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K-POP이 되다] #1_SM엔터테인먼트

H.O.T.부터 BTS까지 K-POP 성장기, #1_SM엔터테인먼트X보아

by 에틱 유니버스
외국인이 만든 한국 아이돌 이야기
케이팝 데몬 헌터스

최근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이후 케데헌)가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다. 공개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누적 시청 수는 1억 3,240만 뷰를 넘어서고 3부작 시리즈로 제작이 예고 되는 등 그 인기가 엄청나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로 등극한 것은 물론 전세계 영화 순위 2위까지 올랐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하다.

케이팝 데몬헌터스_헌트릭스 (출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자체 뿐 아니라 OST ‘Golden’ 역시 빌보드 Global 200은 물론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까지 1위를 차지하는 등 K-POP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OST의 주요 프로듀서가 테디와 같은 K-POP 프로듀서다.

케이팝 데몬헌터스_사자보이즈 (출처: 넷플릭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렇게 커다란 성공을 가져온 한국 콘텐츠가 한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제작사는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바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만든 그 제작사다. 그러다보니 작품 여기저기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출처: 소니 픽쳐스)

세계적인 제작사에서 우리나라를 소재로 콘텐츠를 제작한 적이 있던가 싶은 것은 물론 이렇게 큰 성공을 한적이 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이 작품은 큰 관심을 받았다.(인기답게 골든의 커버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에틱 유니버스의 첫 기획은 케데헌의 소재인 K-POP이 어떻게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로 성장하게 되었을까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1에서는 K-POP의 태동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K-POP 위대한 발걸음의 시작
SM 엔터테인먼트

1996년 우리나라 기획형 아이돌의 시초인 H.O.T.가 등장하였고 발표하는 앨범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구가하였다.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었던 이수만은 한국시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유학 당시 미국 음악 산업의 구조와 방송 시스템, 뮤직비디오 프로모션 등을 접한바 있었다. 또한 80년대에도 전성기를 구가하던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을 통해 단순하게 가수 활동 뿐 아니라 방송, 광고, 드라마, 예능 등의 다방면의 진출전략을 참고한 것으로 보여진다.

국내 기획형 아이돌의 시작_H.O.T.
클론의 대만 진출 성공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2인조 댄스듀오 클론의 대만진출 성공은 이수만에게 큰 확신을 준다. 해외시장 진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업가 마인드가 출중했던 이수만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방에 헐리웃 스타 브로마이드를 걸어놓듯 중국의 청소년들이 한국 가수의 브로마이드를 걸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전략으로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기 시작한다.

첫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14억에 육박하는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시장의 규모는 당연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구매력이 높지 않은 편이었고 우리와는 다른 중국의 특수한 정치체제는 진출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여기에 당시 남성그룹의 해외출국은 병역문제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로인해 H.O.T.의 중국진출은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병역문제가 없는 여성그룹으로,
그리고 중국이 아닌 일본으로!_S.E.S.


앞서 설명한대로 남성그룹은 당시 병역문제로 인한 출입국에 제한이 있어 해외활동이 쉽지 않았고 이에 자유로운 여성그룹을 해외활동 그룹으로 기획하게 된다. S.E.S.는 결성부터 해외진출을 염두해두고 기획되었다. 이에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한 슈와 유진을 멤버로 영입하고 메인보컬 바다와 함께 해외시장에 첫 발문을 내딛게 된다. 앞서 중국시장의 음악산업이 당시에는 수익을 얻는데 어려움이 겪은 시행착오를 발판삼아 세계 2위 음악시장인 일본을 목적지로 선정하게 된다.

케데헌에서 선대 헌터로 그려진 S.E.S.

[I’m your girl]로 큰 인기를 얻은 후 S.E.S.는 일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S.E.S.의 일본활동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회사를 영세한 규모의 회사였다. 그렇다보니 적극적인 프로모션이 사실상 불가하였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3년 간의 활동을 끝으로 S.E.S.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를 교훈 삼아 이후 보아가 탄생하게 되었으니 S.E.S.의 일본진출은 실패가 아닌 성공의 발판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아시아의 별 보아
한국 아티스트의 일본 첫 성공

실패를 교훈 삼아 보아의 일본 매니지먼트는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등이 소속되어 있던 에이벡스(AVEX)가 담당하게 되었다. 에이벡스는 일본의 손꼽히는 대형 기획사다보니 보아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쏟아부었고 차근차근 반응을 쌓아나가던 보아는 2002년 1월 발매한 싱글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차트 2위를 기록하는 등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게 된다. 이후 발매한 정규 앨범으로 한국인 출신 첫 오리콘 1위까지 기록하게 되는 등 승승장구를 이어간다. 이후 일본의 인기와 더불어 한국에서도 No.1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보아는 한일양국에서 큰 인기를 얻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후 일본에서는 내놓는 앨범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할 정도로 최정상급 가수로 발돋음 하게 된다. 보아의 일본앨범 누적 판매량은 1,000만 장이 넘는다.

일본 오리콘차트 1위를 달성한 보아의 LISTEN TO MY HEART
아직 한류는 아니다?!

큰 성공을 거둔 보아 그리고 이후 또 한번의 성공을 기록한 동방신기는 당시 한국에서 한류의 대표주자로 손꼽혔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은 모두 철저한 현지화가 바탕이 되었다. 보아는 데뷔 전 일본 아나운서의 집에서 체류하며 일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습득하여 일본인 같은 한국가수가 되었다. 또한 보아가 인기를 얻은 음악들 역시 일본 뮤지션들의 손에서 탄생한 J-POP이었다. K-POP이 일본에서 큰 열풍을 일으켰다기 보다는 한국인이 일본 시스템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 사실은 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또한 오히려 S.E.S.의 [꿈을 모아서]부터 보아의 [Valenti] 등 일본 뮤지션의 곡이 우리나라에 큰 히트를 기록하는 등 한류가 아닌 역류라는 폄하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보아의 일본진출 성공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일본시장을 사실상 기본값으로 설정할 정도로 K-POP의 시장확대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후 현지화 없이 한국의 콘텐츠가 있는 그대로 전해지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SM 엔터테인먼트의 도전과 성공은 큰 발판이자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는 일본에서 K-POP으로 성공을 거둔 카라부터 세계에 K-POP을 알린 싸이 그리고 YG엔터테인먼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