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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Oct 19. 2020

독일 유치원, 아이가 손가락을 물려왔다

해외 생활의 지혜, 언어보다 중요한 태도 갖추기

지난주에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있었다. 첫 째 아이와 같은 반 친구가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의 손가락을 깨물었고 선생님이 픽업할 때 나에게 설명한다는 걸 잊어버리는 바람에 아이에게 먼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은 반에 유일하게 많이 친해진 엄마와 아이가 있는데 바로 그 친구란다. 손가락이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못했다는 말에 화가 났다. 밤새 독일어 문장을 다듬고 백번 연습해서 다음 날 선생님과 대화를 했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치거나 선생님이 그 상황을 나중에 발견하고 그런 건 모두 이해한다. 모든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아이가 제대로 된 사과를 듣지 못하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달라. 분명하고 예의 있게 전달했다.
선생님도 연신 미안해했고 딸에게 곧 다시 이야기도 해주고 실수한 아이도 사과를 했다.






사실 내가 정말 화가 났던 이유는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이 친구와 엄마는 서로 집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 놀이터도 자주 같이 가던 사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우리 아이를 밀치거나 속상하게 하는 일이 자주 있었던 거다. 그 엄마가 늘 심하게 제지를 하기도 하고 싸우다가도 서로 좋아하고 잘 놀기도 해서 아이들이 놀다 보면 의견 충돌이 생기기도 하는 거지 생각해왔는데. 더 이상 용인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제 그만!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이와 엄마와 인사를 나누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워낙 친했던 사이기도 했고 유치원생 수준의 독일어도 안되는 나에겐 큰 용기를 내야하는 순간이었다. 곧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흐지부지 넘어갈 순 없었다.


유치원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그 사건 뿐 아니라 딸이 늘 그 아이와 놀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 아이가 어리기도 하고 배우면서 크는 것이 아이들이지만 나는 내 딸을 보호해야하는 엄마고 우리 아이를 계속 스트레스 속에 방치할 수 없다고. 그래서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는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부족한 독일어에도 천천히 차분하게 그리고 예의를 갖춰 설명했다. 서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의 무게를 덜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유치원 반에서만 만나는 것으로 합의했다.

집에 돌아간 아이 엄마는 고맙게도 집에서 아이와 이 일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드리,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독일에서 내 삶은 목소리를 힘껏 내야 하는 순간이 많다. 독일어를 아직 잘 못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사는 건 싫다. 누가 날 무시하는 건 아닌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을 불의나 불편함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침착함과 예의를 갖춰 솔직한 마음을 용기 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 거만한 듯한 표정으로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실력을 뽐내는 남자보다, 짧은 영어일지라도 쫄지 않고 하는 남자가 매력적이다. "라는 곽정은 언니의 말에 열 번 동의한다.

요즘은 능력보다 태도의 더 가중을 두고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난 솔직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것멋짐의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해외생활을 통해 배운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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