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떫고 쓴 맛이 날지도 모릅니다

역시 어중간합니다

by 김현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의식하는 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완전히 자유롭다 말하는 것도 사실은 아닙니다.


지하철을 타면 의식적으로 전화기를 보고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전화기를 봅니다.

사명감은 아니지만 나마저 전화기를 본다면 왠지 씁쓸해져서 그냥 멀뚱 멀뚱있는 편입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것이지만 말이죠.


언젠가 전화기를 안보는 사람은 몇몇이나 있는지 지하철 객차를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별로 붐비지 않아 시도해 본것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혼자이지만 전화기를 보고 있지 않던 사람은 4명정도였습니다.


소설책을 읽는 중년의 여성,

성경을 읽는 20대 남성,

공무원 기출문제를 푸는 20대 여성,

중학교 문제지를 풀던 여중생이었습니다.


그냥 멀뚱 멀뚱 앉아 있을 걸 그랬습니다.


지하철은 그나마 괜찮은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짐짝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걸어 다닐 수도 있습니다.


버스나 택시를 타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지는 짐이 된 듯해서 대중교통은 가능하면 지하철을 타려하지만 어쩔수 없이 버스나 택시를 타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운전기사님도 빠듯한 스케줄을 맞추어야하고 시간이 돈이니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택시가 그렇습니다.

개인용 수화물이 된 듯한 찜찜한 기분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라 믿고 싶습니다.


어쨌던 그날도 붐비는 시간은 아니였지만 지하철에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퇴근시간전이었지만 빈 자리는 없었습니다.


내가 탄 역은 출발점에서 가까워 다행히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멀뚱 멀뚱 앉아 지하철의 사람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멀뚱 멀뚱 있다보면, 가끔 빈자리를 찾는 나이 지긋하진 어르신과 눈이 마주칩니다.


민망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애들은 앉아 있는데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일어나네 ㅎㅎ"


그냥 멀뚱 멀뚱 앉아 있을 걸 그랬습니다.

서서 생각해 보니 몇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어르신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상관없습니다.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자리를 양보한게 아니라 앉아 있기 민망해서 일어났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만약 누군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고맙다는 인사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애들은 앉아 있는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 나이들고 약한 사람에게 빈자리를 양보하는 건 이상할 것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내 자신을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르신의 눈에 난 '나이 지긋한 아저씨'였습니다.


나만 내가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나봅니다.

스스로 아직 젊다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도 나를 아직 젊다고 생각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저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이죠.

글쎄요, 지금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포기했습니다.

사실 매일 매일 포기합니다.


난 아직 젊은 사람입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동의하지 않아도 혹은 동의한다해도 별로 상관없습니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을 뿐입니다.


딱히 내 나이에 불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어릴때보다는 좋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며 시작된 20대는 힘들었습니다.

대학도 떨어지고 마지 못해 간 지방전문대에서 느낀 패배감은 쓴맛이었습니다.

패배감이라고 할 것도 없네요.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핑계같지만,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자유로왔던 20대 초반의 맛은 썼습니다.

젊은게 아니라 그냥 어린것이었습니다.

익지 않은 감처럼 떫고 씁니다.

아삭거리는 식감은 좋지만 말이죠.


어중간한 20살의 어린이


지금도 어중간하긴 합니다.

그래도 어린이는 아닌것 같아 다행입니다.

언뜻 보이는듯 새치에 마음이 살짝 놓이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어른이 되기 시작하려나 봅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 어중간한 기분은 어쩔수 없습니다.

뭐 사는게 다 어중간한거 아니겠습니까?

항상 일이 있고 계속 뭔가 해야하는, 마음 편히 쉴 수 없고 불안한 상태.


아직 어중간한 사람이니 뭐라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덜 익은 시간을 한 입 가득 씹어봅니다.

아삭거리는 식감은 좋지만 아직 떫고 쓴 맛에 인상이 절로 써 집니다.


역시 어중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