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효 Mar 02. 2021

한 편의 앙상블

인테리어 디자이너 자끄 에르부에 집

파리 몽마르트로 향하는 언덕길인 마흐트 길(rue des martyrs)과 상 조르주 광장 (Place Saint-Georges)을 끼고 있는 ‘신 아테나(Nouvelle Athène)’ 지구는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예술가 쇼팽, 들라크르와, 제리코, 상드와 같은 예술가가 머물던 곳으로 유명하다. 압상트 한 잔을 시켜 놓고 오지 않는 이를 속절없이 기다리던 여인이 등장하는 드가의 그림 속 카페 이름(Café Nouvelle Athène)이 여기서 기인한 건 그저 우연은 아니리라.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이너 자끄 에르부에(Jacques Hervouet)의 공간은 바로 여기, 과거 자유로운 젊은 아티스트들의 성지이자 몽마르트 언덕 중턱에 위치해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 파리 9구에 자리 잡고 있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클래식 애호가이자 피아노와 공간을 사랑하는 그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완성한 보금자리는 여러 화성과 음률로 완성되는 한 편의 앙상블과 다름없다.


포르티시모, 잘 조율한 피아노처럼  

에르부에 부부는 1990년대 후반 즈음, 120m2의 오스마니안 스타일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부르주아 보헴(Bourgeois Boheme)을 뜻하는 젊고 자유분방한 프렌치 스타일이 몽마르트로 몰려들기 한참 전이니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의 대표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공간을 하나의 갤러리처럼 꾸미는 데 집중했다. 거실에는 장 로피에르, 피에르 폴랑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디자이너의 가구는 물론 자신만의 안목으로 선별한 빈티지 가구를 들여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용한 듯 기품 있게 때로는 리드미컬한 울림으로 자신의 집을 완성한 그는 디자이너라기보다 음악가처럼 인테리어를 다루고 있는데 그에게 인테리어란 각각의 음표와 빠르고 느림의 박자 그리고 화성으로 빚어내는 피아노 연주와 비견되는 일이라고. 사실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그는 놀랍게도 단 한 번도 디자인을 공부해본 적이 없다. 

“5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지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전문 통역사가 되려고 그만두었지만 아마도 그 오랜 역사가 삶에 깊이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요. 평생 유리벽에 갇혀 남의 말을 번역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던 차, 포토그래퍼 장 폴 구드나 찰스 사치와 같은 이들을 만나며 홍보 전략 일을 오랫동안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친누나와 함께 시작한 앤티크 갤러리가 오늘까지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 

음악에서 언어로, 다시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애호로. 어쩌면 예상을 뒤엎는 비상한 감각과 색감으로 가득 찬 인테리어는 그의 독특한 이력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족히 2m가 넘는 복도는 푸른색으로 마감해 바닷속처럼 몽환적인 느낌을 배가했다. 복도를 중심으로 오전 내내 햇살이 드는 한쪽 공간은 거실과 주방으로, 중정으로 향하는 반대편은 부부의 침실로 만들었다. 

“보통 이러한 아파트의 구조적 특징은 복도를 중심으로 공간을 거실과 마스터 배드룸으로 나누는  것인데 저는 베드룸을 주방으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어요.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재정비한 거죠. “ 

주방에 들어서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푸른색 금속 조형물은 그가 특별히 고안해 낸 디자인. 건물 외부 차양으로 쓰이던 것을 실내에 설치해 공간을 분절하면서도 열린 공간으로 실현하여 신선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그는 자칫 차갑고 위압적일 수도 있는 조형물에 손수 자단목과 황동으로 디자인 한 벽장식을 더해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묵직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공간을 나누되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싶었던 고민이 읽히는 곳은 비단 주방뿐 아니다. 일례로 서재였던 곳을 침실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은 천장과 벽이 연결되는 이음 돌출 장식 때문에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보시는 것처럼 민트색 상자를 그대로 방으로 들여 ‘상자 안의 상자’로 구성했어요. 붙박이 장의 장식을 천장까지 끌어올려 층고를 높아 보이게 만들면서 천장 구조를 일부러 노출했지요. 때로는 이처럼 ‘빈 공간’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부부의 침실은 일부러 힘을 빼고 민트 톤 페인트로 차분하게 마감했다. 여기에 톰슨(Thompson)의 유화와 페닝헨(Penninghen)의 조각을 과하지 않게 들여 지루하지 않게 표현했다. 

“어떤 공간에서는 브람스나 멘델스존이 떠오르지 않으세요? 저는 ‘색’과 ‘음’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음이나 반음은 어두운 색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초록색과 같이 싱그러운 컬러를 보면 생동감을 주는 음계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

음악에 조예가 깊은 그는 베토벤, 브람스, 쇼팽과 같은 낭만주의 클래식을 연주해오다 최근 즉흥곡 연주를 위해 다시 재즈를 배우기 시작했다. 악보대로 따라가는 연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곡을 창작하고 싶다는 그의 고백은 어쩐지 단순히 인테리어 영역에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로서 자신만의 길을 다양하게 개척하고 있는 행보와도 닮아 있다. 프랑스 시인 랭보는 각 음에 맞는 색감, 그리고 그에 맞는 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 간에 일어나는 공감각적 현상을 삶 속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다고도 덧붙인 바 있다. 자크 에르부에가 다양한 색과 오브제로 풀어낸 공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선과 면 그리고 색의 리드미컬한 조화로 빚어낸 자신의 아파트야말로 그가 그토록 염원하는 첫 번째 재즈 즉흥곡이라 불러도 손색없지 않을까. 



까사 리빙 2019년 5월 호, 글 한효정 



작가의 이전글 직업이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