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앙리 드 틀루주 로트렉의 ‘침대‘

by 다락방나무


두 사람이 누워 있다.

작고 마른 몸집이라 그런지, 아니면 워낙 큰 이불이라 그런지 머리만 내놓은 두 사람은 이불속에 푹 파묻혀 있다. 어떤 긴장감도 없이 힘을 뺀 채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헝클어진 머리, 가늘게 뜬 눈은 이제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잠깐 잠에서 깬 순간일 수도 있다.

마주 보며 누웠다가 먼저 잠이 들었던 한 사람이 눈을 떠보니 아직도 깨어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한 사람. 그 어떤 상황이든 한 이불속에 두 사람이, 두 여자가 서로의 얼굴을 한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침대>라는 그림이다.



그가 1800년대 파리 뒷골목이나 변두리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그린 그림 속에는 이렇게 동성 간의 사랑을 암시하거나 노골적인 애정 행위를 하는 다양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미술사 책에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며 서술된 작가의 개인사와 작품 세계에 대한 수많은 해설과 추측의 대부분을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에 더해 내게는 이 작품이 아주 특별히 다가온 까닭이 있다.

예전에 읽은 공선옥 단편소설의 한 대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글을 썼다고 밝힌 작가는 그 소설에서 참으로 신산한 삶의 고비를 넘고 있었다. 남편은 집을 나갔고 어린아이들은 셋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이들과 헤어져야 했다. 지방 어딘가 사회복지시설에 아이 셋을 맡긴 뒤 기차를 타고 서울 영등포 공장에 취직을 했다.

일은 고되고 월급은 적었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미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추우니 아무리 밥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 꾸역꾸역 배를 채우고 나면 다시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느껴져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구나 생각했을 때 불현듯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바로 아이들이었다. 무작정 밤 기차를 탔다. 입석은 아니어서 겨우 자리엔 앉았지만 옆 좌석의 덩치 큰 중년 남자는 다리를 벌린 채 꼼짝하지 않았다.

고개를 외로 꼰 채 남자와 닿지 않으려고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밤은 깊어가고 기차는 느리게 달렸다. 낮에 먹은 밥은 이미 소화된 지 오래였고 빈 위장이 쓰려왔다. 팔로 몸을 아무리 감싸 안아도 몸이 점점 떨려왔다. 뱃속인지 가슴속 밑바닥인지 냉기가 올라와 이제는 이빨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옆자리 남자는 뭔가를 계속 꺼내 먹으며 쩝쩝 소리를 냈고 여자를 힐끔거렸다.

삶은 달걀 껍데기를 벗겨 입에 넣으려던 남자가 잠시 멈칫하더니 여자에게 불쑥 내밀었다. 쭈뼛거리다가 겨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달걀을 받아 든 여자는 천천히 먹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씹을 새도 없이 넘어가는 바람에 목이 메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눈치를 챘는지 한심하다는 듯 남자가 이번에는 음료수를 한 병 쥐어 준다.

어쩔 수 없이 음료수를 받아 한 모금 넘기고 나서야 여자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삶은 달걀 하나와 음료수까지 얻어먹은 처지가 된 순간 남자는 노골적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몸을 붙여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소름이 끼쳤지만 위장의 쓰라림도 가라앉고 떨림도 서서히 멈추면서 노곤한 잠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어져 버린다. 어느덧 남자는 여자의 허벅지 옆으로 자신의 비대한 살덩이를 밀착시킨다.


그 대목 즈음을 읽던 나는 소설 속 남자에 대한 혐오스러움이 극에 달해 작가가 설정할 상황과 대사를 내 나름으로 앞서 떠올리며 마음을 졸였다. 그때. 공선옥의 작품 속의 대사가 따옴표 속에 선명히 나타났다. 그것은 ‘따뜻해...’였다. 달걀이 목에 걸려 눈물이 고였던 여자 대신 이번엔 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사였건만 나는 어쩐 일인지 울고 있었다. 미치지 않으려고, 죽지 않으려고 새끼를 품으러 밤기차에 몸을 실은 여자에게 온기를 주었다면 그 순간만큼 그게 누구든 그저 사람이다. 따뜻해,라는 말에 이토록 서러운 온기가 실린 대사를 본 적이 없다.


로트렉의 <침대>라는 그림 속 두 여자를 보면서 나는 곧바로 ‘온기’를 떠올렸다. 이 둘은 어쩌면 진짜 동성애자가 아닐 수도 있다.

또 다른 그림에서 보이는 여자들의 애무 장면도 단지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행위로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밤무대의 댄스나 성매매의 노동이 끝난 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한 줌의 온기였을 수도 있다. 아, 따뜻해,라고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진정한 온기. 그걸 나누기 위해 이들은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로트렉을 둘러싼 온갖 스캔들을 뒤로하고 나는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커피 포트’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본다. 다리가 유난히 짧은 장애를 갖고 있던 그의 외모를 빗대어 본다면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외모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가 있었음에도 보란 듯 자신의 신체 비율과 비슷한 ‘커피 포트’를 그렸다. 그리는 내내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도저히 알 수는 없다. 그보다 나는 그가 커피 포트를 마주하고 오래도록 말없이 바라보는 풍경이 떠오른다. 그의 눈길이, 이불속에서 서로를 한없이 바라보는 두 여자의 눈 맞춤과 많이 닮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고 자신들의 사적인 내밀한 순간을 그릴 수 있도록 허용한 여자들 역시 그를 ‘커피 포트’라고 불렀지만 그건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다만, 포트에 물을 끓여 차를 우려 마시면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품고 그의 그림 ‘침대 ’ 옆에 ‘온기’라는 제목도 나란히 적어 놓고 싶다.

이전 01화창문을 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