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상을 뒤덮는 검은 그림자

오프닝

by Attitude

어떤 일이든 큰 일일수록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은 얼마든지 은밀할 수는 있지만 오래도록 그럴 수는 없다. 반드시 조짐이 보이게 되어 있지만 애석하게도 눈먼 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안락함에 스며들어 다가올 진동과 화염을 전혀 가늠하지 못한 탓에,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밝게 떠오른 태양이 오늘 마지막으로 보게 될 거라 문득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꼭대기에 군림한 권력자도 신은 아니니까 그도 어김없이 희생양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바로 그런 아침이, 그저 어제와 다름없이 떠오른 태양에 무던했던 그날은 평생 잊기 힘들 것이다.


백악관의 듀건 대통령에게 비상연락이 걸려왔다. 펜타곤의 카빌 장군이었다. 그 둘이 동향이라거나 학교 동창이거나 하지 않은 이상 서로 대면하거나 목소리를 섞을 일이 없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런 일이 닥쳤음에도 듀건은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 장군도 환갑이 넘더니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하며 비서실장과 우습다고 생각하는 이 상황을 서로 공감한 뒤 그대로 미소를 품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물론 카빌이 그전에도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면 듀건의 이러한 반응이 납득이 가겠지만, 누가 알 수 있으랴.

마냥 정겨운 기분의 대통령을 알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던 카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격앙된 감정을 특유의 묵직함으로 애써 누르는 목소리로 불편한 소식을 전했다.

“대통령 각하,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노라드의 보고에 따르면 해양 사방에서 소비에트 전투기들이 몰려오고 있고, 멕시코 쪽에서 지상군들이 밀고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몰래 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카빌과 듀건은 일절 농담 한 마디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더욱이 펜타곤에서 장군이 대통령에게 전하는 이 한마디는 순식간에 급박한 상황을 파악시키기 충분했다.

“장군, 일단 노라드에 다시 확인해보시오. 도무지 말이 되지 않소 이 상황은... 나는 크렘린에 연락해보겠소.”

“예, 각하”


20세기 대륙을 붉게 덮었던 소련 제국의 꿈을 다시 재건코자 모스크바 심장부의 유적지 크렘린에 한 서기장이 다시 집무실을 차렸다. 정기적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이 서기장 이름은 알렉스 로마노프. 그는 외모부터 욕심과 야망이 가득했지만 지속적으로 서방 국가들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끝에 세계에서 주연의 자리를 잃어가던 러시아의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면을 쓴 채로 10년간 그는 그 자리에 있었고, 서방의 지도자들은 바뀌었다. 그는 어두운 속은 그대로였지만 서방 지도자들은 점점 눈이 멀고 있었다. 붉은 물결이 미국 본토에 밀려드는 지금 비상이 걸린 건 미국뿐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만 연락을 취해왔다. 몇 번이고 걸려왔던 전화소리였지만 지금은 어느 때와도 다르다는 걸 로마노프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의문의 인물을 곁에 두고 있었다.

“로마노프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알렉스.”

“그게 무슨 얘깁니까?”

하며 하마터면 드러날 뻔한 오만의 웃음을 순간 머금고 말을 이어갔다.

“대통령 각하?”

“알렉스 난..”

그 순간 급히 비서실장이 들어와 노라드의 보고문서를 전했다. 카빌 장군이 전한 말이 가시적으로 레이더망에 펼쳐진 위성사진이 담겨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드러났다. 듀건은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이미 이성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 당신네들 병력이 본토에 접근하는 것을 확인한 참이오. 우린 동맹국이란 말이야 이 정신병자야! 난 당신을 그 자리에 앉혀준 사람이고.”

훗날을 기약하며 탐탁지 않은 일도 애써 참아내는 사람이 결국 뭔가를 해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 일에 모두가 초연하지는 못한다. 로마노프가 그러했다. 듀건이 작정했다기보다 흥분에 못 이겨 뱉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그 한마디는 로마노프를 자극했다.

“조용히 하고 똑똑히 들으시오 우리는 당신네들의 장난감이 아니오 우리 소비에트는 고유한 역사가 있고 독립적인 나라요!”

“그런 것은 내 알바 아니요. 지금 당장 그들을 불러들이시오!... 알렉스?”

이미 속내가 드러난 마당에 더 감출 것이 없었다. 오히려 로마노프는 정곡이 찔린 것에 대한 흥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앞으로 벌어질, 자신이 오랜 세월을 꿈꿔온 현실을 맞이할 기쁨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듀건에게는 마치 악마의 끔찍한 울음소리와 같아 전화를 끊어야 했다.


노라드의 보고가 사실임을 재확인한 즉시 듀건은 반격을 지시했다. 카빌은 방위미사일 기지에 먼저 연락했다.

“카빌 장군이다. 소비에트 침공이 확인됐다. 발사명령 0.1.0 아담 델타 찰리를 실행하라.”

발사실 내부의 반응은 전광석화 같았다. 본토 침공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마치 토네이도 대피훈련과 같이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모두가 빠르게 움직였다. 장전이 완료되고 요격체가 올라오는 순간 발사실에 직통전화가 걸려왔다.

“발사실입니다”

“@@##**”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미묘한 파장의 소리는 교묘하게 뇌파를 자극하여 듣는 사람의 의식과 연결된 모든 신경망을 파괴했다. 이윽고 수억 개의 신경다발들이 빠르게 재건되었다. 소리를 들려주는 자의 의지대로.

“발사 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어서 사일로 문을 여십시오.”

대령은 열쇠를 꺼내는 대신 총을 꺼내 들었다.

“대령님 도대체.. 서둘러 사일로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폭발해 버려요!”

대령이 제정신이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사라졌기에 발사실의 시간도 사라져 버렸다.

“사일로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건 자살행위나 마찬....”

쾅! 콰쾅! 콰가쾅!

가히 5만 적군의 침공에도 치명적인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위용의 탄도 미사일 기지가 쑥대밭으로 된 것은 고작 한 통의 전화였다.

발신지는 크렘린이었다. 미국 본토 방어 작전 첫 단계를 간파한 것도 놀라웠지만,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던 로마노프 마저도 등골을 서늘게 만든 이상한 능력의 소유자에게 로마노프가 침착함을 되찾고 물었다.

“끝났나 유리?”

로마노프 곁에, 누구도 정체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의 인물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서기장 동무... 시작일 뿐입니다.”


미궁의 발사실로 인해 이후 방어 프로토콜이 작동되지 못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키로프의 그림자 속으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수많은 키로프 함선에 의해 태양이 수시로 가려졌다. 바다로 수많은 전차들이 실려 들어왔고, 후방에서 미사일들이 쏟아졌다. 바닷속에서 잠수함과 비정상적인 바다 생명체가 날뛰었다. ‘텍사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을 무감각하게 짓누르며 밀고 들어오는 전차와 기계들. 이 모든 장면들은 단 한 가지의 명백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침공이 시작됐다.





중학교 시절 즐겨하던 웨스트우드(현 EA)의 레드얼럿 2 게임의 캠페인 스토리를 바탕으로 써본 소설입니다. 이제 캠페인 순서대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연합군 편이 먼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