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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Sep 10. 2021

금오름에서 배운 사진 찍는 법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08

"언제 일어날 거야?" 딸이 물었다.

"몇 시야?"

"8시 30분"

"시간이 많이 지났네. 일어나야지"


어제 오래 걸어 다녀서 그런지 늦잠을 잤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지 않는 딸이지만 언제 일어났는지 이미 나갈 준비를 마친 모양새다. 씻고 나와 아침 먹으러 가자고 했다. 딸은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맛있을 거라며 조금만 먹자고 했다. 브런치 가게에 도착하니 아침 9시, 아침 9시에 문을 여는 가게라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첫 손님이 될 줄 알았다면 머리에 왁스라도 바르고 왔을 것을...


가게는 깔끔했다. 어디에 앉을까 돌아보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아기자기한 꽃 모양 그림들이 파스텔톤으로 꾸며져 딸이 이쁘다고 했다. 딸이 마음에 들면 되었다. 내 취향이 무슨 상관인가. '새우, 연어 타르틴'과 함께 딸은 레몬티를, 나는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타르틴'이라는 이름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먼저 레몬티와 커피가 나왔다. 커피가 맛있었고 딸도 레몬티를 맛있게 마셨다.

"맛있어?"

"응. 마셔볼래?"

"아니, 난 커피가 좋아"


같이 마셔볼걸 그랬다. 딸이 좋아하는 맛이 어떤지, 좋아하는 향이 어떤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오늘 갈 곳과 하고 싶은 일들은 이야기하는 사이에 타르틴이 나왔다. 샐러드 한 포크 집어 입안에 넣었다. 싱싱한 양상추의 아삭 거림이 기분 좋다.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딱딱한 빵도 맛있고 올려져 있는 새우와 드레싱도 맛있다. 커피 가득 담겨있던 머그컵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커피를 마셨다. 아침을 먹는 사이에 한 두 테이블이 채워지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딸은 이튿날 옷으로 갈아입었다. 오름에 올라가 사진을 찍기 위한 의상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금오름은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다.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는 우리도 있었고 여행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캐리어를 들고 오름에 오르고 있는 사람들... 가파른 길은 아니지만 숨이 찰만한 길이라 약간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금오름에 오르니 딸은 "저기"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금오름 가운데 있는 작은 웅덩이였다.


"인스타에서는 물이 많고 멋있었는데..."

"가서 사진 찍을래?"

"아니, 사람이 너무 많아. 저기서 찍어줘"


딸은 오름 능선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딸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정말 사진 못 찍었어. 다시 찍어줘. 전화기를 밑으로 내려서 세워야지 사진이 잘 나와. 그냥 찍으면 다리가 짧게 나오잖아. 배경도 안 이쁘고"


딸은 진심으로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그리고 다리는...은 말하지 않았다. 다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딸에게 보여 주었다.

"뭐야, 똑같잖아. 그렇게 찍는 게 아니고 전화기를 허벅지까지 최대로 내리고, 각도는 최대로 세우고, 알겠지?"

"그래? 그럼 니가 한번 찍어 봐. 내가 서있을께"

"저기 서 봐봐"


딸이 서있던 자리에 서서 딸은 보았다. 딸은 아까 말했던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하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찍는 거야. 이렇게 찍어줘. 오케이?"

"오케이. 그런데 비슷한 것 같은데.."

"뭐가 비슷해? 하나도 안 비슷하거든!"

"오케이, 다시 해 볼께"


다시 찍은 사진을 보며 딸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체념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 체념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미소가 기특한 아이에게 보내는 그런 미소 같았다. 동그란 봉우리 저기에 평상이 보였다.


남쪽으로는 제주바다가 해안선을 따라 늘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넓은 제주 평원에서 개미만 한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웃자란 풀들이 바람이 불때 마다 바닥에 엎드려 마치 결이 매끈한 양탄자처럼 보였다. 평상에 앉아 보는 제주의 풍경은 딸과 어우러졌다. 잠시 앉아 있던 딸은 사진을 찍으러 여기저기로 돌아다녔다. 마치 풀밭에서 노는 아이처럼...


멋진 풍경이다.


나는 서서 전화기를 허벅지까지 내리고 최대한 세워서 그 모습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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