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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books Jun 12. 2020

프랑스 대기업에서 일하는 건 어떨까?

지극히 개인적인 분석

나는 '프랑스 대기업''프랑스에 있는 한국 대기업'을 경험했다. 앞서 나의 경험이 일반화될 수는 없고 아주 주관적인 분석임을 일러두려고 한다.


프랑스 회사에서 느낀 점을 몇 자 끄적여 본다.


첫째,  시간에 대한 개념


프랑스 회사에서는 상사와의 합의 하에 자율적으로 탄력근무제가 가능했다. 아이가 있거나, 저녁시간을 꼭 빼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새벽 7시 반부터 출근해서 4시 반에 퇴근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반면 야근도 많다. 금융계에서 일하는 나를 비롯해 나의 친구들도 야근은 밥먹듯이 했다. 난 이미 8시를 넘어도 힘들어했지만, 처음부터 인수합병팀이나 법률팀에 들어간 친구들은 새벽 1시, 2시도 곧잘 넘기곤 했다.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은 저녁식사 수당 혹은 택시비 혹은 협의하에 추가 수당으로 돌려받는다. (회사마다 혜택이 상이)


토요일 출장이나 근무를 하게 되면 하루 포상휴가가 나오고

일요일에 근무를 하게 되면 이틀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일한 만큼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곳이라

대기업일수록 노동권에 대한 보장 범위도 크다.

물론 이 혜택을 악착같이 누리려는 프랑스 개개인의 목소리 또한 크다. (투쟁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둘째, 휴가는 목숨같이


프랑스의 법적 근로시간 주 35시간, 법정 공휴일은 5주다.

각 고용 형태에 따라 휴가기간이 달라지는데,

 

Emlpoyé non cadre : 일반 평사원

Employé cadre : 간부급(중간 관리자급)


간부급의 경우 하루 근무시간이 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 길어진 근무시간만큼을 휴가로 돌려주는 RTT(Réduction du temps de travail) 제도가 있다. 대체로 1년에 짧게는 7일에서 12일 정도의 추가 휴가가 주어진다.


프랑스 직장인은 1년에 공휴일까지 쉬고 나면 평균 218일 정도를 일하는 셈이다. 즉 12개월 중 10개월은 일하고 2개월은 노는 셈.


여름휴가는 겨울 휴가 끝의  아쉬움을 달래며 계획해두고, 겨울 휴가는 여름휴가 끝의 아쉬움을 달래며 계획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휴가에 목숨을 건다.


동료들과 휴가를 결정하는데 타이밍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2~3주의 연속 휴가를 거부하는 상사는 많이 없다. 왜냐?

본인들도 가야 하기 때문에..:)


셋째, 커뮤니케이션은 최대한 많이


프랑스인들은 말하는 걸 참 좋아한다. 공석이든 사석이든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단어를 쓰는 것 같다. 명사도 동사도 형용사도 골고루 많이 쓴다. 그러다 보니 회의할 때도, 동료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티타임에도, 식사시간에도 항상 말이 많다. 나도 말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프랜치들 사이에서 말 끼어들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꼭 내가 대화에 들어가면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 같았다. 속도가 한 반쯤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에서 새로운 방침이 내려온다면 프랜치들을 이해시키는 게 관건이다. '회사에서 이렇게 정했으니 앞으로 따라주세요'라는 일방적인 탑다운 형식의 어조는 통하지 않는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까지의 모든 배경 설명과 합당한 이유를 다수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아니면 어린아이처럼 반발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애초에 설득이라는 물밑 작업부터 시작한다.


가령, 회사에서 쓰는 ERP 소프트웨어의 이전 작업이 있을 때

왜 다른 소프트웨어를 써야만 하는지 위에서부터 논의하며 아래로 내려오는 시간이 꽤 길다. 변화에 익숙하지 않고, 일단은 지금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맞닦들이면 의사결정 시간이 한없이 느려진다. 그래서 프랑스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프로세스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작 본인들은 '느리다는 것'을 모른다. 충분한 협의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서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넷째, 반말은 가능하지만 위계질서는 철저히


첫 만남에는 존댓말(vousvoyer)로 시작하다가, 눈치게임처럼 마치 바로 반말을 하면 상대도 기다렸다는 듯이 반말로 능숙하게 넘어갔다.

회사 첫 입사 날, 상사는 바로 서로 말을 놓자고(tutoyer) 제안했다. 그러고 보니 회사 전체가 반말을 하는 분위기다.

회장님도, 사장님도, 빅보스도, 직속 상사, 동료 모두 다 반말을 쓴다. 괜히 더 가까운 것 같으면서, 흰머리가 수북한 60대 상사분들에게도 반말을 하니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첫 1분의 고비만 넘기면 반말쯤은 문화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만큼 소통에 있어서는 관계가 수평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프랑스라고 왜 위계질서가 없겠는가.


수직관계를 지키는 것은 대기업일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윗 상사에게 잘 보이고 가까운 거리를 잘 유지할수록 승진의 기회가 높아지는 건 프랑스도 비슷했다. 아직 꼰대 같은 프랑스 상사를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사람에 따라 위계질서를 프랑스 식대로 지켜주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개인 파티나 결혼식에는 부서에서 본인을 가잘 잘 따르는

몇몇 직원만 초대한다던지, 승진기회를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친한 사람에게 먼저 제안한다던지, 대놓고 매니저들을 차별한다든지.. 등등 적고 보니 프랑스식 꼰대 기질인 것 같다.


그렇게 사내 분위기를 조성하며 위계질서를 꼭 지켜야지만 이 레이스에서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다섯째,  밥값은 네가 알아서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팀별 회식 혹은 직원들끼리 애프터워크를 빼고는 동료들끼리 저녁시간에 잘 만나지 않는다. 그리고 만나더라도 항상 더치페이.


한국은 신입사원이라고 혹은 첫날이니까 상사가 한턱 쏘거나 부서에 그렇게 비용이 주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프랑스는 그런 섬세한 정은 없다. 첫날 회사에 입사하고 벳지에 구내식당 카드 충전하는 법을 배웠다. 먹는 것도 알아서 취향에 맞게 골라오고, 알아서 계산하는 식이었다.


항상 첫날이나 첫 주면 새로운 식구가 들어왔다고 다 같이 밥 먹었던 '한국 회사의 정'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나는 한국인의 '밥 먹자'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아주 간단한 방법은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을 때 아니던가.


당연히 내 밥값은 내가 내지만, 뭔가 정이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은 내가 한국인이기에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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