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일기
살랑살랑 봄이 찾아왔다. 굳어있던 마음도 녹았는지, 부지런히 계절을 느껴보려고 이 동네 저 동네를 걸어다니고 있다. 스물여덟의 봄이 되니 새로운 것들에 눈이 간다. 돈을 쓰는 곳이 달라졌다. 친구들과 주고 받는 선물도 달라졌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내 돈 주고 처음으로 폰케이스를 샀다는 것. 나만의 도발적인 봄맞이였달까?
물론 폰케이스 자체를 처음 써본 것은 아니다. 자타공인 핸드폰 케이스 부자인 누나가 있었는데, 그 누나가 하나를 선물로 주면 닳아 없어지기 직전까지 쓰고, 때 탄 케이스를 본 누나에게 다시 선물 받고를 서너번은 반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몇번의 구독 서비스를 마치고, 드디어 내돈내산 케이스로 건너뛰게 된 것이다.
내가 고른 케이스는 한 점의 수채화같은 디자인이었다. 언젠가 독립을 하게된다면 제일 먼저 하고싶은 것이 그림을 사는 것이었는데, 독립은 당장에는 어려울 것 같으니 나름 괜찮은 대안이었던 것 같다.
반면 매우 미끌거리는 플라스틱 재질에다가, 이 전 케이스에 붙어있던 그립톡까지 없으니 실용성은 떨어진 터였다. 그래도 뭐, 예쁘니까. 가볍고 봄 같으니까.
예전엔 이런 류의 소비를 거의 못했었다. 본질은 핸드폰인데 가죽을 바꾸는 게 무슨 의미있나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못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닫고 살던 터라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지나며 '무엇'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역시 중요한 것이 되었다. 친구에게 생일 편지를 쓸 때, 어떤 내용을 쓸까만큼 어떤 편지지를 고를까가 중요해졌다.
교보문고에 가보니 이미 가지고 있는 책들의 새로운 '에디션'이 나왔다. 'ㅇㅇ기념' 이라는 새로운 맥락과 새로운 표지를 갖게되니 책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다. 그 생명력은 지나가는 행인을 소비자로 변화시킨다.
사시사철 주위에 있던 꽃인데 유난히 봄꽃이 눈에 띄는 것 처럼.
웅크려진 마음에 봄햇살이 주는 온기가 특별한 것 처럼.
새로운 맥락이 갖추는 힘은 편지 밖 예쁜 편지지가 주는 설렘만큼이나 강렬하다.
그런 의미에서 봄맞이는 새로운 맥락을 갖추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니 '그래봤자 취준생인데..'라는 마음의 자조를 벗고, 부지런히 봄맞이를 해야겠다. 자주 설레여야겠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생기를 갖출지도 모르니깐.
끝없이 탈피하고, 새로움을 입어 생명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지.
딱 봄만큼만 살랑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