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겠습니다

펼치는 글

by 다락방나무

어릴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언니 오빠와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출근한 엄마 아버지와 학교 간 오빠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집에 남겨졌다. 그때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하면 나는 집을 지키며 돌아올 가족을 기다렸다기보다 모두들 제각기 집을 나가면 조용해진 집 안을 이리저리 바쁘게 거닐며 놀았던 거 같다.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고 이런저런 인형들이 내가 놀아주길 기다렸으며 무엇보다 안방 책꽂이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확인한 바는 없지만 취학 전에 한글 공부를 특별히 한 기억이 없으니 나는 혼자 한글을 떼고 스스로 책을 읽은 아이였나 보다. 천재가 아닌 이상 아이 혼자 그럴 수도 있나 문득 의심은 가지만 나는 그냥 이 부분을 스리슬쩍 넘어가고 싶다. 책을 읽고 싶은 열망에 어느 날 머리가 열려 문자를 통째로 하루아침에 받아들인 아이. 이 얼마나 놀랍고도 뿌듯한 일인가.


나와 함께 있던 강아지는 눈먼 강아지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넘어지는 강아지를 안은 채 인형들을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던 풍경이 떠오른다. 이럴 때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놀자고 부를 때면 항상 내 대답은 “싫~어”였다. 그러면 우리 집 마당으로 돌을 던지는 아이도 있었고 대문을 발로 차고 도망치는 애들도 있었던 듯하다. 어쨌든 나는 어릴 때부터 자주 혼자였고 책을 좋아했다는 얘기인데,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다.


책을 읽고 나면 진짜 현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상상의 현실 세계가 재빨리 펼쳐진다는 것이다. 어느덧 나는 내 집을, 내 품의 강아지를, 인형들을, 우리 동네를, 그날의 날씨를, 계절을, 순식간에 이야기 속 모습으로 바꿔 놓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그거야말로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겪는 폐해라고 농담처럼 진담을 한다. 그건 아주 설득력 있는 말이어서 사실 나도 몇몇 부모들에게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아이들의 심각한 증상을 걱정하며 그와 똑같은 조언을 해주기도 했으니. 아무래도 괜찮다. 왜냐면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책 얘기가 아닌 그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생각을 안 했다는 거다. 그 흔한 낙서조차. 책에 그려진 삽화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상상의 디테일을 더해나가면서도 그것을 따라 그려 보거나 나름의 그림들로 흔적을 남겨볼 생각을 전혀 안 했다는 게 이상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 어떻다고. 나도 그랬어. 여러 대답들이 내게 돌아온다. 나 역시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림에 대한 무관심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며 조금씩 신기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두 딸들을 키우다 보니 이 아이들은 뭐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일상의 모습은 물론 자기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할 때도 그림을 그리며 설명할 때가 많았다. 꼭 형체가 뚜렷한 그림이 아닐지라도 암호 같은 낙서를 휘갈기거나 시도 때도 없이 가로세로 의미 없는 줄을 좍좍 그려대기도 했다. 잠잘 때 들려주었던 책 이야기가 아침이면 새로운 그림으로 재탄생되었다. 도무지 스케치북을 당해낼 수 없어 문구 도매상에서 누런 종이 뭉치를 쌓아 놓고 마음대로 꺼내 쓰게 했다.


장맛비 쏟아지는 한여름, 며칠째 바깥 구경을 못 한 큰 딸아이는 커다란 종이에 녹색의 나무들을 그려 넣었다. 양쪽에 늘어선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난 길은 숲 저쪽 끝까지 길게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그림을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자전거 페달을 밟는 시늉을 했다. 하다 보니 신이 났는지 춤을 추듯 몸을 흔들며 콧노래를 불렀다. 놀이동산에 갔다가 손에 쥐고 있던 커다란 풍선 줄이 끊어져 하늘로 날아가 버리자 슬피 울던 딸아이는 집에 돌아와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뒤, 아이가 내게 그림을 내민다. 구름 위에 수염이 풍성한 할아버지가 앉아있다. 할아버지 품 안에 커다란 풍선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겨있다. 그 앞에 서있는 여자 아이도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모으고 할아버지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 아마도 풍선이 꼭 내게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리라. 그날 밤, 아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깊은 잠을 자는 듯했다.


