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에서 현재의 욕망으로
요청.
이 글을 읽기 전에 여러분들께서는 인내심이라는 호의를 조금은 베풀어 주시길 바란다. 그 이유는 이 글들이 흥미나 유익함과는 거리가 멀거나 높은 차원의 난해함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반대인 것도 물론 아니다. 단지 조금 천천히 느리게 읽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곳에서 있든지 나는 걷거나 쉬는 상태일 것이다. 조금 더 빠르거나 느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걸을 것이며 여러분도 어디에 있든,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있더라도 걷는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나아가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베풀어주신 그 호의를 맹세코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리며.
오래전, 나는 문득 내가 걷고 있는 지면을 계속 살피며 도로와 골목길을 지나 집에 도착하기까지 내가 흙을 한 번도 밟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놀랐고 그래서 한동안 내 발밑에 신경을 집중하며 지냈다. 고정된 생활의 범위에서 구획화된 모든 동선의 길을 살폈고, 가끔 서울을 떠나야 할 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밑을 보며 걷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 덕분에 돈을 주운 적도 있다. 만약 내가 거북목 진단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때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흙이 드러난 곳을 발로 밟을 수는 없었다. 모든 곳은 아스팔트와 시멘트와 다양한 모양의 블록들로 덮여있었다. 뜨거운 장소들은 더욱 화려한 바닥을 바탕으로 고가의 신발 브랜드와 멋지게 매칭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흙을 밟았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해 보았다. 그 노력은 수 십 년의 시간을 오이 순 솎아내듯 가볍게 잘라 버리고 여섯 살 때로 감각을 되돌렸다. 거기에는 발바닥의 지문까지도 선명하게 남기는 논두렁의 진흙과 낮에도 혼자 다니기 무서웠던 야산의 길이 있었다. 길은 오후의 햇빛이 나무들의 줄기와 잎들을 화살처럼 스치고 수없이 박혀있었다. 나는 그 길을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 다녔었다. 그러나 가끔 혼자 다닐 때도 있었는데, 읍내의 오일장에 아무도 데려가 주지 않는 경우 아무도 모르게 산길을 걸었었다.
같은 길이지만 기억은 혼자였을 때의 길만을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
가끔은 멈춰 서서 불안한 미래를 응시하듯 구불한 그 길의 먼 곳을 보며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혼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조심스럽게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발을 옮길 때마다 마른 솔잎과 밤나무잎, 가늘고 마른 나뭇가지와 모래와 흙들이 골고루 섞이며 소리를 낸다. 아직은 삶의 무게가 가벼운 발은 고소한 소리와 감각들을 온몸에 전달했다. 머리끝을 뚫고 숲의 침묵에 의해 끝없이 증폭된 소리는 온 산을 울리는 것 같았다. 침묵은 모든 소리를 가두어 놓을 만큼 크다. 그래서 침묵을 깨는 소리가 거슬리는지도 모른다.
어린 나에게 침묵은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한 소리는 나를 뒤쫓는 것 같았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빨라진 소리는 그만큼 나를 더 빠르게 쫓아왔다. 한 번은 그 묘한 정적과 내 발소리에 놀라 숲을 벗어날 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치기도 했다. 그 길이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내가 자신을 그 숲길에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그 산길을 혼자서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면 나는, 나를 두고 도망쳐 버리곤 한다. 나중의 비난은 생각지 못한 채...
이제는 검붉은 흙 위의 솔방울, 썩은 밤송이와 도토리 껍질, 마른 개미집과 바람에 휩쓸리며 향기를 떨구던 잎새들은 물론, 숲과 길을 구성한 모든것과 침묵의 두려움까지 달콤해진 기억이 그리움으로 살아났다. 순박한 그리움은 불가능한 욕망이라서 막연한 동경을 앞잡이로 세웠고, 막연함은 목적이나 의미와 결탁하지 않기에 그런 종류의 의무들을 밀어내며 나를 천천히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내가 동경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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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여러분들, 말하자면 내가 작가라고 자연스럽게 불려진다면 독자에 해당되는 분들. 여러분들께서는 나에게 흙을 밟고 싶다면 주변의 화단이나 산책로 옆의 노출된 땅을 밟아보라고 조언을 하거나, 재치 있는 분들께서는 화분용 흙이라도 보내 줄 테니 족욕기 크기의 그릇에 흙을 넣고 발을 담그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바램과 다르므로 그 성의만 고맙게 받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내가 살면서 얼마나 걸을까. 집을 나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 앞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나 승강기를 이용해 지하철을 타고 다시 역에서 내리고 마을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앞에 도착한다. 이러한 생활 안에서는 걸을 수 없다. 중간에 이동을 위해 불가피하게 몇 걸음 걷는 것은 걷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때는 내가 걷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걷고 싶었다. 죽기 전에 원 없이 걷고 싶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걷는 것을 위해 걷고 싶었다. 그래서 흙을 절친으로 둔 호화로운 욕망의 문을 열기로 했다. 그 욕망은 두 다리를 교차하며 천천히 공간이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흙을 밟고 걷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했다. 계획이랄 것도 없는 것이 처가댁이 제주도라서 가족과 함께 며칠 머물다가 배를 타고 부산항에 내려 서울까지 걸어 올라오면 되는 것이었다. 간단하다. 준비는 나름 해야 한다. 온라인을 통해 오만 원에 텐트를 구매했다. 텐트에는 멋진 상표가 인쇄되어 있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백인들에게는 개척의 시대라는 너무도 주관적인 단어로 덧칠한 그 침략과 학살의 시대에 멸종을 해버린 들소의 뿔이 상표로 인쇄되어 있다. 오래된 얇은 침낭, 수건, 양말과 속옷, 버너, 코펠, 가스, 비누, 치약, 칫솔 등 생존과 함께 인간으로 보이도록 해줄 필요한 기타 등등을 갖추었다.
무겁다.
지금까지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걸음을 욕망한 어떤 어렴풋한 이유나 동기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그 이유가 나에게는 고상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나의 걷는 모습에 어떤 고상함이나 철학저 사유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감추거나 억눌려 있던 또는 드러날 기회가 없어서 볼 수 없었던 개인의 행동과 생각들을 보고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난 자신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욕구 충족의 하나로 실컷 걷고 싶었다. 단지 그것에 꽂혔을 뿐이다.
나는 "두 다리를 번갈아 내딛으며 몸을 옮겨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