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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Nov 27. 2021

오토바이 라이딩을 같이 할 날이 올까?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09

우리는 제주 남쪽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바람 부는 금오름을 내려왔다. 이제 막 금오름에 오르는 사람들이 스쳐갔다.


즐거운 표정들이다.

오늘은 제주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곽지해수욕장으로 갈 예정이라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근처에 맛있는 햄버거집이 있어 그쪽으로 가기로 이미 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의상, 그리고 혹시나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딸은 햄버거가 좋다고 했다. 햄버거 하나를 시켜 칼로 반으로 나누었고 감자튀김과 버펄로 윙 그리고 맥 앤 치즈는 가운데 두고 나누어 먹었다. 기름지고 짜고 매웠지만 콜라와 함께 먹으니 세상 맛있다. 그리고 별 의미 없는 이런 저런 이야기는 꽤 재미나다. 음식이야기, 친구이야기, 그리고 사는 이야기.


여행의 재미는 이런 게 아닐까?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곽지해수욕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가다 보니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오른쪽은 길게 쭉 뻗은 4차선 도로, 왼쪽 길은 바다 쪽으로 나있는 좁은 2차선 도로다. 어디로 급하게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 왼쪽 깜빡이를 틀었다. 해안도로에 들어서자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펼쳐졌다. 마음이 편해졌다. 어릴 적 보던 그런 바다다. 매일매일 보아 더 이상 느낌도 감흥도 없던 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초등학교 동네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그래서 왠지 낯설고 그래서 편안한 그런 풍경이다.


해변에 부서진 파도가 만든 해무는 이 풍경을 인상파 화가의 그림으로 만들어 준다. 거친 파도가 갯바위에 부서져 뿌옇게 흩어졌다. 차 안에서 딸은 사진기를 꺼내어 바다를 찍기 시작했다.


"차 세울까?"

"응"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머릿결이 뻣뻣해졌다.


"멋지다. 그지?"

"응"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파도는 안개가 되어 우리를 스쳐갔다. 잠시 앉아 바다를 보았다.


"갈까?"

"아니. 잠시만 , 조금만 더 있다..."


딸은 뿌연 바다를 더 보고 싶어 했다. 시선을 고정해 조금 오랫동안 보거나 필요하면 앵글에 맞추어 사진을 찍었다. 딸의 필름 카메라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레버를 돌려 필름을 감고 조리개를 돌여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찰칵하는 소리가 났다.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도 딸은 차창밖 울타리 사이로 지나가는 바다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조리개를 돌려 초점을 맞추고 '찰칵' 필름을 감고 다시 조리개를 돌려 초점을 맞추고 '찰칵' 기본 좋은 소리다. 나는 사진을 찍고 있는 딸의 모습을 눈을 깜빡이며 보았다.


해안도로는 충분히 길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더운 듯 시원했다. 

"커피 한잔하고 가자"

한참을 달리다 보니 커피 생각이 났다.

"그래"

"너도 마실 거야?"

"가서 보고"


너무 크지 않은 길옆 커피집 앞에 차를 멈추었다. 실내 에어컨 바람이 유난히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보니 스콘이 맛있게 보였다. 딸은 자기는 마시고 싶지 않다며 내 것만 주문하라고 했다. 스콘은 포기하고 커피만 주문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 잎에 머금으니 입안 가득 커피 향이 퍼졌다. 그렇게 바다를 보고 있는데 전동 바이크를 탄 사람들이 즐겁게 웃으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탈래?"

"응, 그런데 내가 운전할 수 있을까? 오토바이 면허도 없는데?"

"저 사람들도 면허가 있는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탈 수 있는지 없는지는 타봐야 알지 ㅎㅎ"

"ㅇㅋ!"


차를 타고 약간을 더 달려보니 저기 왼쪽에 전동 바이크를 대여하는 곳이 보였다. 잠시 헬맷을 쓰고 바이크에 앉아 잠시 교육을 받았다. 딸은 준비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오른쪽 스트롤을 당겼다. 돌담벽에 부딪힐 뻔했다. 그래서 다시 교육을 받고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대여소 직원은 영 미덥지 않은 눈빛이다.


차가 한 두대 지나갔지만 아주 한적한 도로다. 스트롤을 아무리 당겨도 더 빨라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딸은 처음 혼자 자전거를 탈 때처럼 연신 뒤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잘 가고 있으니 뒤돌아 보지 말고 앞을 보아라' 손짓을 했다. 그래도 뭐가 궁금했는지 뒤돌아보다 딸의 바이크가 휘청거렸다. 발은 바닥에 대고 멈춰 선 딸은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소리 내어 웃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40분간의 라이딩을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진짜 오토바이는 이것보다 빨라?"

"빠르지, 재미있었어?"

"응! 나 오토바이 면허 딸까?"

"좋지!"

"얼마나 걸리지?"

"금방 딸 수 있어"

"그래? 오토바이 면허 따야겠다. ㅎㅎ"

"그래"


딸이 오토바이 면허를 딸지 그러지 않을지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재미있게 보낼 취미를 하나 더 발견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나와 함께 오토바이 라이딩을 가는 그런 날이 올는지...


저녁을 먹으러 제주 시장으로 가는 길 우리는 내일 있을 한라산 등반이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힘들까? 그렇게 힘들지는 않겠지?' '그래도 높이가 2천 미터 가까이 되는데 힘들지 않겠어?' '그럴까?' 동네 산책로나 뛰어다니던 우리가 뭘 알겠는가? 밥이나 먹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제주시장은 너무 더웠고 너무 시끄러웠고 너무 분주했다. 그래도 구경삼아 돌아다니다 결국 적응을 못한 우리는 전복 꼬마김밥, 하루방 빵 그리고 감귤주스를 사서 숙소로 왔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가로등도, 같은 방향의 차도 , 마주오는 차도 별로 없는 한산한 도로를 한동안 달렸다. 으스스한 도로다.

 

"혼자 운전하면 무서울 것 같은데..."

"응, 무서울 것 같다."

"이런 길 혼자 운전해 본 적 있어?"

"있지. 엄청 무서웠어. 그래서 노래를 불렀는데... 더 무서웠어. 한 번씩 차들이 오면 얼마나 반갑던지..."

"그럴 것 같아"


숙소 앞 편의점에서 내일 한라산에서 먹을 컵라면 두 개를 사서 숙소에 들어왔다. 씻고 자리에 누워 알람을 4시 50분에 맞추어 놓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1시를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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