길쭉한 네모를 똑바로 그린 뒤, 잠시 들여다보던 아이가 그 뒤에 입체적인 선을 그려 넣는다. 단순한 네모에서 상자 모양으로 변한 그림을 보고 왜 이런 모양이 되었는지 묻는 내게 아이는 말한다.


“그냥 네모만 서있으면 쓰러지니까. 넘어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이쯤 해서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뭔가 알아채야했다. 아니, 좀 더 일찍 눈치를 채야 했다. 천진한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그저 사랑스럽고 신기하다는 생각에 그쳤을 뿐.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빛을 보지 못했다.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그림자조차 감지하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그때 기회를 놓쳐버린 나는 아주 오랫동안 미술은 내 중심에서 어떤 ‘세계’가 아닌 아주 협소하고 편협한 변두리 영역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다, 어쩔 수 없이 미술관 같은 장소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벽면에 걸린 그림 앞에 서서 ‘뭘 어쩌라는 말인가’와 같은 입 밖으로 결코 꺼내지 못할 감상 아닌 감상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매번 이런 노력이 성공하지만은 않아서 성의 있는 감상자들을 경악케 하거나 때론 미술관을 사랑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내 또래 애호가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랬던 내게 어느 순간, 미술이란 영역이 크고 넓은 ‘세계’가 되어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되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무리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학 신입생 때 어쩔 수 없이 들었던 ‘교양미술사’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한 학기 강의가 끝나갈 무렵 시험 대신 제출한 고흐 전시 감상문에 그림 예술에 대한 무지와 그에 따른 민망과 짜증, 불만을 그대로 여과 없이 써버렸다. 미술관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편두통과 그림의 상관관계를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강사는 내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야말로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그때는 당연히 몰랐으나 지금은 그 높은 점수의 의미를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미술사에 대한 책을 서너 권 읽고 뭔가에 홀리듯 빠져든 강력한 동기는 물론 그림 자체에 대한 높은 식견과 미학적 감각과 관찰이 아님을 고백한다. 그곳은 아직 내겐 멀리 있는 곳이고 그 빛은 희미하다. 처음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내가 주목한 것은 ‘역사’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시대와 조응하며 끝내 기꺼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작품들의 파노라마. 어릴 때 책을 덮고 현실을 상상으로 갈아 치우고 나만의 세계를 펼쳐 보이듯 모두가 당시에는 동시대 미술이었던 그림의 세계를 지금 내 눈앞에 펼쳐 보이되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자유로이 오가며 여기저기 살펴보는 후대인들의 특권을 누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더 지나면서 나는 그런 감각이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한 구석이 있다는 걸 느꼈다.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연구자로 보낸 이들의 너무도 훌륭한 결과물들을 탐독하기에도 벅차다. 나는 그저 앞서간 수많은 미술작품과 창작자들, 혹은 지금 나와 함께 숨 쉬며 살아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예술 속에 녹아있는 ‘나’라는 개인이 겪은 고유한 시간의 색깔과 다채로운 감성의 흔적을 찾아내보고 싶다. 흔히 숨은 그림 찾기라고 하나?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앞부분에는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이 나열되어 있다. 그 첫 번째가 ‘기억’이다. 누가 아는가. 아주 익숙한 거리에 자리한 내 집에서 어느 날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전혀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이 오가는데 당황은커녕 오히려 오래전 떠난 옛 집에 돌아온 듯 다정하고 평온함으로 충만한 아침을 맞을지. 그건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일단 아침마다 아무 기대나 목적 없이 창문을 활짝 열고 볼 일이다.


열린 창문 밖에 이런 기이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잊지 않고 기록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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