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최상위 원칙을 두고 벌인 세기의 충돌
자연을 지배하는 원칙들이 서로 충돌한다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일상에서는 이런 질문을 만날 일이 없다. 우주의 총합은 언제나 보존되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따르며, 여기의 사건이 저기에 즉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원칙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하나의 단단한 현실을 이룬다. 그러나 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 이 원칙들은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다. 20세기 물리학의 두 거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정면으로 부딪혔고, 각자 진실의 서로 다른 단면을 붙든 채 긴 사유의 전장을 누볐다.
1687년,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을 발표했다. 이 법칙으로 행성의 궤도와 혜성의 귀환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뉴턴은 자신의 수식이 의미하는 바를 견디기 어려워했다. 이 수식에 따르면, 중력은 아무런 매개 없이 즉시 작용한다. 1693년, 그는 벤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물체가 진공을 통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물체에 작용한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불편함은 200년 넘게 해결되지 않았다.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답을 주었다. 중력은 즉각적인 원격 작용이 아니라,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영향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과정에서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여기에 있는 물체가 저기에 있는 물체와 즉각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영향을 주려면 반드시 빛의 속도라는 한계 안에서, 사이에 놓인 무언가를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이것을 국소성이라 부른다. 아인슈타인에게 국소성은 뉴턴의 불편함을 해소한 성취이자,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보어의 출발점은 전혀 달랐다. 그는 원자 내부의 수수께끼와 씨름하고 있었다. 음전하를 띤 전자가 양전하를 띤 원자핵에 끌려들어 충돌하지 않는 이유. 고전 물리학에 따르면 전자는 에너지를 잃으며 나선을 그리다 핵에 추락해야 한다. 그렇다면 원자로 이루어진 모든 물체는 그 즉시 붕괴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결론이다. 1913년, 보어는 대담한 가설을 제안했다. 전자는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허용된 에너지 계단 사이를 불연속적으로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당시 수수께끼 같던 실험 데이터들을 명쾌하게 설명해냈고, 전자가 더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낮은 에너지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원자가 안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 설명은 고전 물리학의 틀 자체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보어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의 직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보여주는 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의 제5차 솔베이 회의.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인 이 자리에서, 마흔여덟의 아인슈타인과 마흔둘의 보어가 맞붙었다. 단체 사진의 맨 앞줄 정중앙, 아인슈타인은 그곳에 앉아 당대 물리학의 절대적인 권위와 무게중심을 보여주고 있다. 보어는 그 거대한 상징성 앞에 물러서지 않고 서서, 고전적 직관을 뒤흔드는 새로운 시대의 문법으로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논쟁을 거듭하며 진리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초기 논쟁의 화두는 중첩이었다. 1927년과 1930년의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 자체가 오류임을 증명하려 애썼다. 특히 1930년, 그는 에너지와 시간을 동시에 정확히 잴 수 있다는 사고실험으로 보어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보어는 아인슈타인 자신의 무기인 상대성 이론을 역으로 이용해 그 공격을 막아냈다.
자신의 이론에 의해 자신의 반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산술적인 오류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계산은 맞지만, 이것이 실제 세계를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라는 논리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불완전하다'는 새로운 전장으로 보어를 이끌어간 것이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2차전을 시작했다. 이번의 화두는 두 입자가 공유하는 구조인 '얽힘'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두 입자가 멀리 떨어진 채로 즉각 연결된다는 현상을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 부르며, 상태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었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두 거인이 공통으로 전제하고 있던 '보존법칙'을 보아야 한다. 한쪽의 스핀이 플러스면 다른 쪽은 반드시 마이너스여야 한다는 이 철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자연을 일관되게 설계한다면, 보존법칙을 지키기 위해 두 입자는 측정 전까지 중첩된 하나의 구조를 공유해야만 한다. 얽힘의 비국소성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신호 전달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시스템이 보존법칙을 완벽하게 수호하는 과정이다. 즉, 두 입자를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양자적 개체로 보게 되면, 이 기묘한 연결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 된다.
1964년, 물리학자 존 벨이 이 논쟁에 결정적인 칼날을 들이댔다. 아인슈타인의 주장대로 상태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면, 실험에서 나올 수 있는 상관관계에는 수학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후 수십 년간의 실험들은 일관되게 그 한계를 넘어섰다. 자연은 보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실험적 증명은 2022년 노벨 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뉴턴이 불편하게 느꼈던 중력의 즉시성을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로 제한하며 국소성을 지켜냈지만, 양자 얽힘이라는 현상에서 결국 국소성은 다시 비집고 나왔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현대 물리학은 정보 전달이 아닌 '상태의 상관관계'에 있어서는 비국소성을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얽힘에서는 보어가 옳았지만, 관측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큰 과제를 남겼다. 보어는 "측정 장치와 대상을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관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는 못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관찰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실재를 믿었으므로, 관찰이 왜 상태를 바꾸는지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관측은 정보가 외부로 새어 나가는 물리적 상호작용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관습적으로 '관측(observation)'이라 부르지만, 이는 초심자에게 인간의 주관적 시선이 개입된 행위라는 오해를 사곤 한다. 사실 자연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또 다른 어떤 물리적 사건을 통해 그 사건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한, 자연은 그 사건을 어디에도 기록하지 않는다. 관측이란 인간이 눈을 뜨는 행위가 아니라,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정보의 흔적이 물리적으로 각인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그저 그 물리적 충돌의 결과물을 사후에 읽어내는 목격자에 불과하다.
뉴턴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시공간을 재정의한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의 체계를 세운 보어도, 관측이라는 문제의 깊은 본질 앞에서는 기존의 직관과 싸워야 했다. 직관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견고한 감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지의 영역에서,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갈렸다. 아인슈타인은 국소성을 지키기 위해 양자역학의 완전성을 의심했고, 보어는 양자역학의 완전성을 지키기 위해 국소성을 포기했다.
미지의 영역을 탐구할 때, 우리는 언제나 이런 선택에 직면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자연이 무엇을 일관되게 지키려고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의 본질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이 쌓아 온 직관마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인공지능 역시 인류에게 거대한 인지적 도전을 던지는 '낯선 지성'이다.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자연의 본질을 묻기 위해 자신의 직관과 싸웠듯, 우리 역시 AI를 인간의 틀로 재단하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기계가 내놓는 정답에 매몰되기보다, 이 낯선 존재에게 어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했다. "질문이야말로 사유의 경건함이다." 자연 앞에서 직관을 내려놓고, 현상이 스스로 말하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평생을 바쳐 걸었던 길이 바로 그 길이었다.
그 물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