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교환학생 실패기_01
선홍빛 해가 보랏빛 구름과 만나 펼쳐지는 서울의 저녁이었다. 교환학생 기간이 끝난 후 일상 속에서 이런 노을을 만나면 새삼 가슴이 충만해지고 두근거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아직 낭만을 품고 있는 곳이었어.’라는 감상과 함께.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마스크 속 굳은 얼굴로 걷던 맞은편 길의 직장인도 걸음을 멈추고 눈으로 하늘을 담고 있었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까지 이런 류의 감상은 대게 사치로 여겨졌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와 세상이 하라고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늘 고민이 많았다. 나의 경우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내 마음의 요인이 늘 더 크게 작용했다. 학교에선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고, 성적도, 관심사도 애매할 뿐이었다. 노력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맞춰가지 못하는 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대학교 4학년이 될 즈음 나는 본능적으로 이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못할 바에 나다움을 찾고 한 번이라도 날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열망보다는 생존본능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물속에서 숨 참기를 하다 더 이상 못 버티고 물 위로 튀어 오르듯이.)
그때의 나는 날기 위해선 가벼워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내 어깨 위 짐을 덜고, 나를 묶는 굴레들에서 벗어나면 숨겨져 있던 날개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나를 벗어났다. 16시간의 비행을 거쳐 네덜란드라는 땅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내가 살던 나라마저 떠났으니 나의 세상, 그 너머 대기권 밖으로까지 벗어난 것이다. 당시 나는 기대보다는 알 수 없는 비장함으로 떠났는데, 마치 우주비행에 도전하는 인류의 마음 같았다. 우주선이 기체에 연결된 모든 부속품을 버리며 대기권을 벗어나듯 나를 묶던 모든 것에서 나를 분리하여 나의 터전을 떠났다.
애석하게도 그곳은 나의 관성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새로운 법칙과 궤도를 갖는 곳이었다. 당장에 언어부터 쉽지 않았다. 거기에 공부하려 했던 디자인학과에 동양인은 나 하나. 심지어 같은 과에는 나처럼 공부와 도전을 목적으로 온 게 아니라 이미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더 많았다. 너무 준비되지 못한 채 왔다는 자책감, 언어로부터 시작된 열등감에 나는 하루 만에 전과를 결심했다. 전과마저 한 달이 걸리는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이었는데, 처음 접하는 다른 문화의 사고방식을 나는 도저히 받아낼 수가 없었다. 매일이 지고 치이는 삶이었다. 당혹스럽고 후회스러운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매일을 생존해나갔다.
내가 날 수 없던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새로운 환경에 도착해서야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맞춘 새로운 굴레들 역시 다시 찾아오게 되었고 마음의 족쇄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온 지 일주일도 안되어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고 앞으로의 6개월을 버텨야 했다. 그곳에 정착하지도, 다시 돌아갈 수 도 없이,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떠돌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고작 60킬로 남짓한 우주비행선은 마음의 무게를 못 이기고 결국 방향과 목적을 상실해버렸다. 목적을 잃은 한낱 고철덩어리로 전락한 것이다. 탈출구라고 생각했던 곳은 더 큰 미로였고, 나는 어느 궤도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우주를 방황하는 우주 쓰레기가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