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장들

by 샹송

두 도시 이야기(찰스 디킨스/더 클래식)

p133. 남쪽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아담한 광장이 많았고 그 위로 제철을 맞이한 복숭아가 영글어 가고 있었다. 하루 중 이른 시간에는 길 모퉁이에 여름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그러다가 낮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길 모퉁이에 그늘이 드리워졌는데 그다지 큰 그늘이 아니라서 그늘 너머로 반짝이는 햇빛을 볼 수 있었다. 그 길모퉁이는 시원한 곳, 고요하면서도 활기찬 곳,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곳, 시끄러운 거리를 피해 찾아드는 항구였다.


혼자 사는 즐거움(법정/샘터)

p 65. 이른 아침부터 오두막 둘레에는 꾀꼬리가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초여름 싱그러운 숲의 음악이다. 이런 음악은 종일 들어도 물리거나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처럼 싱그러운 자연의 소리를 듣고도 잠자리에서 뭉그적거리며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구제 불능의 게으름뱅이다.


빨간 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인디고)

p120. 날 듯한 앤의 발걸음은 다리를 건너 나무가 우거진 언덕으로 이어졌다. 전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쭉쭉 무성하게 자라 언제나 어둑어둑한 곳이었다. 6월이면 피는 아기자기한 종 모양의 꽃들이 숲 여기저기서 수줍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드러냈고, 지난해에 핀 꽃들의 영혼처럼 창백하고 아련한 별 모양 꽃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나무 사이에 걸린 거미줄이 은빛 실처럼 반짝거렸고, 전나무 가지와 잎들은 서로 다정히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살랑거렸다.




그해, 여름 손님(안드레 애치먼/잔)

p16. -여기서는 뭘 하고 지내지?

-아무것도 안 해요. 여름이 끝나길 기다리죠.

-그럼 겨울에는 뭘 하지?

대답을 떠올리며 미소 짓자 그가 눈치를 챘다. "말하지 마, 여름이 오길 기다리는 거지?"


p157. 나는 8월의 날씨가 좋았다. 늦여름이면 마을이 보통 때보다 더 고요했다. 다들 여름휴가를 떠났고 이따금 찾아오는 관광객도 저녁 7시가 되면 다 돌아가고 없었다. 나는 오후가 가장 좋았다. 로즈메리 향기, 열기, 새, 매미 소리, 흔들리는 야자수 이파리, 소름 끼치도록 화창한 하루에 가벼운 리넨 숄처럼 내려앉은 침묵. 해안까지 걸어갔다가 샤워하러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이 모든 것이 더욱 두드러졌다. 테니스장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보는 게 좋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텅 빈 발코니가 눈에 들어오면 누구든 저기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더스토리)

p.165. 나는 삶에 넓은 여백을 두고 싶다. 따라서 가끔은 여름 아침의 일상이 된 목욕을 하고, 햇살이 잘 드는 문간에 앉아 해 뜰 녘부터 정오까지 몽상에 빠져들었다.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 사이에서 방해하는 이 없는 고독과 정적 속에 앉아 있었다. 새들은 집 주변에서 노래하거나 집 안팎을 소리 없이 날아다녔다. 해가 서쪽 창가로 기울고 멀리 대로를 지나는 여행자의 마차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나는 시간이 한참 흘렀음을 깨달았다.


p284. 나는 여름날 오후에 호수 한가운데로 배를 저어 나가서 산들바람에 배를 맡기고 배 바닥에 길게 드러누워 몽상에 잠긴 채 몇 시간이고 떠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배가 모래밭에 닿으면 깨어나 내 운명이 어느 호반으로 날 이끌어 왔는지 보려고 몸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그런 여유로운 삶이 가장 매혹적이고 생산적인 일인 듯 느껴졌다. 따라서 하루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그런 식으로 보내고 싶어, 곧잘 오전 시간에 도망쳐 나오고 했다. 나는 부자였다. 돈은 없었지만, 햇살 좋은 시간과 여름날이 얼마든지 있었기에 원하는 대로 흥청망청 쓸 수 있었다. 작업장에서 일하거나 학생을 가르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여름의 문장들을 모아봤습니다.

아직 읽어 보지 못한 책들 속에도 무수한 여름이 있겠지요.

페이지에 새겨진 고요함과 싱그러움으로 이번 해 마지막 여름 햇살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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