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유난히 옅은 날이 있다. 하늘색에 물을 풀어놓은 것 같은 색깔에 구름마저 옅게 떠 있어 마음까지 가볍고 연해지는 날. 그런 날은 맑은 하늘에 산들바람이 부는 어느 화가의 풍경화 같다. 나는 그 속의 느긋한 산책가가 된다. 돌담 아래에는 어느새 하늘을 꼭 닮은 작은 꽃이 폈다. 밋밋한 겨울을 지내고나면 작은 꽃 한송이에도 봄기운이 새록새록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늘이라고는 나뭇가지가 전부인 아래서 좋은 순간을 좋다고 느끼며 앉았는 시간. 멀리 서는 내가 또렷하고 가까이서 보면 주변으로 녹아버리는 풍경처럼 아무런 방해도 없다.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에 잔뜩 여유가 차면 나는 입으로 좋다는 단어를 소리 내어 본다. 가만히 앉아 있는 몸 위로 햇살이 드리우면 몸도 마음도 말랑해지는 기분이다. 높이 하얀 달이 떴고 강물 위로 눈부신 윤슬이 반짝인다. 아무것도 아무도 부럽지 않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