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은 회사가 정해도, 저녁은 내가 선택한다.
두둥-
벚꽃과 함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연봉 협상' 시즌.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게도,
'협상'이라는 단어는 자본주의가 꾸며낸 정중한 기만 중 하나인 듯싶다.
우리 회사의 시스템은 명확하다.
인사평가 등급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진 숫자가 내 메일함으로 배달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숫자를 '수용'하거나,
혹은 '매우 빠르게 수용'하는 것뿐이다.
사실 이번엔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다.
작년 하반기, 전임 팀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얼레벌레 강제 등판당했을 때
연봉 동결과 함께 내 손에 쥐어진 건 ‘팀장’이라는 명함과 월 15만 원의 직책 수당이 전부였으니까.
나는 회사의 ‘경제적 세이브’가 만들어낸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이제는 그 가성비를 조금은 ‘유료화’해주겠지.
그리고 도착한 숫자.
…Low single % 인상.
체감 물가 상승률 생각하면 사상 나에겐 삭감과 같은 수치다.
누군가 나에게 인상됐잖아?라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만
못내 아쉽고 서운한,
마뜩잖은 숫자였다.
메일 속 ‘연봉 서약서’ 최하단.
‘동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끝나는 일인데,
나는 이틀 동안 그 버튼과 기싸움을 벌였다.
누르지 않는다고 숫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걸 잘 알면서도, 바로 눌러버리면 내 마지막 자존심까지 ‘가성비’로 분류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협상보다는 손익 계산이 먼저인 사람이다.
감정보다 생존을,
자존심보다 경제성을 먼저 택하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그걸 알면서도
이번만큼은 0.1초를 조금 늦추고 싶었다만.
결국 나를 움직인 건 내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불행이었다.
직장인들의 대나무숲, 익명 커뮤니티 ㅂlind에는
예년보다 더한 비명이 난무했다.
“난 동결인데, 누군 삭감이란다. 이게 일을 하란 회사냐?”
“그냥 나가라는 뜻 아닌가.”
그 순간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겪어온 회사란 곳은 언제나 상대평가였고,
직원들의 감정은 비교평가였다.
그제서야 주변이 신경 쓰인다.
나의 작디 작은 인상률이 이렇게까지 소중할 수 있다니.
억울함은 잦아들고,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함이 찾아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의 더 큰 불행이 나의 기준을 낮춰준다.
나란 놈은
결국 타인의 기준으로 내 만족도를 조정하는
지극히 평균적 직장인이다.
결국 나는 혼자만의 기싸움을 포기하고, ‘동의’를 클릭했다.
이틀간의 저항이 무색하게 클릭은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조금은 비겁한 결정이기도 하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그런데 전진을 언제 했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건 기분 탓이겠지.)
나는 알고 있다.
작가 지망생인 나의 라이벌 배우자가 그랬듯,
나 역시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이 야만의 시대를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이번 '동의'는 패배가 아니라, 다음 계절을 도모하기 위해 잠시 눕는 선택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오늘도 나는 가성비 팀장으로서 정시 퇴근을 꿈꾼다.
연봉은 동결됐을지언정,
내 마음의 시차만큼은 회사의 시스템에 귀속시키지 않겠다는 마지막 기개를 품은 채로.
회사 요놈아.
백날 내 연봉을 네 마음대로 휘둘러 봐라.
나는 세상 맛있게 저녁 먹고, 아이랑 벚꽃 산책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