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이 바뀌면 생각이 바뀝니다.
결혼에 대한 이런 환상이 있었습니다.
레드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식탁에 정성스럽게 밥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피곤한 나를 맞아줍니다.
"오늘 하루 힘드셨죠? 씻고 식사하세요. 당신 좋아하는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준비했어요"
"고등어 냄새가 하나도 안나는데? 어떻게 구웠어?"
반갑게 맞아하는 아내를 보니 하루의 피로가 스스르 사라지는 듯 합니다.
언릉 씻고 나와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밥상을 맞습니다.
"저녁 준비 힘들었겠는데? 간단하게 차리지 그랬어?"
"당신 회사에서 일하는데 저녁차리는게 일인가요?"
"고마워, 맛있게 먹을께"
"자, 여기 물이에요. 천천히 드세요"
"음~ 역시 자기가 끓인 된장찌개가 최고야. 햐~"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효효"
"오늘 박과장이 얼마나 못살게 굴던지, 정말 못참겠더라고. 그런데 그 순간 당신 얼굴이 떠오르더라구. 뭐 박과장의 싸이코짓은 아무것도 아니지 ㅎㅎ"
"그 박과장은 왜 그런데요? 정말 이상한 사람같아. 힘들었겠어요. 많이 드세요 효효"
아무리 힘든일도 와이프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그래도 설거지정도는 제가 해야합니다.
"설거지는 내가 할께. 저녁준비한다고 힘들었는데"
"아니에요, 밖에서 일하는 게 더 힘들죠. 제가 할게요"
"아냐, 밥 먹으니까, 힘이 나는데. 자기는 그냥 쉬세요~ ㅎㅎ"
"아이참, 고마워요. 그럼 사과나 조금 깍을까요?"
"사과 좋지 ㅎㅎ"
레드썬!!
결혼뒤 유학을 준비하느라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은 다행이 없었습니다.
와이프와 같이 유학가려는 계획이어서 하루, 24시간 항상 같이 있었습니다.
영어 어학원 수업을 받기 위해 아침을 먹고 학원으로 갔습니다.
처음엔 점심을 사 먹다 지출도 많아지고 해서 도시락을 준비했습니다.
점심은 김밥을 먹었습니다.
처음엔 김밥싸는 것이 귀찮았지만 재료 준비하는 시간이 익숙해지면 김밥싸는것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점심으로 김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쉽게 음식이 질리지 않는 편이고 김밥을 좋아해서 일주일 내내 김밥을 먹어도 괜찮았습니다.
하루는 와이프에게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혼전의 환상 때문이었을까요?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 어때?"
"좋아, 된장찌개"
"해주면 안돼?"
"응? 안해 봤는데. ㅋ 해보지 뭐"
흔쾌히 음식을 준비하는 와이프를 보며 감사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음식레시피를 쉽게 찾을수 없어, 요리책을 보면서 된장찌개를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내던 원룸에서 내가 갈 곳은 없어 티비를 틀어놓고 침대에 걸터 앉아 와이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름 행복하다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음식준비를 시작한 것이 학원 마치고 바로 집으로 와서 시작했으니까, 음... 오후 5시쯤 된 것 같네요. 파를 다듬고, 양파를 썰고, 칼을 한 번 씻고 호박을 자르고 두부를 잘랐습니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었는지 그냥 맹물에 끓었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어쨌던 물이 끓기 시작했습니다. 된장을 끓는 물에 풀었습니다. 조그마한 원룸에 구수한 된장냄새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니 시장기가 돌았습니다.
"음, 냄새 좋은데? 맛있겠다"
"맛없으면 어떻하지? 처음하는 거라. 그래도 맛있게 먹어 ㅎㅎ"
"당연히 맛있겠지 ㅎㅎ 혹시 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게 ㅎㅎ"
된장이 끓기 시작하면서 양파와 호박 그리고 두부를 넣었습니다.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는 된장찌개였습니다. 장도 봐야했고 준비하는 시간이 꽤 걸려서 그때가 7시30분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배가 많이 고파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를 투척했습니다.
전기 밥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습니다. 뜸이 다 든 밥은 이미 잘 저어 두었습니다. 된장찌개를 하는 중간중간 아내는 맛을 보았습니다. 반찬을 차려 놓고 밥은 밥 공기에 퍼 두었습니다. 아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듯 계속 맛을 보았습니다. 8시가 지나면서 허기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다 됐지? 먹자 이제"
아내는 당황해 했습니다.
"모르겠어, 맛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맛있겠지, 된장찌개가 무슨 특별한 맛이 있나? 냄새 좋은데?"
"글쎄, 이상해도 맛있게 먹어 ㅎㅎ"
불안했지만 된장찌개가 맛이 없어봐야 얼마나 없을까하는 안일한 마음이었던것 같습니다. 된장찌개를 그릇해 담기 시작한 시간이 8시20분정도였던것 같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열심히 준비한 아내를 생각해서 참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고했어, 잘 먹을께"
"모르겠어, 맛이 이래도 되는지 ㅎㅎ"
"괜찮아, 맛있겠지 ㅎㅎ"
된장찌개를 한 입 먹었습니다. 이성과 감정이 강하게 대립할때 당황스러워집니다.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성과 감성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맛있네, 이 정도면 훌륭해'라고 말해야 한다고 이성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뭐가 맛있어, 이건 음식이 아니잖아. 와이프로 사실을 알아야 해' 감정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이런 음식을 먹으라는 건, 테러야! 테러!'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허기가 아니였나 생각이 됩니다.
된장찌개를 한입 먹고 아무말하지 않았다는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인상을 그렇게 썼는지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쉬었는지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와이프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미안해, 된장찌개를 이렇게 끓여서..."
'괜찮아'라고 말하며 억지 웃음이라도 지었어야 했는데 멍청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이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게 아니잖아"
내 목소리에는 짜증과 화가 그대로 묻어났었을것입니다
참았던 눈물이 와이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참 못난 남편이었습니다.
한동안 와이프는 된장찌개를 끓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때마다 밥투정, 반찬투정하는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합니다.
'밥이 질다, 밥이 되다. 국이 싱겁다. 반찬이 싱겁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딸들과 와이프, 그리고 투정하는 사람과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입니다.
'밥이 질다'는 것입니다.
아무말 없이 밥을 먹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두 딸들이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저러면 어떻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딸들, 만약에 결혼을 한다면 말이야, 그리고 밥을 차렸는데 남편이 저렇게 밥투정을 하면 말이야. 주걱으로 싸대기를 날려버려!"
딸들이 키득거리며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주걱에 뜨거운 밥풀을 묻혀서, 싸대기를 날려버려, 적어도 열대정도 날려버려! 그리고 말해. '주는대로 쳐먹을 것이지 어디서 밥 투정이야!'"
밥을 먹다 다 같이 웃었습니다.
나도 웃었습니다.
생각만해도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밥투정하는 남편에게 주걱으로 싸대기를 날리는 딸들을 생각하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그리고 계속 말했습니다.
"딸들, 요리는 니네가 하는게 아니다. 요리는 남편이 하는 거다. 알았지?"
두 딸들은 재미있나 봅니다. 키득거렸습니다.
그렇게 다 같이 웃었습니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고마워졌습니다.
된장찌개 푸던 국자로 대갈통을 맞지 않은 것이 고마워졌습니다.
마음 착한 와이프가 흘렸던 눈물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내 딸들은 정신 못차리는 남편의 싸다구를 시원하게 날릴 수 있는 멋진 여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