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홰 <꿈속의 집>
집을 찾는다
김홰 <꿈속의 집>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경기도 양주는 외할머니집이었다. 야트막한 뒷산 아래 배나무 과수원이 있고 과수원 들어가는 입구쯤에 지어진 한옥이었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 아버지는 집 앞쪽에 있던 밭을 갈아엎어 마당을 만들었다. 거기에 밭작물 대신 온갖 나무와 꽃을 심어 한두 해가 지나자 꽤 넓은 정원이 되었다. 기둥을 세워 덩굴을 올렸는데 처음에는 등나무였다가 나중에는 포도나무가 기둥을 타고 올라가 손만 뻗어 포도를 따먹기도 했다. 덩굴 그늘 밑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마루문을 열고 신발을 신지 않고도 그곳에 앉을 수 있었다. 맞은편 멀리 불암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날마다 산 뒤편으로 노을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별장 집’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나는 집 뒤편으로 가서 하얀 회벽에 ‘오경선 꺼‘라고 써놓았다. 어느 누구도 네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지우지 않았으니 말하자면 열두 살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집을 가진 셈이다.
그 집을 떠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비록 몸은 도시의 달동네 단칸방이나 섬진강변 시골집에서 고달픈 살림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엄연히 백 평정도나 되는 정원이 딸린 한옥집 집주인이었다. 연필심이 부러져라 꾹꾹 눌러쓴 글자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 집을 찾아갔던 날, 집 뒤에 가보니 여전히 벽에 ’ 오경선 꺼‘라는 글자가 남아있었다. 내 나이 삼십…몇 살 때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오경선의 집.
이혼한 뒤, 세 아이와 강아지, 고양이까지 여섯이 옥닥복닥거리던 집들은, 정확히 말하면 집이 아니라 방이었다. 거대한 회색빛 아파트 벽 틈새 사이에 껴있는 다세대 주택 한 켠의 방들. 1층이나 2층, 때로는 옥탑방을 전전했다. 이사를 해야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생겼고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소위 발품을 팔며 집을 찾았다. 부동산중개업자가 소개하는 셋집을 찾아가 남의 집을 들어가 보는 일이 그렇게 우울할 줄은 몰랐다. 살림살이와 옷가지, 빨래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진 모습은 곧 내가 살아가는 구질구질한 모습이기도 했다. 이미 짐이 빠져 텅 빈 집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으로 우리 집 필수 살림살이를 그 좁은 공간에 넣다 보면 여지없이 맥이 빠졌다. 도대체 그 살림살이들을 이곳에 다 집어넣을 수 있을까? 계약서에 사인하고 이사 날짜를 정하고 돌아오는 날은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독인 다음에야 세 아이와 우리 강아지, 우리 고양이가 있는 집 현관문을 힘차게 열 수 있었다.
큰 딸이 어느 날 말없이 그림 한 장을 내민다.
우리가 드디어 집을 갖게 되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단다. 그런데 그게 꿈이라고 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우리 집. 꿈에서 깨어 꿈속에서 보았던 집을 그렸단다. 나는 그림을 받아 들고 말을 잃었다. 척 보는데 내 집이었다. 우리 집이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집. 말 그대로 내가 꿈꾸던 집. 그 집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큰 딸은 내 반응이 뜻밖이라고 했다. 엄마가 살고 싶은 집이 이런 집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단다. 그래서 자신이 꿈속에서 본 집을 그리면서도 엄마가 얼마나 실망할까, 이왕이면 엄마가 좋아할 집을 꿈속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속이 상했다고 한다.
“아니야, 나는 이런 집을 좋아해…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바로 이런 집이야… ”
오래오래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과 동물들이 함께 모여 떠들 수 있는 집,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 있는 집, 하루의 시간과 날씨를 집 안으로 들여올 수 있는 집, 각자 숨을 수 있는 비밀의 공간을 갖고 있는 집, 창문이 큰 집, 울타리와 대문이 있는 집…그리하여 계절과 함께 익어가고 천천히 늙어가는 집.
