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직장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길’
혈액원 간호사에 대한 후기를 찾아보며, 나 역시 그 길을 걸어볼까 오래 고민했다.
복지와 안정성, 그리고 응급 상황이 거의 없는 근무 환경은 누구라도 솔깃할 만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투석실에서의 삶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혈액원은 병원이 아니라 헌혈 기관이다.
환자가 아닌 건강한 헌혈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병원에서처럼 긴박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간호사라면 늘 긴장을 놓을 수는 없겠지만, 응급 상황에 대한 무게감은 확실히 덜하다.
이 점은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혈액원은 공공기관이다.
빨간 날 근무, 주말 근무,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이 꼼꼼히 챙겨진다.
중소병원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수당이다.
게다가 호봉제가 적용되니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도 안정적으로 오른다.
육아휴직 같은 복지 제도까지 보장된 직장이니,
워킹맘 간호사들에게는 꽤 이상적인 곳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환자를 곁에서 돌보는 무거운 돌봄보다는
채혈, 문진, 헌혈자 응대가 중심이니 체력적 부담은 덜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혈액원은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하지만 장점만큼 단점도 뚜렷했다.
무엇보다 근무 시간이 길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투석실에서는 정해진 스케줄이 끝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지만,
혈액원은 하루 9~10시간을 기본으로 근무지에 머물러야 한다.
그 차이는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였다.
혈액원 간호사들은 순환 근무를 한다.
헌혈의 집, 헌혈 버스 등 근무지가 자주 바껴 환경이 일정하지 않다.
매번 근무복과 근무화를 챙겨 다녀야 하고,
짐이 늘어난다는 사소한 불편도 의외로 크게 느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망설이게 한 건 ‘관계’였다.
순환 근무를 하다 보니 동료가 자주 바뀐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알아가기도 전에 근무지가 달라지면,
그만큼 관계의 피로감과 협업의 어려움도 뒤따른다.
짧은 만남보다 천천히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맞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늘 부담이 되는 IV.
혈액원은 짧은 만남 안에서 빠르고 정확한 채혈을 요구한다.
투석실에서는 환자와 라포를 쌓아가며 서로 친밀감을 쌓은 뒤에 IV를 하지만, 혈액원은 다르다.
성공하지 못하면 바로 항의와 불편이 돌아온다.
그 짧고 날카로운 압박감이 나를 지치게 할 것 같았다.
혈액원 간호사라는 직무는 분명 매력적이다.
복지가 탄탄하고, 응급 상황이 거의 없으며,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많은 간호사들이 선망하는 자리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투석실에서 더 큰 만족을 얻고 있다.
비교적 짧은 근무 시간 덕분에,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또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천천히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여유가 된다.
‘좋은 직장’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직장’이라는 사실.
혈액원을 고민하며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