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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부 Aug 16. 2021

서귀포에서 건배를

딸과 떠난 일주일간의 제주 여행 07

1131번 도로를 타고 서귀포로 간다

활짝 열어 둔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딸아이의 머리칼이 날렸다. 한라산 국립공원 동쪽 끝자락을 지나가는 이 길에서는 여름 숲 냄새가 났다. 평소와는 다르게 딸은 창문을 닫지 않았다. 손목에 있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뒤로 묶고 계속 바람을 맞았다. 꼬불꼬불 터널 같은 숲길을 달렸다. 얼마쯤 왔을까? 저기 멀리 바다가 보인다.


제주 남쪽 바다

서귀포항이 보이는 작은 창이 있는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월요일 저녁 서귀포는 조용했다. 천지연 폭포를 지나 20분 정도를 걸어 미리 정해둔 식당으로 갔다. 역시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다. '월요일 휴무' 딸은 실화냐며 황당해 했고 나는 당황했다. 잠시 고민을 했다. 올레 먹자골목이 그리 멀지 않은 위치라 그나마 다행이다. 먹자골목을 배회하다보니 벌써 한시간이 지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월요일 휴무'로 문을 닫은 식당이 많았다. 이쯤 되면 상당히 초조해진다. 딸의 기대하던 얼굴은 피곤한 얼굴로 바뀐 지 좀 되었다. 빨리 뭔가 먹어야 한다. 위험하다.


아까 걸어오다  식당 하나가 생각이 났다. 거기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발 기본만  다오' 배가 고플대로 고프니 나쁘지만 않으면 성공일 것이다. 파스타가  종류밖에 없다. '표고버섯 파스타' 딸의 표정으로 보니  돌아보자고 하면 짜증을  것이 분명하다. 맥주 한잔과 파스타를 주문했다. 무료 스낵 안주와 함께 맥주가 먼저 나왔다.  모금 마셨다. 맛있다. 스낵도 맛있다. '파스타야, 제발 맛있어라' 파스타가 나왔다. 딸은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어때?"

"음~ 괜찮은데, 맛있어"

"그래, 다행이다. ㅎㅎ"

마음이 편해졌다.


"맥주 한잔 할래?"
"좋아!”

맥주 한잔 더 그리고 모듬튀김도 주문했다. 딸과 건배를 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했고 여행에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했고 딸의 주량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순간순간 비치는 딸의 성향과 생각을 듣는 동안 나는 맥주 세 잔을 비웠다.


내일은 일단 서쪽으로 움직인다. 금오름과 곽지 해수욕장 쪽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수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딱히 뭘 하기보다는 매일매일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목적인 듯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줘야겠지?' 그리고 딸의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 되는 것 같았고 맥주보다는 과일소주를 더 좋아하는 듯했다. 난 소주보다는 맥주가 더 좋다고 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약간의 소주 정도는 마셔 줄 수 있다고 했다. 딸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선택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갑갑한 건 싫다고 했다. 나보고 식당을 고르게 한 것도 그것 때문이라는...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지"

"그래서 못 고르겠어. 안 좋으면 어떡해?"

"어쩔 수 없지 뭐, 근데 시도하지 않으면 좋은지 안 좋은지 조차 모르지. 그 식당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먹어보기 전에 어떻게 알겠어?"

"그건 그렇지..."

"선택한 식당의 음식이 맛없다고 해서 그 벌로 미각이 사리지는 것도 아니고 선택한 것이 좋지 않다고 해서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니잖아. 뭐든 일단 해 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알지"

"무슨 지구의 종말까지 ㅎㅎ"

"어디를 가든 뭘 하든 재미있게! ok?"

"알아"

"그래서 내일은 어디 간다고?"
"금오름 먼저 갔다가 곽지해수욕장으로"

"서쪽으로 쭉 가면 되겠네?"
"그런가? 어쨌든 금오름이랑 곽지"

"ok"


남은 한 모금의 맥주로 건배를 하고 잔을 비웠다. 숙소로 돌아오는 언덕길에서 서귀포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먼바다에서 오징어잡이 어선의 불빛이 반짝였다. 어릴 적 방파제에서 보던 바다가 생각났다. 여름밤 바람에 갯내가 났다. 천천히 걸어 숙소로 왔다.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 침대에 눕자 금세 잠이 들었다. 딸이 나를 깨웠다. '벌써 아침인가?'


"아빠 모기 있어!"

"응? 모기?"

"벌써 몇 방 물렸어. 잡아줘"

"모기?"


시계를 보니 2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정신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졸린 눈으로 모기 사냥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입구 선반에 에프킬러가 보였다. 여기저기 넉넉하게 뿌렸다. 모기가 죽든 내가 죽든 둘 중에 하나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기다리며 내일 아침 먹을 식당을 다시 검색했다. 두 곳 정도가 아주 좋아 보였다. '설마 둘 다 쉬는 날은 아니겠지?' 쉬는 날을 확인했다. 내일은 아니었다. 마음에 편안해졌다.


기다리던 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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