이사 갈 집을 찾아 발품을 팔 때마다 마음속에서 마구 떠올랐다 사라지는 갈망은 두서없고 막연한 형체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 세상엔 내가 가질 수 있는 그런 집이 없다는 걸 내게 타이르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꿈속의 집> 그림 속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이 있었다. 일부러 막연하고 흐릿하게 지워놓았던 형체가 뚜렷해지자 그것은 나조차 몰랐던 뜻밖의 모습이었다. 나는 커다란 대문을 달고 싶어 했구나, 덩굴 식물들이 바깥으로 삐져나온 낮은 벽돌담을 쌓고, 마당은 그리 크지 않네, 삐쩍 마른 작은 나무 몇 그루와 흔한 꽃들이 아무 데나 모여 있으면 돼. 집 모양은 이게 뭐야, 나무 상자 같은 네모난 집에 평평한 지붕이었어? 2층 방이나 다락방도 없는? 크기가 요만하니 집 안의 구조 역시 특별할 것도 없겠네. 무엇보다 이런 집을 본 적도 없고 비슷한 집을 본 기억도 전혀 없는데 왜 이리 익숙하고 친근할까. 왜 나는 이런 게 다 좋을까.
커다란 대문은 초록색이고 열고 닫을 때마다 철커덕 소리가 날 게 분명한 철대문이다. 내가 이런 대문을 좋아했던 거야? 거실 창문 밖으로 난 작은 마루는 어떤가, 바로 이거지. 마루 귀퉁이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차양을 쳐 놓았구나. 설마 유리? 그… 올록볼록 굴곡 있는 두꺼운 유리? 딸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나도 놀라고 딸도 놀라고.
“엄마, 울어?”
갑자기 딸이 묻는다.
“응…”
어떻게 울지 않을 수가 있을까. 집 옆에 강이 있잖아. 우리 집, 강변 집이야. 나 이런 데서 살고 싶었나 봐. 강 건너에 멀리까지 숲이 보이잖아.
“비 많이 오면 이 집은 끝장이야.”
일부러 딸이 어깃장을 놓는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렇게 좁은 개천에 물이 넘친 들 얼마나 되겠니.
“엄마가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더 잘 그려줄까?”
“아니! 나는 이게 딱 좋아!”
이제 생각하니 그때 그 종이 뒤에다 연필로 ‘오경선 꺼’라고 써놓았어야 했다. 열두 살 때 ‘내 꺼‘였던 집을 잃어버리고 다시 내 집이 된 <꿈속의 집>.
세 아이들과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새로운 집을 찾아다니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더 용감하고 씩씩해졌다. 짐을 싸고 푸는 일도 재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좁은 공간에 많을 것들을 집어넣을 수 있는 신기한 각도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렇게 줄곧 일산에 살면서 아이들이 클 때까지 여덟 번 정도의 이사를 한 것 같다. 우리들이 일산에서 살아낸 집들은 대부분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집들이었다. 그 속에서 함께 일구어 낸 우리들의 작은 공동체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느덧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둘째 딸이 가장 먼저 독립해 나갔고 다음은 나였다. 그다음은 큰 딸과 막내아들 순서로 각자의 집을 찾아 흩어졌다.
막상, 아이들과 동물들을 이끌고 맘 편히 살 집을 찾아 헤매야 하는 시간이 끝나자 집에 대한 애착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내 집이 없어 서럽고 불행한 마음도 씻은 듯 사라졌다. 바라는 거, 꿈꾸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부질없는 헛된 꿈인지, 이기적인 욕심인지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변까지 나와 굵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려던 까치를 본 적이 있다. 날아오르려고 애썼지만 나뭇가지 무게 때문에 자꾸 내려앉았다. 그래도 여간해서 포기하지 않는 까치가 안쓰러워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지금 다시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는 느긋하게 중얼거릴 지도 모른다.
“이봐, 그거 무모한 욕심이야. 그냥 빨리 내려놓고 다른 나뭇가지를 찾아봐! 더 가볍고 가는 게 있을 거야!”
사실, 나는 집이라는 공간을 건축물로 욕망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저 내겐 우리 여섯 식구가 밥 먹고 잠자고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지대가 필요했던 거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집을 찾지 않는다. <꿈속의 집>을 보면서 온전히 내 집인 양 대문을 열고 꽃씨를 아무 데나 뿌리고 마루에 앉아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가끔씩 멀리 숲을 바라보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