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더하기 3년, 그러니까 6년 전의 이야기다. 사진 속 네 살 아들은 올해 열 살이 되었다.
포토북을 펼쳐 이리저리 각도와 앵글을 달리해 찍는다. 아들이 다가오면 "엄마 이것 좀 할게~" 부탁하듯 하다가 "너 할꺼 다 했어? 얼른 가서 해!" 질책하듯 등을 떠민다. 오전 내 그러고 있자니 열 살 아들은 자꾸 떼놓으려 하면서 네 살 아들과 꽁냥꽁냥 하는 기분이 든다. 현재를 살기보다 과거로 들어가는 이 작업이 얼마나 의미 있을까.
포토북의 사진을 휴대폰으로 다시 찍으니 레트로 갬성이 살아난다. 페이지를 들거나 구부려 굴곡을 만들기도 하고, 애물단지처럼 별수 없이 생기는 빛 반사로 아예 블러 효과를 내기도 한다. 아들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을 걷어내고 재미를 좇다 보니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도 같다.
그런데 이제는 이 글을 읽어주실 불특정 극소수와 지인들에게 미안해진다. 찍으며 요리조리 잔재미를 느꼈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사진이 흐려 답답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한편으론 답답할 일까지는 없겠다 싶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만 가득한 내 포토북에 선명하게 확인해야 할 정보는 없다. 정확하게 보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뿐이다.
건져 올린 소소한 갬성을 각자의 시간으로 가져가 행복한 꿈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가 네 살 정도가 되니 좀이 쑤셨다.
젖먹이 시절은 어찌 가는 줄도 몰랐고
죽먹고 기고 걷는 놈을 끌어안아
아기띠라도 해서 한 몸처럼 다닐 수 있게 됐어도
내 골반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묵직한 기저귀를 매달고
갈지자로 텀벙텀벙 뛰기 시작할 때는
혹여 잃어버릴 새라 낯선 곳에 가기도 조심스러웠다.
바퀴만 보면 곧장 달려가 돌려대고,
제 관심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놈을 쫓아다니던 시절에는
정해진 일정에 아이를 맞추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그렇게 만 3년을 보내고 나니
네 살이 되어 좀 사람다워진 아이는
'장거리 해외여행'을 같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보였다.
여행가방의 1/3을 기저귀로 채울 필요가 없어졌고 공중화장실에서 응아도 텄다.
삼시세끼 중 한 끼 정도는 외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고,
잠은 워낙 잘 챙겨자니 남은 시간은 놀거나 만화영상을 본다면 긴 비행도 해볼 만했다.
싸고 먹고 자는 것, 이 충분조건만 맞춰준다면 아이는 어디를 가든 건강하게 놀만큼 여물었다.
차곡차곡 쌓인 마일리지로 세 명의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었기에 시작된 계산이었다.
하지만 언제라도 번복될 수 있기에 막상 설레지는 않았다. 돌이 갓 지났을 즈음 친정식구들과 동남아 휴양지로의 짧은 휴가를 계획했었는데, 출발을 오일쯤 남겨두고 아이가 중이염에 걸린 것이다. 기압차 때문에 악화될 수 있다는 진단에 가네 못가네 전전긍긍했었다. 다행히 비행 전 나았지만, 또 그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트라우마처럼 각인된 터였다. 아이가 곧 변수, 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이를 계획에 넣는 순간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행 일정에 따라 남편이 숙박지를 정하고 열차표를 예약할때에야 잠깐씩 실감할 수 있었다.
여행을 확언할 수 없어 마음껏 설렐 수도 없는 애매한 시간이 지나고, 출발 2주 전. 하루하루 아무 일 없는 일상에 깊이 안도하며 슬슬 필요한 물건들을 서치해 주문하기 시작했다. 짐가방을 꾸리는 일은 내 책임감이 묵직해지는 영역이다. 여행 준비에있어서는 '스케줄 케어'와 관련된 일은 남편 위주로, '아이 케어'와 관련해서는 내 위주로 암묵적인 역할분담이 이뤄진다. 열흘을 무탈히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아이의 놀이와 안전, 건강을 위해 대비할 것들을 내내 생각해야 빈틈이 줄어든다. 국내가 아닌 국외로 설정된 여행의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꼼꼼히 가늠하고 챙겨야 한다.
여행자보험은 스케줄 케어인가 아이 케어인가? 어느 쪽으로도 명쾌하지 못해 나와 남편 둘 다 미처 챙기지 않은 그것은 공항에서 가입하기로 한다. 짐가방과 현관문을 차례로 닫고 공항으로 향하는 중에도 빠진 것은 없나 되뇐다. 다행이면서도 불행하게도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은 온통 내 필수품이다. 개중에 포기할 수 없었던 선글라스를 10분 만에 구매하고는 간신히 보딩 타임에 맞춰 탑승구로 향했다.
설렘보다 비장함을 가득 안은 채 네 살 아이와의 유럽여행이 시작됐다.
* 포토북 제작은 '스냅스'를 이용했습니다. 스냅스에서 디자인한 일러스트가 포함된 사진들이 있어 미리 밝혀둡니다.