π Day는 지났지만

동전의 앞뒷면 사이에 숨어있는 원

by 아트라멘텀

한 달 전은 파이데이(Pi Day)였다. 매년 3월 14일, 원주율 π(파이)의 앞자리 숫자 3.14에서 따온 날이다. 파이데이를 앞두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how-to-find-pi-in-randomness-all-around-you/)에서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소개했다.


동전을 반복해서 던지다가 앞면이 뒷면보다 딱 한 번 더 나오는 순간 멈춘다. 그 시점까지 던진 전체 횟수 중 앞면이 나온 비율을 기록한다. 이 실험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그 비율들을 평균 내면, 던지는 횟수가 무한히 늘어날수록 그 평균은 어떤 특정한 값으로 수렴해 간다. 그 값이 바로 파이를 4로 나눈 수다.


원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의 끝에서 파이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사는 수학자 스테판 게르홀드의 말을 인용했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기댓값이 파이와 관련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의 당혹감이 충분히 이해됐다.

파이는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이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라는 세계는 뚝뚝 끊어진 직선의 세계다. 회전도 없고 각도도 없으며, 둥근 곡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메마른 직선 위에서 파이가 나왔다는 것은 분명 기묘한 일이다.


그런데 기사를 덮고 잠시 생각해 보니, 이 불가사의함이 정말 '설명할 방법이 없는' 성질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현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길을 찾은 것 같다. 다만 동전 던지기 하나만 뚫어져라 들여다봐서는 보이지 않는다.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례들을 먼저 몇 개 더 살펴보고 나면, 공통된 구조가 또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상식을 배신하는 내기


두 사람이 동전 던지기 내기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앞면이 나오면 A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B가 이긴다. 이 게임을 수천 번, 수만 번, 사실상 끝없이 반복한다. 이때 A가 이기고 있는 시간의 비율은 어떻게 분포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간단해 보인다. 동전 확률은 반반이니까 A가 이기는 시간도 절반쯤 될 것이고, 그 절반 근처에 가장 많은 경우가 몰려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직관적인 종 모양의 그래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실제 결과는 이 직관을 완전히 뒤엎는다.

가장 자주 일어나는 경우는 누군가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이고, 정확히 절반씩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경우가 오히려 가장 드물다. 그래프를 그리면 종 모양이 아니라 완벽한 U자 형태가 나온다. 이 결과가 흥미로운 것은 그 직관의 배신 때문만이 아니다. 이 U자 곡선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공식의 한가운데에도, 어김없이 파이가 박혀 있다. 수학자들은 이를 역사인 법칙(Arcsine Law)이라 부른다.


숫자만으로 만드는 파이


세 번째 사례는 동전조차 필요 없다.


2를 1로 나누고, 2를 3으로 나누고, 4를 3으로 나누고, 4를 5로 나누고... 짝수와 홀수만을 재료로 만든 이 분수들을 영원히 계속 곱해 나간다. 기하학은 없다. 주사위도 없다. 오직 숫자들의 끝없는 곱셈만 있다.


이 계산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정확하게 파이를 2로 나눈 수다. 1655년 수학자 존 왈리스가 발견한 이 무한 곱셈을 수학자들은 왈리스 곱(Wallis Product)이라 부른다.


공통점은 단 두 개


이제 세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자.

동전 던지기에는 앞면 아니면 뒷면, 두 가지만 있다. 내기에는 A가 이기거나 B가 이기거나, 두 가지만 있다. 분수 계산에는 짝수와 홀수, 두 가지만 있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둘'이라는 이분법으로 쪼개져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례는 그것을 '무한히' 반복하거나 누적한다.

바로 이 두 개의 공통점, '둘'과 '무한'이 이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다.


광장 위의 수백만 명


왜 이 두 가지가 파이로 이어지는지 직접 상상해 보자.


드넓은 광장 한가운데 서 있다. 오른손에는 동서 방향을 결정하는 동전을, 왼손에는 남북 방향을 결정하는 동전을 들고 있다. 두 동전을 동시에 던진다. 오른손 동전이 앞면이면 동쪽으로 한 걸음, 뒷면이면 서쪽으로 한 걸음. 왼손 동전이 앞면이면 북쪽으로 한 걸음, 뒷면이면 남쪽으로 한 걸음. 두 동전은 서로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방식으로 수백만 명을 광장에 모아놓고 각자 이 산책을 무한히 반복하게 해보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드론을 띄워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출발점인 광장 중앙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멀어질수록 그 수가 줄어드는 풍경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마법이 일어난다. 수백만 명의 걸음이 무한히 쌓이는 순간, 동서남북이라는 방향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그 군중의 형태는 어느 방향에서 잘라 보아도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원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두 동전은 서로 독립적이었다. 각자 자신만의 축을 가지고 있었다. 그 두 축이 무한히 겹쳐지자, '동쪽이냐 서쪽이냐', '북쪽이냐 남쪽이냐'라는 방향의 차이가 모두 지워지고, 어느 방향이든 똑같이 공평한 완벽한 둥근 공간이 열렸다. 이분법적인 '둘'은 서로 독립적인 두 개의 축이고, 그 두 축이 '무한히' 교차하면 필연적으로 회전 대칭성, 즉 원이 탄생한다.


파이는 낙인이었다


우리가 이 무한한 확률의 공간을 100%라는 하나의 완전한 덩어리로 묶어내려면, 결국 이 가상의 원을 한 바퀴 빙 둘러서 재어볼 수밖에 없다. 파이는 원의 테두리를 닫기 위해 수학이 찍어놓은 필연적인 마침표다.

역사인 법칙, 왈리스 곱, 그리고 동전 던지기의 비율. 이름도 생김새도 다른 이 셋의 뿌리는 하나였다. '둘'과 '무한'이 만나면 원이 열리고, 원이 열리면 파이가 찍힌다.


게르홀드가 "불가사의하다"고 말한 것은, 문제를 1차원의 좁은 선 위에 가두어 두고 그 안에서만 원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파이는 동전 속에 몰래 숨어있던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무작위성이 무한히 쌓이고 쌓였을 때 공간에 저절로 나타나는, 가장 공평하고 완벽한 대칭의 모양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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