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될까? 다를 수 있을까?

더 이상 자유롭지 않은 미국을 보며

by 서촌누렁이

가끔 내 삶과 동떨어지거나 관심 없는 분야에서 다름이 명확한 용어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다. -아랍, 이슬람, 중동처럼- 고등학교 작문 수업, 찰나로 지나간 명확한 용어 사용에 대한 가르침이 강렬했는데 그 예시가 '다름'과 '틀림'이었다.


취향에 대한 논쟁이 불가한 건, 그냥 다르기 때문이라 누군가에게 피해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해 욕할 것도 욕먹을 것도 없다 했다. 자명하다. 다른 취향이 틀린 것이 아니기에.

-이때부터 순댓국 순대 껍질을 벗겨먹는 친구를 욕할 필요가 없어졌다-


단순한 용어 정리였을 뿐이지만 사고를 바꾸는 가르침이었다. 이때 정리된 개념 덕에 머릿속이 훨씬 편안하고 자유로워졌다. 지금도 대부분의 결정과 판단에 관여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살며 여러 순간 조금씩 다른 선택을 했다. 주변의 대부분은 무난한 반응이었으나 간혹 누군간 비웃음이나 불길한 전망 등을 전해주기도 했다.

(스물여덟 회사를 만들 때 가장 크게 느꼈다)


어찌어찌 자유로이

하고 싶은 대로 살다 보면 가끔 내 선택이 시대와 맞아떨어질 때도 있었다. 아마 욜로가 유행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땐 선구자라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 틀린 시계가 하루 두 번 맞는 느낌이랄까, 시기가 조금 지나니 다시 우스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튼, 나는 기존과 다른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달라도 된다고 허락하거나 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참 귀하다- 반대로 다른 말이나 다른 사람을 못 참아내는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견디기 어렵다.


한국에선 다르기 어렵다. 코리아 넘버원 박지성 손흥민 제이팍을 외치는 국뽕주의자인 내가 봐도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선 할 말이 별로 없다. 기존이나 나와 조금 다른 얘길 하면 걱정하거나, 구슬리거나, 혼낸다. -제발 누가 뭐 한다고 하면 걱정하지 마라 알아서들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일테니-


대상이 공인이거나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경우, 익명이 보장된 웹상에선 그 정도가 훨씬 심해진다. 누군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싶다. 다른 말을 못 하게 하니 어떤 주제는 언급되기도 힘들다. 그 주제는 결국 언급조차 어려워 성역화되거나 금기시된다.


미국은 자유롭다 봤다. 성역이나 금기 없이 자유롭게 주제를 드나드는 스탠딩 코미디나 길거리 토론 같은 자유로운 마이크 문화를 가진 미국이 부럽기도 했다. 소수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쉬웠다. 미국은 분명 달라도 괜찮았다.


미국도 자유가 무사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자유보단 도덕이나 정치적 올바름이 우선이다. 분명 소수의 의견이 편안하게 언급되던 때와 다르다. 다양성을 감싸던 PC주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우월한 가치가 되었고 성역화되었다. 내부자가 아닌 사람은 문제가 아무리 심해도 비판은 물론이거니와 언급조차 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남성이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하거나, 백인이 흑인 범죄를 언급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벌써 끔찍하다-


시상식중 코미디에 뺨을 올려친 그 배우, 대통령 후보 연설 총알, 유타 대학교 찰리커크까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누군가가 밉고, 이를 해한다.


다르기 어렵다.

자꾸 위축된다.


어쩌면 그들의 상징같던,

내겐 면죄부 같던,

이젠 끝난것 같은

그 말로 마무리한다.


'Think Different'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