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 오르면 길 왼편에 나무들이 많은 완만한 숲이 있습니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아담하고 깊이가 없어서 말 그대로 작은 숲이라고 부르면 어울릴 것 같은 공간입니다.
크고 작은 소나무들 사이로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있는데 아직 이파리가 돋지 않아 휑합니다. 나무들은 여름에 가까워질수록 울창해지겠지만 바닥으로 풀이 많이 자라나기 때문에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날 것 같지는 않아요. 뱀이 나올 것 같거든요.
햇살이 드리워져서 나무 그림자가 생긴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그곳에 서있고 싶어 집니다. 같은 해인데도 더 따사롭고 평온해 보여서 그 속에 끼어들고 싶은 기분이랄까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머물고 싶은 곳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로 해가 드는 곳들인데요. 햇살 아래 있으면 뭐든 다 녹아드는 기분이 듭니다. 걱정, 불안 같은 감정이나 찬 마음과 무거운 머리도. 모든 것들을 다 말랑말랑하게 해 줄 것만 같습니다.
지난여름에는 강 건너에 있는 너른 들판을 가보고 싶었답니다. 해가 잘 드는 곳에 커다란 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 돗자리 펴고 앉아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어요. 윤슬이 반짝이는 강은 보고만 있기 아까워 발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답니다. 머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곳들이네요. 배가 있다면 둘 다 해결이 될 텐데요.
걷다가 솔향기를 맡은 것 같아서 낮은 소나무에 코를 대봤지만 아무 향도 안 납니다. 착각인걸 알고도 몇 번을 그랬습니다. 어느 땐가 산책 중에 진하게 솔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데, 향긋하니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 주던 그 향이 잊히지가 않아서요. 간직할 수 없기에 자연에서 맡는 향들은 참 귀합니다.
바람이 솔솔 불어와 음악까지 들으면서 제대로 힐링을 했습니다. 요즘 들어 가사 없는 음악을 자주 찾아서 듣는데 특히 산책을 할 때 듣기에 좋네요.
걷고 있는 곳이 좋아 보여서 왔는데 더 앞을 보면 그곳이 더 좋아 보여서 안으로 계속 걷습니다. 풍경 안의 선 내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자꾸 욕심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면 걸어온 길들 역시 다르지 않네요. 중간쯤 돌아서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갑니다.
어느 장소의 그 시간과 날씨에 어울리는 기분으로 머문다는 게 너무 좋아서 귀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흔치 않은 기분인데 산책을 하면서 자주 그런 걸 느낍니다. 머물고 싶은 곳, 그곳에 선 내가 참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