 근육질 남성 멍청이 비서가 등장하는데, 이는 원작의 등장인물과 성별에서 정확히 대칭된다. 사실 원작의 스토리 상 주인공이 특정 성별이여야만 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리부트 버전에서도 그 주인공이 여성이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사실 등장인물의 성별 부분은 감독의 의도인 게, 여타 영화에서 흔히 생각하는 여비서의 이미지를 남성의 그것으로 다소 과하게 전이시켰기 때문. 이 부분은 오히려 '미러링' 전략으로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성 히어로의 이미지를 여성으로 그 중심축을 이동시키고,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여성의 역할을 정확히 남성으로 대칭시키는 것. 기존의 문법과는 맞지 않는 성별 구성 및 등장인물 성격은 다분히 감독의 의도라 봐야 할 것이다.     


도리어 주목할 만한 쪽은 비서 쪽인데,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비서의 상(여리여리한 여성)을 남성으로 대칭시켜놓으니 말이 많아진 듯 하다. 이 부분은 바로 밑에서 이야기해보자.          



"뭐가 더 의사같아 보여요?" ⓒ <고스트 버스터즈> 스틸.



    2. "왜 남자 비서는 그렇게 멍청해?"

 리부트 작의 비서인 케빈은 크리스 헴스워스의 팬들로 하여금 '역대 최악의 배역'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사실 이 배역으로 인해 성 차별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부각된 점은 주목할 만한데, 원작의 비서가 평범한 외형의 밋밋한 역할이었다면 케빈은 몸 좋고 잘 생기고 멍청해서 에린(크리스틴 위그)의 애정을 듬뿍 받다가 나중엔 악령에 빙의해 ‘몸짱’ 악당이 되는, 성적 대상화의 도구로 등장한다.     


 영화 속 남성 캐릭터 전반으로 확장해보자. 첫 장면에 등장하는 일명 '바지 지리는 가이드'부터 '뻐큐 날리는 학장', '멍청한 몸짱 비서'나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장', '놀라면 여자 비명을 지르는 공연 기획자' 등등 남성 캐릭터들 중에 과히 ‘정상적’이라 부를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이에 남성 캐릭터의 모습이 다소 과한 ‘미러링’, 혹은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근데 막상 따져보면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 전반이(남성이든 여성이든) 정상적이지 않다. 주인공 면면도 그렇거니와, 애초에 스토리에 코믹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꼭 정상적일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여기서 나오는 남자들이 이상하다고 딴지 거는 건 그냥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서 싫어’라고 ‘까는’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 부분은 ‘3’에서 다루겠다.)     


 다만 그간 영화들, 특히 액션영화에서 여성이 얼마나 성적, 도구적으로 쓰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남성 히어로의 성적 도구로 사용되거나(007 시리즈, 킹스맨 등) 악당을 무찌르기 위한 동기부여로 쓰이기도 했고(메카닉, 스파이더맨 등) 특히 수많은 히어로물에서는 예쁘고 헐벗게 등장하는 등 일종의 시각장치로 활용된 경향이 짙다. 이에 최근 들어 남성성에 대한 반동으로 여성 히어로물이 대다수 등장하기도 했다. (미스틱, 블랙위도우, 캣우먼 등) <고스트 버스터즈>가 다소 반동이 심한 축에 속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특별히 이 부분이 너무 두드러져서 영화 전개에 부작위를 가져오는 수준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걸 크러쉬? ⓒ <고스트 버스터즈> 포스터.



    3. “이거 완전 페미니즘 영화잖아!”     

 페미니즘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은 페미니즘 영화 그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별 차이에서 기인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페미니즘의 본래 메시지를 놓고 비판할 것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일부 ‘패드립’(그들은 미러링이라 주장하는)으로 인해 페미니즘의 본래 메시지가 희석되면서 사회적 분열을 초래하는데 있다. 이에 <고스트 버스터즈>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영화 속에서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얼마나 거부감 없게 전달되는지 살펴 볼 필요 또한 있겠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는 게, 영화 속에서 사용하는 주요 전략이 미러링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 앞서 언급했듯 젠더 스왑을 한다거나 남성 캐릭터를 성적, 도구적으로 쓰는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무론 당장 미러링에 대해 갑론을박 엇갈리는 상황에서 영화 속 전략을 놓고 그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필자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중립성을 지키고자 한다. 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바로 밑에 언급할 남성에 대한 ‘다소 과한 공격성’이다.          



내... 내가 고자라닛!!! ⓒ <고스트 버스터즈> 스틸.



    4. "귀신을 고자로 만들었어!"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정말 페미니즘의 학제적 논의로 넘어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 페미니즘 적으로 가장 핵심 장면은 네 여성 주인공이 거대한 남자 유령의 거시기(?)를 쏴서 제압하는 장면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 지점은 이 영화 전체를 놓고 봐도 가장 상징적이고 노골적이며 또 도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남자로서 나도 모르게 장탄식을 내뱉고야 말았다.)     


 영화 평들 중에서도 이 장면에 대한 논란은 꽤 많았는데, 거부감을 나타낸 주장을 정리하자면 대략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고 성기를 공격해 무너뜨리는 과정에 적대감을 느낀' 부류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 감독이 의도적으로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는 것을 봤을 때 이 장면은, 특히 상징성면에서는 필요한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남성들이 '거시기'를 공격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단지 웃으며 넘어가기 힘든 지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프로이트의 '거세 컴플렉스'인데, 이는 성기가 '파괴'되는 것의 공포감을 이야기하는 정신분석학의 이론이다. 이를 적용하자면 <고스트 버스터즈>의 이 장면에 대해 뭇 남성이 거부감을 가진 이유는 성기를 파괴하면서도 태연하게 '여기를 쏘는게 맞아?' 라고 묻고 있는 여성들에게 ‘거세 콤플렉스’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거세 콤플렉스와 관련해서는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2014)>, 폴 버호벤 감독의 <포스맨(1983)> 등을 통해 다루어졌다. 거세에 대한 공포와 그를 통한 심리변화를 다룬 위의 작품들은 남성성의 취약점을 정면에서 드러낸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일으킬 만한 요소다. <고스트 버스터즈>가 노골적인 페미니즘 영화라 공격받는 부분도 이런 측면에 기인한다.     




 젠더스왑에 대한 피상적 부분부터 히어로물의 관습 파괴, 학문적 논의까지 <고스트 버스터즈>의 젠더 논쟁을 건드려봤다. 사실 영화 내적인 스토리와 페미니즘 그 자체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고, 이에 젠더 논쟁은 다소 소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국제시장>의 케이스처럼 영화 속에서 정치가 언급되지 않는다고 하여 비정치적이라 할 수는 없는 것처럼,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페미니즘이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모든 영화는 그것이 만들고 읽히는 시대의 관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별’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키워드다. 종교, 성별, 인종 등을 놓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차별 문제가 발생한다. 프랑스의 ‘부르키니’(이슬람 여성 수영복) 갈등이나 난민 수용 문제로 발생하는 문제들, 인종차별을 대놓고 말하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흑백 갈등 등 차별 문제는 실재하고 있고, 다들 알다시피 우리나라도 이러한 갈등의 예외는 아니다. 이에 <고스트 버스터즈>가 잘 만든 영화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오늘날의 차별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메시지를 던진다고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페미니즘 갈등에 대해 굳이 입장을 정해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신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최근 한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If they go low, we go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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